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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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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동성同姓희성姬姓이며 백작伯爵이다. 무왕武王이 동생 소공召公()을 봉하여 북연北燕이라 불렀으며 그 지역은 원래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대흥현大興縣이었다. 그 후 춘추春秋 헌공獻公 때에 강해지기 시작하여 전국戰國시대 문공文公에 이르러 칠웅七雄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 관할 지역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북부北部, 그리고 요동반도 및 요령성遼寧省 일대였으며 도읍은 (지금의 북경北京 근처)였다.
이 연나라는 중원에서 가장 먼 동북쪽에 치우쳐 , , 예맥濊貊 등과 인접하였고 남으로는 , , 중산中山 등과 이웃하고 있었다. 역왕易王에 이르러 처음 칭왕稱王하였고(B.C.323) 그 아들 연왕燕王 에 이르러 재상 자지子之에게 선양禪讓한 일로 혼란을 겪을 때 선왕宣王의 침공을 받아 한 때 국토가 잔폐하는 일을 당하였다. 그 뒤 소왕昭王악의樂毅를 등용하여 중흥을 일으켰으며 결국 나라를 공격, 수도 임치臨淄까지 들어가 즉묵卽墨을 제외한 제나라 70여성을 탈취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B.C.284)
그러나 소왕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하여 참언을 듣고 악의樂毅기겁騎劫으로 대신하자 제나라에서는 전단田單을 등용하여 잃었던 땅을 수복하고 이에 따라 연나라는 다시 참패의 시련을 맞기도 하였다. 한편 이때 이미 나라는 삼진三晉을 공격하여 조왕趙王을 사로잡고 직접 연나라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고 말았다.(B.C.228) 이듬해 그 유명한 태자太子 형가荊軻를 만나 소설보다 핍진한 진시황秦始皇 시살弑殺 작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간 뒤 진나라는 즉시 왕전王翦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침공하게 하여 수도 까지 이르러 연왕燕王 는 요동까지 도망하였지만 다음해 진나라 장수 왕분王賁에 의해 사로잡히고 결국 진나라 천하통일의 최종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B.C.222) 이 연나라 역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포표鮑彪에 “나라는 동쪽으로는 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이며 서쪽으로는 대군代郡안문鴈門이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탁군涿郡용성容城범양范陽이었으며 북쪽으로는 신성新城고안故安탁현涿縣양향良鄕신창新昌이었다. 발해渤海안차安次낙랑樂浪현도玄菟 역시 이에 속하였다.”라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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