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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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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止者千數而弗聽.
欲止之, 孟嘗曰:
“人事者, 吾已盡知之矣; 吾所未聞者, 獨鬼事耳.”
蘇秦曰:
“臣之來也, 固不敢言人事也, 固且以鬼事見君.”
孟嘗君見之.
謂孟嘗君曰:
“今者臣來, 過於上,
相與語. 桃梗謂土偶人曰:子, 西岸之土也, 挺子以爲人,
至歲八月, 降雨下, 淄水至, 則汝殘矣.
土偶曰:不然.
吾西岸之土也, 土則復西岸耳.
今子, 也, 刻削子以爲人,
降雨下, 淄水至, 流子而去, 則子漂漂者將何如耳?
今秦四塞之國, 譬若虎口,
而君入之, 則臣不知君所出矣.”
孟嘗君乃止.


맹상군孟嘗君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다
맹상군孟嘗君이 장차 나라에 가려고 하자 말리는 자가 수천 명이나 되었지만 듣지 않았다.
소진蘇秦이 이를 저지하려고 하니, 맹상군이 말하였다.
인사人事에 대한 일은 내가 이제 모두 알고 있으며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면 귀신에 대한 것뿐이오.”
소진이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감히 인간의 일을 말씀드리려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귀신의 일을 말씀드리려 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맹상군이 그를 만나보았다.
소진이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방금 제가 여기 오는 길에 치수淄水를 지날 때입니다.
토우土偶도경桃梗 두 인형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도경桃梗토우土偶에게 ‘너는 원래 서쪽 언덕의 흙이었는데 사람이 너를 빚어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8월이 되어 비가 내려 이 치수까지 이르면 너는 풀어져 버리고 만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토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서쪽 언덕의 진흙이니, 풀어져도 다시 서쪽 언덕의 흙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 너는 저 동국東國도경桃梗이었는데 깎고 다듬어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비가 내려 치수까지 이르면 너를 흘러 보낼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는 장차 흘러서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나라는 사면이 꽉 막힌 나라로 마치 호구虎口와 같습니다.
께서 그 속에 들어갔다가 어느 길로 나올 수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맹상군은 이에 그만두었다.


역주
역주1 138. 孟嘗君將入秦 : 이 내용은 《史記》 〈孟嘗君列傳〉과 《說苑》 〈正諫〉篇에도 실려 있는데, B.C.300년의 일이다.
역주2 孟嘗君將入秦 : 《史記》 〈孟嘗君列傳〉에 의하면 “秦 昭王이 맹상군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는 涇陽君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는 맹상군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孟嘗君은 당시 齊 湣王의 相이었다.
역주3 蘇秦 : 《史記》에는 蘇代로 되어 있는데, 蘇秦은 죽은 지 이미 10여 년 후이다.
역주4 : 齊의 도읍 臨淄를 지나는 물 이름.
역주5 土偶人與桃梗 : 《史記》에는 木禺人與土禺人이라고 되어 있고, 그 註에 “蘇代가 土偶를 涇陽君에 비하고 木偶를 孟嘗君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桃梗은 중국 풍속에 陽을 상징하는 복숭아나무로 荼與와 鬱壘라는 두 귀신의 형상을 깎아 正初에 대문 양쪽에 걸어 惡鬼(陰)를 물리치는 辟邪 풍속의 하나. 뒤에 이것이 門聯, 春聯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정월 초에 대문 혹은 기둥에 붙이는 풍속이 되었다.(拙稿 〈聯語考〉 참조)
역주6 東國之桃梗 : 秦나라에 비해 동쪽인 齊나라의 孟嘗君을 비유한 것이다. 원주에는 桃梗의 유래에 대하여 “東海 가운데 度溯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위에 大桃가 있다. 구불구불 三千里나 엉켜 있으며, 그 낮은 가지 사이의 東北을 鬼門이라 하며 萬鬼가 이를 통하여 往來한다. 그 위에 두 神人이 있어 하나를 荼與, 다른 하나를 鬱雷라 하며 害鬼를 다스린다. 그래서 世人으로 하여금 이 桃梗을 刻하고 荼與와 鬱雷의 머리를 그려 正歲에 門戶에 건다.”라고 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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