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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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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信侯欲攻趙以廣, 使剛成君事燕三年, 而燕質於秦.
文信侯因請相燕, 欲與燕共伐趙, 以廣河間之地.
張唐辭曰:
“燕者必徑於趙,
文信侯去而不快.
“君侯何不快甚也?”
文信侯曰:
“吾令剛成君蔡澤事燕三年, 而燕太子已入質矣.
今吾自請張卿相燕, 而不肯行.”
甘羅曰:
“臣行之.”
文信君叱去曰:
“我自行之而不肯, 汝安能行之也?”
甘羅曰:
今臣生十二歲於玆矣! 君其試臣, 奚以遽言叱也?”
甘羅見張唐曰:
“卿之功, 孰與武安君?”
唐曰:
“武安君戰勝攻取, 不知其數; 攻城墮邑, 不知其數. 臣之功不如武安君也.”
甘羅曰:
“卿明知功之不如武安君歟?”
曰:
“知之.”
“應侯之用秦也, 孰與文信侯專?”
曰:
“應侯不如文信侯專.”
曰:
“卿明知爲不如文信侯專歟?”
曰:
“知之.”
甘羅曰:
“應侯欲伐趙, 武安君難之, 去咸陽七里, .
今文信侯自請卿相燕, 而卿不肯行, 臣不知卿所死之處矣!”
唐曰:
“請因孺子而行!”
令庫具車, 廐具馬, 府具幣, 行有日矣.
甘羅謂文信侯曰:
“借臣車五乘,
請爲張唐先報趙.”
, 趙王郊迎.
謂趙王曰:
“聞燕太子丹之入秦與?”
曰:
“聞之.”
“聞張唐之相燕與?”
曰:
“聞之.”
“燕太子入秦者, 燕不欺秦也. 張唐相燕者, 秦不欺燕也;
秦‧燕不相欺, 則伐趙, 危矣.
燕‧秦所以不相欺者, 無異故, 欲攻趙而廣河間也.
今王齎臣五城以廣河間, 請歸燕太子, 與强趙攻弱燕.”
趙王立割五城以廣河間, 歸燕太子.
趙攻燕, 得上谷三十六縣, 與秦什一.


문신후文信侯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다
문신후文信侯(呂不韋)가 나라를 공벌하여 하간河間 땅을 넓히고자 강성군剛成君 채택蔡澤나라에 보내어 3년 동안 섬기는 대신, 나라 태자太子 나라에 인질로 오게 하였다.
문신후는 이에 장당張唐을 연나라 상국으로 삼고, 연나라와 함께 조나라를 공격하여 하간河間을 넓힐 계획이었다.
그런데 장당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연나라는 반드시 조나라 땅을 거쳐야 합니다.
조나라 사람으로 저 을 잡는 자는 1백 리의 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불위는 장당의 집을 나서며 불쾌하였다.
소서자少庶子 감라甘羅가 말하였다.
군후君侯께서는 어찌 그리 매우 언짢아하십니까?”
문신후가 말하였다.
“내가 강성군 채택을 연나라에 보내어 3년 동안 섬기는 대신, 연나라 태자太子 이 인질로 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장당에게 연나라에 가서 상국이 되어 달라고 청하였더니 가기 싫다고 한다.”
감라가 말하였다.
“제가 그를 가도록 하겠습니다.”
문신후가 꾸짖어 내쫓으며 말하였다.
“내 스스로 찾아갔어도 가려 하지 않았는데 네가 어찌 그를 가게 할 수 있겠느냐?”
감라가 말하였다.
“무릇 항탁項橐은 7세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제가 벌써 열두 살인데 군께서는 저를 시험해 볼 것이지 어찌 급하게 꾸짖는 말씀만 하십니까?”
감라가 장당을 만나 말하였다.
무안군武安君(白起)의 공은 누가 큽니까?”
장당이 말하였다.
“무안군은 전쟁에 이겨 공취攻取함이 헤아릴 수 없고, 을 공격해 빼앗은 고을도 헤아릴 수가 없으니, 내 공은 무안군만 못하지.”
감라가 말하였다.
이 무안군만 못함을 명백히 알고 계십니까?”
장당이 말하였다.
“알고 있지.”
응후應侯(范雎)가 에 등용되었을 때와 문신후가 전권專權한 것과는 어떻습니까?”
장당이 말하였다.
“응후가 아무래도 문신후만 못하지.”
감라가 말하였다.
께서는 응후가 문신후만 못함을 명백히 알고 계십니까?”
장당이 말하였다.
“알고 있다.”
감라가 말하였다.
“응후가 나라를 치려 할 때 무안군이 고의로 어렵게 했기 때문에 응후는 무안군 백기를 함양咸陽의 7리 밖에서 목을 졸라 죽이고 말았습니다.
지금 문신후文信侯께 연나라 재상이 되어달라고 청하는데 경께서 가지 못하겠다고 버티니, 저는 경께서 어디서 죽음을 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당이 말하였다.
“어린 네 말대로 연나라로 가겠다!”
그리하여 곳간에 명령하여 수레를 준비하고, 마구간의 말을 준비하며, 창고에서 재물을 갖추게 하여 떠날 날을 정하게 하였다.
감라가 문신후文信侯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다섯 의 마차를 빌려주십시오.
장당을 위해 먼저 제가 나라에 보고하겠습니다.”
감라가 조왕趙王을 뵈러 가자 조왕은 교외에까지 나와 그를 영접하였다.
감라가 말하였다.
나라 태자太子 나라에 인질로 간다는 사실을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들었소.”
“그러면 장당이 나라에 상국으로 간다는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들었소.”
“연나라가 태자 단을 진나라에 보낸 것은 연나라가 진나라를 속이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장당이 연나라의 상국이 되는 것은 연나라를 속이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진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속이지 아니하면 조나라를 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조나라는 위험해집니다.
연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속이지 않겠다고 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조나라를 공격하여 하간河間 땅을 넓히려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5개 을 저에게 주어 하간河間의 땅을 넓히게 해 주시면 연나라 태자를 돌려보내도록 청하고, 강한 조나라와 힘을 합쳐 약한 연나라를 치게 하겠습니다.”
조왕趙王은 즉시 5개 성을 떼어 주어 하간의 땅을 넓히게 해 주었으며 연 태자 나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나라는 연나라를 공격하여 상곡上谷 땅 36개 현을 얻어 그 십분十分을 진나라에 주었다.


역주
역주1 108. 文信侯欲攻趙 : 이 장의 기록은 《史記》 〈甘茂列傳〉과 대체로 같다.
역주2 河間 : 邑 이름. 혹은 지역 이름. 지금의 河北省 河間縣. 혹은 河水 사이의 땅을 말하기도 한다.
역주3 蔡澤 : 燕나라 출신의 辯士. 秦나라에 와서 昭襄王‧孝文王‧莊襄王‧始皇을 섬겼다.
역주4 太子 : 燕나라의 太子 丹을 가리킨다. 始皇 때에 蔡澤이 燕에 가서 설득한 끝에 3년 후 태자인 丹을 인질로 秦나라에 보냈다. 太子 丹은 秦나라에 와서 始皇이 장차 六國을 병합할 야욕이 있음을 알고 도망쳐 귀국한 후에 荊軻를 시켜 始皇을 咸陽宮에서 암살하려다 실패하였다. 《史記》 〈刺客列傳〉 및 《戰國策》 〈燕策〉 475장 참조.
역주5 張唐 : 秦나라 장군. 字는 卿. 《史記》에는 張卿으로 되어 있다.
역주6 趙人得唐者 受百里之地 : 張唐이 일찍이 昭王 때 趙나라를 쳤기 때문에 현상금이 붙었다.
역주7 少庶子甘羅 : 少庶子는 관직명. 甘羅는 甘茂의 손자. 문신후의 家臣이었다.
역주8 項橐生七歲而爲孔子師 : 項橐은 아이의 이름이며, 項託으로도 쓴다. 공자가 어린아이 말에서도 배울 게 있다고 하면서 그를 스승이라 하였다. 《淮南子》 高誘 註에 의하면 項託이 7歲 때 공자를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한다.
역주9 絞而殺之 : 일찍이 白起가 趙나라의 군사 40만을 묻어 죽인 후 趙나라 서울 邯鄲을 포위하였다. 應侯(范雎)가 白起의 커지는 功을 시기해서 불러들이자 白起는 應侯를 원망하고, 그 다음 邯鄲 공격 때 병을 핑계로 출전하지 않았다. 과연 秦나라는 대패하였고, 應侯는 그 책임이 白起에게 있다고 昭王에게 참소하여 사병으로 강등되고 결국 근처의 杜郵에서 자살하고 만다.
역주10 趙王 : 趙 襄王, 혹은 悼襄王이라고도 한다. 孝成王의 아들이며 이름은 偃이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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