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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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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齊將攻宋, 而秦‧楚禁之.
齊因欲與趙, 趙不聽.
齊乃令說李兌以攻宋而定封焉.
李兌乃謂齊王曰:
“臣之所以堅三晉以攻秦者, 非以爲齊得利秦之毁也, 欲以使攻宋也.
, 下親其上而守堅, 臣是以欲足下之速歸休士民也.
今太子走, 諸善太子者, 皆有死心.
若復攻之, 其國必有亂, 而太子在外, 此亦擧宋之時也.
臣爲足下使公孫衍說曰:
‘君之身老矣, 封不可不早定也.
爲君慮封, 莫若於宋, 他國莫可.
夫秦人貪, 韓‧魏危, 燕‧楚辟, 之地薄, 莫如於.
失今之時, 不可復得已.
殘亂宋, 得大齊, 定身封, 此百代之一時也.’ 以奉陽君甚, 得大封, 齊無大異.
臣願足下之大發攻宋之擧, 而無庸致兵, , 以觀奉陽君之應足下也.
縣陰以甘之, 循有燕以臨之, 而臣待忠之封, 事必大成,
臣又願足下有地效於以資臣也.
足下果殘宋, 此兩地之也, 足下何愛焉? 若足下不得志於宋, 與國何敢望也?
足下以此資臣也, 臣, 則足下擊潰而決天下矣.”


271. 나라가 장차 나라를 공격하려 하다
나라가 장차 나라를 치려 하자 나라와 나라가 이를 제지하였다.
제나라는 이에 나라를 끌어들이려 하였지만 조나라 들어주지 않았다.
제나라는 이에 공손연公孫衍으로 하여금 〈조나라 재상〉 이태李兌에게 송나라를 친 다음 봉지封地를 주겠다고 달래었다.
이태가 제왕齊王(민왕湣王)에게 말하였다.
“제가 삼진三晉을 견고히 하여 나라를 치겠다는 것은 제나라가 진나라를 쳐서 훼멸시키는 틈의 이익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송나라를 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송나라는 태자太子를 왕으로 삼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친히 여겨 견고하게 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족하足下께 속히 군대를 철수시켜 병사와 백성을 휴식시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송나라 태자가 도망가자 태자와 좋게 지내던 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다시 송나라를 치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며 태자가 국외에 있으니 이야말로 송나라를 칠 좋은 시기입니다.
저는 족하를 위해 공손연公孫衍봉양군奉陽君에게 보내어 이렇게 설득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그대는 몸이 늙었으니 봉지를 서둘러 확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의 봉지를 생각해 보면 송나라 땅만한 곳이 없으며 다른 나라 땅은 불가하다.
무릇 진나라는 탐욕스럽고 한‧위 두 나라는 위험한 곳이며, 연과 초 두 나라는 너무 편벽된 곳이며, 중산中山은 땅이 너무 박약薄弱하여 송나라의 땅 만한 곳이 없다.
지금 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송나라의 죄가 무거울 뿐 아니라 제나라는 그에 대한 원한도 깊다.
그 어지러운 송나라를 쳐서 큰 제나라의 힘을 얻고 봉지까지 결정된다면 이는 백대百代에 한 번 만날 기회이다.’ 그러면 봉양군이 이를 크게 탐내어 큰 봉지를 얻더라도 제나라가 얻을 이익에는 별로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원하건대 족하께서 크게 병력을 일으켜 송나라를 들어치되 군사를 부릴 필요없이 군사들을 잠시 파종이 끝날 때까지 쉬게 하면서 봉양군이 족하를 위해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시면 됩니다.
땅을 현상懸賞하여 미끼로 쓰고, 나라를 타일러 그 군대로 나라를 치고, 우리는 제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가 땅을 해 주기를 기다리면 일이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족하는 양안군襄安君에게 땅을 떼어 주어 저의 일이 성공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과연 송나라를 멸망시키기만 하면 이 두 땅을 해 주는 것을 아까워할 게 무엇입니까 만약 족하께서 송나라에 대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맹방盟邦인 〈가〉 어찌 감히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족하께서는 〈안양군에게 줄〉 그 땅을 저에게 주어 제가 나라에 가서 타이르게 하고 나라의 태도를 관망하면 족하께서는 송나라를 쳐서 무너뜨리고 천하를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역주
역주1 : 鮑彪本에서는 여기서의 公孫衍은 犀首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역주2 公孫衍 : 魏나라 사람. 일찍이 犀首라는 관직을 지냈기 때문에 흔히 犀首로 일컫는다. 張儀와 不和하였는데, 뒤에 秦의 재상이 되었다.
역주3 宋置太子以爲王 : B.C.288년 宋王 偃이 쫓겨 나고 태자를 왕으로 세웠다. 뒤에 다시 宋王이 복위하자 태자는 도망갔다.
역주4 奉陽君 : 趙나라의 相. 肅侯의 弟로 이름은 成.
역주5 中山 : 中山은 B.C.296년에 망하였으므로 그 故地를 말한다.
역주6 : 宋나라의 陶 땅을 말한다. 270장 참조.
역주7 宋之罪重 : 宋 王偃(재위 B.C.328~286년)이 暴惡無道하여 사람들이 桀宋이라 불렀다. 483장 참조.
역주8 齊之怨深 : 《史記》 〈宋微子世家〉에 의하면 宋王 偃이 B.C.318년에 齊나라의 다섯 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역주9 食(貪)之 : 원문 ‘食’은 ‘貪’의 誤記로 보인다.
역주10 唯(雖) : 원문 ‘唯’는 ‘雖’의 誤記.
역주11 姑待已耕 : 鮑彪本에는 이 4자가 없다.
역주12 襄安君 : 燕나라의 신하.
역주13 時(封) : 원문 ‘時’는 金正煒의 說에 의하여 ‘封’으로 고쳤다.
역주14 循燕觀趙 : ‘循’을 循撫, 安撫로 보아 ‘燕나라에 가서 타이르고, 趙나라 태도를 관찰하다.’로 풀었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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