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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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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齊人有者,
貧乏不能自存, 使人屬孟嘗君, 願寄食門下.
孟嘗君曰:
“客何好?”
曰:
“客無好也.”
曰:
“客何能?”
曰:
“客無能也.”
孟嘗君笑而受之曰:
“諾.”
左右以君賤之也, 食以草具.
居有頃, 倚柱彈其劍, 歌曰:
歸來乎!
食無魚.”
左右以告. 孟嘗君曰:
“食之, .”
居有頃, 復彈其鋏, 歌曰:
“長鋏歸來乎!
出無車.”
左右皆笑之, 以告. 孟嘗君曰:
“爲之駕, 比門下之車客.”
於是乘其車, 揭其劍, 過其友, 曰:
“孟嘗君客我.”
後有頃, 復彈其劍鋏, 歌曰:
“長鋏歸來乎!
無以爲家.”
左右皆惡之, 以爲貪而不知足.
孟嘗君問:
“馮公有親乎?”
對曰:
“有老母.”
孟嘗君使人給其食用, 無使乏. 於是馮諼不復歌.
後孟嘗君出記, 問門下諸客:
“誰習計會,
能爲文收責於薛者乎?”
馮諼署曰:
“能.”
孟嘗君怪之, 曰:
“此誰也?”
左右曰:
“乃歌夫長鋏歸來者也.”
孟嘗君笑曰:
“客果有能也, 吾負之, 未嘗見也.”
請而見之, 謝曰:
“文倦於事, 憒於憂,
而性懧愚, 沈於國家之事, 開罪於先生.
先生不羞, 乃有意欲爲收責於薛乎?”
馮諼曰:
“願之.”
於是約車治裝, 載券契而行, 辭曰:
“責畢收, 以何市而反?”
孟嘗君曰:
“視吾家所寡有者.”
驅而之薛,
使吏召諸民當償者, 悉來合券.
券徧合, 起, 矯命以責賜諸民, 因燒其券, 民稱“萬歲”.
長驅到齊, 晨而求見.
孟嘗君怪其疾也, 衣冠而見之, 曰:
“責畢收乎?
來何疾也!”
曰:
“收畢矣.”
“以何市而反?”
馮諼曰:
“君云:視吾家所寡有者.
臣竊計, 君宮中積珍寶, 狗馬實外廐, 美人充下陳. 君家所寡有者以義耳.
竊以爲君市義.”
孟嘗君曰:
“市義奈何?”
曰:
“今君有區區之薛, 不拊愛子其民, 因而賈利之.
臣竊矯君命, 以責賜諸民, 因燒其券, 民稱”萬歲“.
乃臣所以爲君市義也.”
孟嘗君不說, 曰:
“諾,
先生休矣!”
後期年, 齊王謂孟嘗君曰:
孟嘗君就國於薛,
未至百里, 民扶老攜幼, 迎君道中.
孟嘗君顧謂馮諼:
“先生所爲文市義者, 乃今日見之.”
馮諼曰:
“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
今君有一窟, 未得高枕而臥也.
請爲君復鑿二窟.”
孟嘗君予車五十乘, 金五百斤, 西遊於梁,
曰:
“齊放其大臣孟嘗君於諸侯,
諸侯先迎之者, 富而兵强.”
於是, 梁王虛上位, 以故相爲上將軍, 遣使者, 黃金千斤, 車百乘, 往聘孟嘗君.
馮諼先驅誡孟嘗君曰:
“千金, 重幣也; 百乘, 顯使也.
齊其聞之矣.”
梁使三反, 孟嘗君固辭不往也.
齊王聞之, 君臣恐懼,
遣太傅賫黃金千斤, 文車二駟, 服劍一, 封書謝孟嘗君曰:
“寡人不祥, 被於宗廟之祟, 沈於諂諛之臣, 開罪於君, 寡人不足爲也.
願君顧先王之宗廟, 姑反國統萬人乎?”
馮諼誡孟嘗君曰:
“願請先王之祭器, 立宗廟於薛.”
廟成, 還報孟嘗君曰:
“三窟已就,
君姑高枕爲樂矣.”
孟嘗君爲相數十年, 無纖介之禍者, 馮諼之計也.


나라 사람에 풍훤馮諼이란 자가 있었다.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어, 사람을 시켜 맹상군孟嘗君에게 문하門下에서 기식寄食하기를 원한다고 부탁하였다.
맹상군이 말하였다.
은 무엇을 좋아하오?”
그가 말하였다.
“객은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말하였다.
“객은 무엇에 능하오?”
그가 대답하였다.
“객은 아무 것도 능한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웃고 받아들이며 말하였다.
“좋소.”
그래서 좌우는 맹상군이 그를 천하게 여긴다고 보았고 거친 음식만 주었다.
얼마 지나자 풍훤은 기둥에 기대어 자신의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장협長鋏아, 돌아가자!
식사 때 생선 한 가지 없구나.”
좌우가 이를 고하자 맹상군이 말하였다.
“생선을 먹여 주고, 문하의 객에 맞추어 대우해 주거라.”
얼마 후,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외출에 타고 다닐 수레가 없구나.”
좌우가 모두 비웃으며 고하자 맹상군이 말하였다.
“수레를 타게 해 주고 수레 타는 식객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라.”
이에 풍훤은 그 수레를 타고 그 장검을 쳐들고는 친구들 옆을 지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맹상군이 로 나를 대우해 주고 있다.”
그러다 얼마 후 다시 장검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가족을 부양할 수 없구나.”
식객들은 모두 미워하여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여겼다.
맹상군이 물었다.
풍공馮公에게 어버이가 계시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노모가 계시다고 합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노모에게 먹을 것과 일용품을 제공하여 궁핍하지 않게 해 주었더니, 그제야 풍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 후 맹상군이 장부를 내놓고 문하의 제객諸客들에게 물었다.
“누가 회계會計에 익숙한가?
누가 나를 위해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겠는가?”
그러자 풍훤이 서명하고는 말하였다.
“제가 히 하겠습니다.”
맹상군이 괴이하여 물었다.
“이게 누구인가?”
좌우가 말하였다.
“바로 ‘장협아, 돌아가자’라고 노래 부르던 그 자입니다.”
맹상군은 웃으며 말하였다.
은 과연 유능한데, 내가 잊고 너무 오래 만나지 못했소.”
맹상군은 그를 청하여 만나 사과하였다.
“저는 사무가 번잡하여 피곤하고, 근심이 많아 마음이 혼란합니다.
성격도 어리석은 데다가 나라 일에 얽매어 선생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마시고 저를 위하여 설 땅에 가서 빚을 좀 받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풍훤이 말하였다.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곧 수레를 준비하고 행장을 꾸려 빚문서를 싣고 떠났는데, 하직하며 말하였다.
“빚을 다 받으면 무슨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올까요?”
맹상군이 말하였다.
“우리 집에 부족해 보이는 것이면 됩니다.”
풍훤은 수레를 몰아 설 땅으로 갔다.
도착하자 관리를 시켜 백성 중에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 자들을 불러 놓고 채권의 내용이 맞는가를 확인하였다.
대조를 전부 마치자 일어서서 맹상군의 명을 가탁假託해 백성들의 빚을 전부 탕감하고는 빚문서를 태워 버리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풍훤은 말을 달려 제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에 맹상군 뵙기를 청하였다.
맹상군은 그가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의관을 정제하고 만나 물었다.
“빚은 모두 받았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소?”
풍훤이 말하였다.
“모두 받아왔습니다.”
“무얼 사 가지고 왔소?”
풍훤이 말하였다.
께서 말씀하시기를 ‘살펴보아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을 사 오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니 의 집안에는 진보珍寶가 가득 쌓여 있고, 개와 말은 바깥 마구간까지 가득 차 있으며, 미녀들은 후열後列에까지 가득하여 의 집안에 부족한 것이라고는 바로 ‘’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을 위하여 그 ‘의’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맹상군이 말하였다.
“의를 사오다니 무슨 말이오?”
풍훤이 말하였다.
“지금 께서는 하찮은 봉지인 설 땅에서 그곳 백성을 자녀처럼 사랑해 주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돈놀이를 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의 명령을 가탁하여 백성들에게 그 빚을 전부 탕감해 문서를 태워버리도록 했더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을 위하여 사온 ‘의’라는 것입니다.”
맹상군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좋소.
선생은 가서 쉬시오.”
그로부터 1년 후, 제왕齊王(湣王)이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저는 감히 아버지(宣王)의 신하를 저의 신하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맹상군은 봉지封地 땅으로 가야 했다.
미처 1백 리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설 땅 백성들이 노약자를 부축하고 나와 맹상군을 영접하려 길을 메우고 있었다.
맹상군이 풍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선생께서 저를 위해 사온 ‘의’라는 것을 오늘에야 보는구려.”
풍훤이 말하였다.
“교활한 토끼는 굴이 세 개[狡兎三窟]이어야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께는 겨우 굴 하나가 있을 뿐이니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울 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청컨대 을 위하여 두 개의 굴을 더 파 드리겠습니다.”
이리하여 맹상군은 풍훤에게 수레 50 과 금 5백 근을 주어 서쪽 (魏)나라로 유세遊說를 보냈다.
풍훤은 혜왕惠王에게 이렇게 유세하였다.
나라가 그 대신大臣 맹상군을 제후들에게 쫓아냈습니다.
제후들 중에 누구든지 그를 먼저 맞이하는 나라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룩할 것입니다.”
이에 양왕梁王상위上位(丞相)의 자리를 더 만들어 비워 놓고 원래 승상은 상장군上將軍을 삼은 후, 사자를 보내 황금 1천 근과 수레 1백 승을 주어 맹상군을 모셔오게 하였다.
풍훤은 먼저 달려와 맹상군에게 경계 말을 하였다.
“1천 근의 황금은 귀중한 빙례聘禮이며, 1백 승은 너무 큰 사절使節입니다.
제나라가 이미 이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 사절단이 세 번이나 왕복하였지만 맹상군은 굳이 사양하며 가지 않았다.
제왕齊王이 이런 소식을 듣고 임금과 신하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곧 태부太傅를 보내어 황금 1천 과 무늬로 꾸민 수레 2, 패검佩劍 한 자루에다 맹상군에게 사과하는 봉서封書까지 보냈다.
“과인이 하지 못하여 종묘宗廟에서 내린 를 입고 아첨하는 신하들에게 빠져 그만 군에게 죄를 지었으니, 이는 과인이 부족하여 저지른 일입니다.
원컨대 군께서는 선왕의 종묘를 생각하시어 우선 돌아와 만민을 다스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풍훤이 다시 맹상군에게 경계하였다.
“원컨대 이때를 놓치지 말고 먼저 선왕의 제기祭器를 옮겨 설 땅에다가 종묘를 세우겠다고 청하십시오.”
종묘가 완성되자 풍훤이 맹상군에게 보고하였다.
“이제 세 개의 굴이 완성되었습니다.
군께서는 어느 정도 베개를 높이 베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맹상군이 수십 년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작은 재앙조차 당하지 않은 것은 모두 풍훤의 계책計策이었던 것이다.


역주
역주1 148. 齊人有馮諼者 : 이 장의 내용은 《史記》 〈孟嘗君列傳〉에도 실려 있으나 약간 차이가 있다.
역주2 馮諼 : 《史記》에는 馮驩으로 되어 있으며, 馮喧으로도 쓴다. 《史記》 〈孟嘗君列傳〉 참조.
역주3 長鋏 : 긴 칼, 長劍.
역주4 比門下之客 : 孟嘗君은 식객을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上等은 代舍라 하여 자기와 같은 급의 上客인데 고기와 수레가 제공된다. 中等은 幸舍라 하여 앞으로 임용 가능한 자, 즉 中客인데 고기는 있으나 수레는 없다. 下等은 傳舍라 하여 그저 먹고 따뜻할 정도로 대우하는 下客이다.
역주5 不敢以先王之臣爲臣 : 齊나라 湣王 때의 일로 孟嘗君이 秦나라에서 鷄鳴狗盜의 고사처럼 간신히 도망쳐 나오자 秦 昭王이 그의 어짊을 두려워하여 奸計를 써서 齊나라의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는데, 湣王이 과연 그 계략을 들어 孟嘗君을 면직시키기 위해 이런 핑계를 댄 것이다.
역주6 惠王 : 梁 惠王, 즉 魏 惠王. 그러나 이때는 이미 梁 惠王이 죽은 지 30여 년 후이다. 《史記》에는 秦王으로 되어 있는데, 昭襄王일 가능성이 높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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