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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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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氏閉關而不通.
齊使爲之謂魏王曰:
“齊請以, 而秦不受也.
夫秦非不利有齊而得宋地也,
然其所以不受者, 不信齊王與蘇秦也.
今秦見齊‧魏之不合也如此其甚也, 則齊必不欺秦, 而秦信齊矣.
齊‧秦合而涇陽君有宋地, 則非魏之利也.
故王不如復東蘇秦, 秦必疑齊而不聽也.
夫齊‧秦不合, 天下無憂,
伐齊成, 則地廣矣.”


300. 소진蘇秦나라에 갇히다
소대蘇代나라에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위나라는 관문을 닫아버리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라가 소려蘇厲를 보내어 위왕魏王(애왕哀王)에게 말하였다.
“제나라가 나라 땅을 〈나라〉 경양군涇陽君에게 하려 하였지만 진나라가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진나라로서 제나라가 자기 편이 되어 주고 송나라 땅까지 얻게 되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받지 않는 이유는 제왕齊王(민왕湣王)과 소대蘇代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에 불화가 이처럼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제나라는 더 이상 진나라를 속일 필요가 없게 되고, 진나라도 제나라를 믿어 줄 것입니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합쳐지고 경양군이 송나라 땅까지 얻게 되면 위나라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소진을 동쪽, 나라로 다시 돌려보내어 진나라로 하여금 제나라를 의심하고 들어주지 않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무릇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지 않으면 천하의 근심은 다 없어집니다.
〈그 후에〉 제나라를 쳐서 성공한다면 땅을 넓힐 수 있게 됩니다.”


역주
역주1 : 이 내용은 《史記》 〈蘇秦列傳〉과 같다. 燕王 噲에게 나라를 재상인 子之에게 넘겨주도록 모책을 썼던 인물이 바로 蘇代이다. 그래서 魏나라는 燕나라를 위해 蘇代를 구금한 것이다. 한편 《史記》에는 蘇秦이 B.C.320~319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燕王 噲가 子之에게 禪讓한 사건은 B.C.316년이다. 따라서 이 장의 蘇秦은 잘못으로 여겨지는 한편, 본장은 452장과 관련이 있다.
역주2 蘇秦(代)拘於魏 : 《史記》 〈蘇秦列傳〉에는 蘇代로 되어 있어 이를 따른다. 蘇秦이 죽은 후에 그의 두 동생 蘇代와 蘇厲는 燕王의 신하가 되었다. 뒤에 代는 燕의 相國 아들과 모의해서 燕의 내란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齊로 도망하니, 齊는 이를 잘 대접해 주었다. 그런데 도망가던 중에 魏를 지나다가 이 일이 생긴 것이다.
역주3 韓(齊) : 鮑彪本에 의하여 ‘齊’로 고쳤다.
역주4 蘇厲 : 소진과 소대의 동생. 魏에 蘇代의 동생 蘇厲를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史記》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역주5 宋地 : 宋은 이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王을 칭하고 있었다. 지금의 河南省 商丘縣에서 東으로 江蘇省 銅山縣 일대. 宋은 B.C.286년 齊에게 망하였다.
역주6 涇陽君 : 秦 昭王의 同母弟인 公子 悝. 이 이야기는 만약 蘇代를 풀어 주지 않으면 齊는 秦과 연합해서 魏의 동쪽 宋地를 쳐서 그 땅을 秦의 涇陽君 封地 명목으로 주어 위를 위협하겠다는 뜻이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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