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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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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王令昭睢之秦重張儀.
未至, 死. 逐張儀.
桓臧爲睢謂楚王曰:
“橫親之不合也, 儀貴惠王而善睢也.
今惠王死, 武王立, 儀走, 公孫郝‧甘茂貴.
甘茂善魏, 公孫郝善韓. 二人固不善睢也,
必以秦合韓‧魏.
韓‧魏之重儀, 儀有秦而睢以楚重之.
今儀困秦而睢收楚, 韓‧魏欲得秦, 必善二人者.
將收韓‧魏輕儀而伐楚, 方城必危.
王不如復睢, 而重儀於韓‧魏.
儀據楚勢, 挾魏重, 以與秦爭. 魏不合秦, 韓亦不從,
無患.”


초왕楚王소수昭睢로 하여금 나라로 가서 장의張儀를 중용하도록 하다
초왕楚王소수昭睢나라에 보내어 장의張儀중용重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수가 진나라에 이르기 전에 혜왕惠王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여, 장의를 축출한 뒤였다.
초왕은 이를 인하여 소수를 잡아 가두고 나라와 우호友好하려고 하였다.
환장桓臧이 소수를 위하여 초왕에게 말하였다.
연횡連橫이 깨어진 것은 장의가 혜왕惠王에게 중용되고 소수에게 잘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장의는 도주하고, 공손학公孫郝감무甘茂가 귀하게 되었습니다.
감무는 나라와 친하고 공손학은 나라와 친한 사이인데 두 사람 모두 소수와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진나라는 한나라‧위나라와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한나라‧위나라가 장의를 중시한 것은 장의에게 진나라가 있고, 소수는 초나라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장의는 진나라에서 곤란을 당하고, 소수는 초나라에 갇혀 있으니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공손학과 감무 두 사람과 더욱 친하려 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장차 한나라와 위나라를 거두어 장의를 가벼이 여기어 초나라를 침벌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방성方城이 틀림없이 위태로워지고 맙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소수를 복귀시켜서 한나라‧위나라가 장의를 중시하도록 하느니만 못합니다.
장의가 초나라의 위세에 의지하고 위나라의 위중威重을 끼고 나라와 다투면, 위나라는 진나라와 연합하지 않고 한나라도 진나라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방성은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역주
역주1 203. 楚王令昭睢之秦重張儀 : 秦 惠王이 죽은 것은 B.C.311년, 張儀가 秦나라에서 魏나라로 간 것은 B.C.310년이다.
역주2 惠王 : 惠文王. 孝公의 아들. 즉위한 지 14년 만에야 왕을 칭하였다.
역주3 武王 : 惠王의 아들. 태자였을 때, 張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즉위하자 즉시 張儀를 축출하고 甘茂와 樗里疾을 左右丞相으로 삼았다. 張儀는 魏나라로 가서 相이 되었다.
역주4 收昭睢以取齊 : 마침 齊 湣王이 張儀에게 속은 것을 알고 連橫을 버리고 合從을 서둘렀다. 그러므로 楚나라는 張儀와 친한 昭睢를 잡아 가두어 齊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한 것이다.
역주5 方城 : 산 이름이며 초나라의 중요한 요새이다. 지금의 河南省 方城縣.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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