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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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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說魏王曰:
“魏地方不至千里, 卒不過三十萬人.
地四平, 諸侯四通, 條達輻湊,
無有名山大川之阻.
至梁, 不過百里; 從至梁, 二百餘里. 馬馳人趨, 不待倦而至梁.
南與楚境, 西與韓境, 北與趙境, 東與齊境, 卒戍四方, 守亭障者參列.
粟糧, 不下十萬.
魏之地勢, 故戰場也.
魏南與楚而不與齊, 則齊攻其東;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不合於韓, 則韓攻其西; 不親於楚, 則楚攻其南.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且夫諸侯之爲從者, 以安社稷‧尊主‧强兵‧顯名也.
合從者, 一天下, 約爲兄弟, 刑白馬以盟於之上以相堅也.
夫親昆弟, 同父母, 尙有爭錢財. 而欲恃詐僞反覆蘇秦之餘謀, 其不可以成亦明矣.
大王不事秦, 秦下兵攻河外, 拔卷‧衍‧燕‧酸棗, 劫衛取, 則趙不南;
趙不南, 則魏不北;
魏不北, 則從道絶; 從道絶, 則大王之國欲求無危不可得也.
秦挾韓而攻魏, 韓劫於秦, 不敢不聽.
秦‧韓爲一國, 魏之亡可立而須也,
此臣之所以爲大王患也.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則楚‧韓必不敢動;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
且夫秦之所欲弱莫如楚, 而能弱楚者莫若魏.
楚雖有富大之名, 其實空虛; 其卒雖衆, 多言而輕走, 易北, 不敢堅戰.
魏之兵南面而伐, 勝楚必矣.
夫虧楚而益魏, 攻楚而適秦, 內嫁禍安國, 此善事也.
大王不聽臣, 秦甲出而東, 雖欲事秦而不可得也.
且夫從人多奮辭而寡可信,
說一諸侯之王, 出而乘其車; 約一國而反, 成而封侯之基.
是故天下之遊士, 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 以說人主.
人主覽其辭, 牽其說, 惡得無眩哉?
臣聞積羽沉舟, 羣輕折軸, 衆口鑠金,
故願大王之熟計之也.”
魏王曰:
“寡人蠢愚, 前計失之.
請稱東藩, 築帝宮, 受冠帶, 祠春秋, 效河外.”


298. 장의張儀나라를 위하여 위왕魏王에게 연횡連橫을 유세하다
장의張儀나라를 위하여 연횡連橫하려고 위왕魏王에게 유세하였다.
나라 땅은 1천 리가 되지 못하며 사졸도 30만을 넘지 못합니다.
지세는 사방이 평평하며 제후들과 사통四通하여 마치 수레살이 모이는 바퀴통 같은 곳입니다.
거기다가 천연 요새가 될 만한 명산대천名山大川도 없습니다.
땅부터 대량大梁까지 거리는 1백 리에 불과하며 에서 대량까지도 2백여 리로 말을 몰아 달리거나 사람이 뛰어가도 피로해지기 전에 이미 대량에 다다르고 맙니다.
남쪽으로는 나라, 서쪽으로는 나라, 북쪽으로는 나라, 동쪽으로는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사방은 모두 군대가 지켜야 하며 변방의 보루를 지키는 자가 늘어서 있어야 합니다.
군량을 조운漕運하여 창고에 들이는 데도 10만 아래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나라의 지세이기 때문에 전쟁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위나라가 남으로 나라와 친하면서 나라를 멀리하면 제나라가 그 동쪽을 칠 것이요, 동쪽으로 제나라와 친하면서 나라를 멀리하면 조나라가 그 북쪽을 칠 것이며, 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한나라도 그 서쪽을 칠 것이며, 초나라와 친하지 않으면 초나라는 그 남쪽을 쳐들어 올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사분오열四分五裂의 지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후들이 합종合從을 하면 사직社稷을 안정시키고 존왕尊王, 강병强兵하여 이름을 드날리게 될 것이라 합니다.
합종이란 온 천하가 형제로 약속해서 백마白馬를 잡아 원수洹水 가에서 회맹會盟을 하여 서로 믿음을 굳게 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형제로서 부모를 같이한 사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서로 돈과 재물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법인데, 사위반복詐偽反覆 무상한 소진蘇秦이 쓰다버린 나머지의 얕은 꾀를 믿으려 하니,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뻔합니다.
대왕이 나라를 섬기지 않으시다가 진나라가 군대를 내려 하외河外를 공략해 , , , 산조酸棗를 함락하고, 나라를 협박하여 진양晉陽을 빼앗으면 나라의 세력은 남으로 뻗칠 수 없게 됩니다.
조나라가 남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되면 나라는 북쪽으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위나라가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합종의 길은 끊어지고 말며,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대왕의 나라는 위태롭지 않으려 해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다시 한나라를 끼고 위나라를 공략할 때,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위협을 당해 감히 그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진나라와 한나라가 하나로 뭉치면 위나라가 망하는 것은 선 채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진나라를 섬기느니만 못합니다.
진나라만 섬기고 있으면 나라와 한나라도 감히 움직이지 못합니다.
초나라‧한나라의 〈근심이〉 없어지면 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울 수 있고, 나라는 틀림없이 아무 근심이 없게 됩니다.
나라가 가장 약화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나라 이외에는 없으며, 그러한 초나라를 능히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나라밖에 없습니다.
초나라가 비록 부강한 나라라고는 하나 사실은 공허한 나라이며, 그 병졸이 많다고 하나 실은 말만 많고 쉽게 도망가고 쉽게 패하는 무리들로서 굳센 싸움은 해내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래서 위나라가 군대를 내어 남쪽으로 초나라를 치면, 초나라를 이기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무릇 초나라를 깎아 위나라를 유익하게 하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진나라 마음에 들면 안으로는 를 털어버리고 나라를 편안히 하는 것이니 이는 아주 좋은 일입니다.
대왕이 제 말씀을 듣지 않으면 진나라는 군사를 풀어 동으로 밀려올 것이니, 그때에는 진나라를 섬기고자 해도 이미 때가 늦고 맙니다.
더구나 합종을 주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큰소리를 치지만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 제후왕諸侯王을 설복시켜 나올 때는 왕이 내어 준 수레를 타고 뽐내며, 그 어떤 나라라도 합종의 약속을 맺어 놓고 돌아와서는 봉후封侯될 터전을 만듭니다.
이 때문에 천하의 유사遊士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눈을 흘기고 이를 갈면서 합종이 편하다고 그 임금들을 설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들이 그 말을 듣고 그 설득에 끌리어 어찌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깃털도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적우침주積羽沉舟], 가벼운 것도 모이면 수레 축을 꺾고[군경절축羣輕折軸], 여러 입이 모이면 쇠도 녹인다[중구삭금衆口鑠金].’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대왕께서 자세히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위왕魏王이 말하였다.
“과인이 어리석어 지난번의 합종 계획이 과실인 줄을 이제 알겠습니다.
청컨대 동번東藩이라 일컬으며 제궁帝宮을 짓고, 관대冠帶를 받고, 봄‧가을로 제사 밑천을 바치고, 하외河外 땅을 바치겠습니다.”


역주
역주1 : 이는 《史記》 〈張儀列傳〉의 기록과 같다. 시기는 B.C.317년.
역주2 張儀爲秦連橫 : 秦의 相이 되었던 張儀가 秦을 위해서 相을 辭任하고 魏의 相이 되었다. 먼저 魏로 하여금 秦을 섬기게 하여 다른 제후가 본받을 수 있게 꾸몄다. 그러나 당시 魏의 襄王이 이를 거절, 그후 그의 아들인 哀王도 듣지 않았다. 張儀는 몰래 秦으로 하여금 魏를 치고, 다시 魏에게 連橫說을 강요한 것이다.
역주3 : 新鄭. 당시 韓의 都邑, 지금의 河南省 新鄭縣.
역주4 : 春秋時代 陳의 都邑地, 지금의 河南省 淮陽縣, 당시 楚地로서 중요한 要地.
역주5 漕庾 : 漕는 水運, 漕運, 庾는 水漕倉庫.
역주6 洹水 : 혹은 安陽河라고도 한다.
역주7 晉陽 : 衛의 都邑, 지금의 山東省 鄲城縣.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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