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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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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齊助楚攻秦, 取.
其後, 秦欲伐齊, 齊‧楚之交善, 惠王患之,
謂張儀曰:
“吾欲伐齊, 齊‧楚方懽, 子爲寡人慮之,
奈何?”
張儀曰:
“王其爲臣約車幷幣,
臣請試之.”
張儀南見曰:
“弊邑之王所說甚者, 無大大王;
唯儀之所甚願爲臣者, 亦無大大王.
弊邑之王所甚憎者, 亦無先齊王; 唯儀之甚憎者, 亦無大齊王.
今齊王之罪,
其於弊邑之王甚厚, 弊邑欲伐之, 而大國與之懽,
是以弊邑之王不得事, 而儀不得爲臣也.
大王苟能閉關絶齊), 臣請使秦王獻之地, 方六百里.
若此, 齊必弱, 齊弱則必爲王役矣.
則是北弱齊, 西德於秦, 而私商於之地以爲利也, 則此一計而三利俱至.”
楚王大說, 宣言之於朝廷, 曰:
得商於之田, 方六百里.”
羣臣聞見者畢賀, 陳軫後見, 獨不賀.
楚王曰:
“不穀不煩一兵, 不傷一人, 而得商於之地六百里, 寡人自以爲智矣!
諸士大夫皆賀, 子獨不賀, 何也?”
陳軫對曰:
“臣見商於之地不可得, 而患必至也,
故不敢妄賀.”
王曰:
“何也?”
對曰:
“夫秦所以重王者, 以王有齊也.
今地未可得而齊先絶, 是楚孤也, 秦又何重孤國?
且先出地絶齊, 秦計必弗爲也; 先絶齊後責地, 且必受欺於張儀. 受欺於張儀, 王必惋之.
是西生秦患, 北絶齊交, 則兩國兵必至矣.”
楚王不聽, 曰:
“吾事善矣!
子其弭口無言, 以待吾事.”
楚王使人絶齊, 使者未來, 又重絶之.
張儀反, 秦使人使齊, 齊‧秦之交陰合.
楚因使一將軍受地於秦.
“張子以寡人不絶齊乎?”
乃使勇士往詈齊王.
張儀知楚絶齊也, 乃出見使者曰:
“從某至某, 廣從六里.”
使者曰:
“臣聞六百里, 不聞六里.”
儀曰:
“儀固以, 安得六百里?”
使者反報楚王, 楚王大怒, 欲興師伐秦.
陳軫曰:
“臣可以言乎?”
王曰:
“可矣.”
軫曰:
“伐秦非計也,
王不如因而賂之一名都, 與之伐齊,
是我亡於秦而取償於齊也. 楚國?
王今已絶齊, 而責欺於秦, 是吾合齊‧秦之交也,
必大傷.”
楚王不聽, 遂擧兵伐秦.
秦與齊合, 韓氏從之.
楚兵大敗於. 故楚之土壤士民‧僅以救亡者, 計失於陳軫, 過聽於張儀.


나라가 나라를 도와 나라를 공격하다
나라가 나라를 도와 나라를 공격하여, 곡옥曲沃 땅을 취하였다.
그 뒤 나라는 나라를 치고자 하였지만 제나라와 나라의 외교가 잘 이루어지고 있어 혜왕惠王은 이를 걱정하였다.
그래서 장의張儀에게 말하였다.
“내가 나라를 치고자 하나 제나라와 초나라가 바야흐로 서로 가까운 관계이니 그대는 과인을 위해 모책을 세워 주시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의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저를 위해 거마車馬폐백幣帛을 마련해 주십시오.
제가 시도해 보겠습니다.”
장의는 남으로 가서 초왕楚王을 만나 말하였다.
“저희 나라 임금이 가장 좋아하는 분으로는 대왕만한 분이 없습니다.
저도 가장 그 신하가 되고 싶은 임금으로는 역시 대왕만한 분이 없습니다.
한편 저희 임금이 제일 싫어하는 자는 역시 제왕齊王(威王)보다 앞선 이가 없으며 제가 싫어하는 이 역시 제나라 왕 같은 이가 없습니다.
지금 그 제나라 왕이 우리 임금에게 중죄重罪를 지었습니다.
이에 우리 나라는 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대국이 제나라와 사이좋게 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임금이 대왕을 섬길 수 없고, 저 또한 대왕의 신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참으로 관문關門을 닫고 제나라를 끊어 주신다면 저는 우리 진왕秦王에게 청하여 6백 리를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는 틀림없이 약해질 것이며, 제나라가 약해지면 그들은 틀림없이 대왕을 위해 사역使役을 할 것입니다.
북으로 제나라가 약해지고 서쪽으로는 나라에 은혜를 베풀고, 사사롭게는 상‧오 땅을 얻어 이익을 삼게 되니, 이야말로 한 번 결정에 세 가지 이익이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초왕楚王이 크게 기뻐하며 조정에 선언하여 말하였다.
“내가 상‧오 땅 6백 리를 얻었다.”
군신群臣들이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축하를 다 마쳤는데, 진진陳軫이 나중에 알현하고는 유독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
초왕楚王이 말하였다.
“내가 병사 하나 번거롭게 하지 아니하고 사람 하나 다치지 아니하면서 상‧오 땅 방 6백 리를 얻어, 과인 스스로도 이를 지혜로운 일이라 여기고 있소.
그래서 여러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축하하는데 그대만은 홀로 축하의 말 한 마디 없으니 무슨 까닭이오?”
진진이 대답하였다.
“제가 보기에는 상‧오 땅은 얻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틀림없이 근심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감히 망령되이 축하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무슨 뜻이오?”
진진이 대답하였다.
“무릇 나라가 대왕을 중히 여기는 것은 왕께서 나라와 우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직 땅도 얻지 않고 먼저 제나라와 외교를 끊어버리면, 우리 초나라만 고립되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나라가 어찌 고립된 초나라를 중히 여기겠습니까?
장차 땅을 먼저 내어 놓으라 하고 나서 나라와 절교하면 나라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나라와 절교를 먼저 하고 나중에 땅을 요구한다면 틀림없이 장의張儀에게 속임만 당하고 말 것이며, 장의에게 속임을 당하고 나면 왕께서는 틀림없이 장의를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서쪽으로 나라에 대한 근심이 생기고, 북으로 나라와의 절교를 하면 그로 인해 두 나라의 군사가 틀림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초왕楚王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말하였다.
“내가 한 일이 옳소!
그대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이나 기다리시오.”
초왕楚王은 사신을 시켜 나라와 외교를 끊었고, 그 사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재차 거듭 절교를 확인하였다.
장의가 나라로 돌아오자 나라는 나라에 사신을 보내 제나라와 진나라는 은밀히 외교를 맺었다.
초나라는 이 일을 인하여 장군 하나로 하여금 진나라에서 땅을 받아오도록 하였다.
[장의는 진나라에 이르자마자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초왕이 말하였다.
“장의는 과인이 아직 제나라와 완전히 외교를 끊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
그리고는 용사勇士를 제나라에 보내어 제왕齊王을 꾸짖게까지 하였다.
장의는 초나라가 제나라를 완전히 끊은 것을 알고는 나타나서 초나라 사신을 만나 말하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6리 너비의 땅을 주겠소.”
사신이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 6백 리라 하였지, 6리란 들어보지 못하였소.”
장의가 말하였다.
“나는 본디 소인인데 무슨 땅이 6백 리나 있겠소?”
사자가 돌아와 초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크게 노하여 병사를 일으켜 을 치겠다고 나섰다.
진진이 말하였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좋소.”
진진이 말하였다.
“지금 진나라를 치고자 하는 것은 계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에게 이름난 도시 하나를 뇌물로 주고, 나라와 연합하여 나라를 치느니만 못합니다.
이는 우리가 나라에게 잃은 것을 나라에게서 보상받는 것으로서, 우리 초나라는 아무런 손실 없이 보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왕께서 이미 제나라와 끊어진 상태에서 진나라에게 속임을 당한 책임을 묻게 되면, 이는 우리가 진나라와 제나라를 더욱 연합하게 만들어주는 꼴만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틀림없이 크게 다치고 말 것입니다.”
초왕은 듣지 않고 드디어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과연 진나라는 제나라와 연합하였고, 게다가 나라까지 가담해서 나라 군사는 두릉杜陵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초나라의 국토와 백성이 깎여, 간신히 멸망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초왕이 진진의 계책을 듣지 않고, 장의의 말을 과신過信해서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059. 齊助楚攻秦 : 《史記》 〈張儀列傳〉과 〈楚世家〉에도 관련된 기록이 실려 있다.
역주2 曲沃 : 원래 魏 땅이었으나 이때는 秦이 점령하고 있었다. 高誘의 註에는 춘추시대 晉邑이라 하였다. 지금의 河南省 靈寶縣 동쪽 曲沃鎭. 원주에 “曲沃은 晉 桓叔이 封받은 곳이다. 戰國時에는 秦이 겸병하여 차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齊나라가 楚나라를 도와 秦을 공격하여, 이를 取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楚王 : 楚 懷王. 이름은 熊槐. 뒤에 張儀의 속임수로 秦나라 咸陽(都邑)까지 秦 昭王을 보러 갔다가 분을 품고 죽었다. 屈原을 추방한 왕으로도 유명하다. 재위 30년.
역주4 원주] 令 : 善이다. 楚王을 잘 섬길 수 없음을 말한다.
역주5 商‧於 : 진나라 남쪽의 지명. 〈秦策〉 046장 참조.
역주6 不穀 : 諸侯가 자신을 낮추어 일컫는 말. 寡人과 같은 뜻.
역주7 [張儀至 稱病不朝] : 이 구절은 앞의 張儀反과 겹치는 말로 衍文인 듯하다.
역주8 小人 : 張儀가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여기의 ‘6里’는 자신의 封地를 뜻한 듯하다.
역주9 不尙全事(乎) : 대본의 事가 高誘의 註에는 乎로 되어 있어 고쳐 번역하였다. “오히려 보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의 뜻.
역주10 固(國) : 대본에는 固로 되어 있으나 이는 國의 誤字로 보이므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1 杜陵 : 地名. 지금의 섬서성 남쪽에 있었다. 《史記》에 의하면 張儀에게 속은 楚 懷王이 秦을 공격하여 丹陽(楚地 河南省 丹水 북쪽)에서 패하였다. 그후 懷王이 병력을 다시 편성하여 藍田(杜陵)에서 또다시 대패하였으니, 흔히 이를 藍田之役이라 한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 8만 병사가 죽고 장군 등 7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
역주12 [非]削弱 : 非는 衍文인 듯하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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