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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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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魏爲與國.
齊‧楚約而欲攻魏,
魏使人求救於秦, 冠蓋相望, 秦救不出.
魏人有者, 年九十餘,
謂魏王曰:
“老臣請出西說秦, 令兵先臣出可乎?”
魏王曰:
“敬諾.”
遂約車而遣之.
唐且見秦王, 秦王曰:
“丈人芒然乃遠至此, 甚苦矣.
魏來求救數矣, 寡人知魏之急矣.”
唐且對曰:
“大王已知魏之急而救不至者, 是大王籌筴之臣無任矣.
且夫魏一萬乘之國, , 以爲秦之强足以爲與也.
今齊‧楚之兵已在魏郊矣, 大王之救不至, 魏急則且割地而約齊‧楚, 王雖欲救之, 豈有及哉?
是亡一萬乘之魏, 而强二敵之齊‧楚也.
竊以爲大王籌筴之臣無任矣.”
秦王喟然愁悟,
遽發兵, 日夜赴魏.
齊‧楚聞之, 乃引兵而去.
魏氏復全, 唐且之說也.


365. 나라 나라가 동맹국이 되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동맹국이 되었다.
나라‧나라가 종약從約하여 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위나라는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그 사신들의 과 수레덮개가 서로 보일 정도로 이어졌으나 진나라는 구원병을 보내 주지 않았다.
위나라에 당저唐且라는 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이미 90이 넘었다.
그가 위왕魏王(안희왕安釐王)에게 말하였다.
“늙은 제가 청컨대 나라에 가서 진나라를 설득하여 구원병이 저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위왕이 말하였다.
“공경히 받들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거마車馬를 준비해서 보냈다.
당저가 진왕秦王(소양왕昭襄王)을 뵙자 진왕이 먼저 물었다.
“노인장께서 피곤하게 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심히 고생하셨습니다.
그 동안 위나라 사신이 자주 달려와 구원을 요청하기에 과인도 위나라가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저가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이미 우리가 긴급하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아직 구원병이 이르지 않은 것은, 대왕의 참모들이 직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위나라는 만승萬乘대국大國인데, 동쪽의 번방藩邦이라 일컬으며 관대冠帶를 귀국으로부터 받고, 봄‧가을로 귀국을 위해 제사 지낼 물품을 바치는 이유는, 귀국이 강성해서 족히 동맹국이 될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나라‧초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우리 위나라 교외까지 이르렀는데 대왕의 구원병이 오지 않으니, 위나라는 급하게 되면 그들 제나라, 초나라에게 땅을 떼어 주고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그때에는 왕께서 비록 돕고 싶다 한들 미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만승의 동맹국인 위나라를 잃고, 적국인 제나라‧초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왕의 참모들은 그 직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왕은 그 말을 듣고 위연히 근심하며 깨달았다.
그리고는 급히 군대를 일으켜 밤낮 쉬지 않고 나라로 달려가게 하였다.
제나라‧초나라가 이를 듣고 군사를 이끌고 철수해 버렸다.
위나라가 다시 나라를 보전하게 된 것은 모두 당저의 유세 덕분이었다.


역주
역주1 : 이 장의 내용은 《史記》 〈魏世家〉와 《新序》에도 실려 있다.
역주2 唐且 : 《史記》에는 唐雎로 되어 있다. 魏나라 사람으로 뒤에 上卿에 봉해졌다.
역주3 稱東藩 受冠帶 祠春秋 : 본서 297장 ‘蘇子爲趙合從說魏王’ 참조.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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