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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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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燕太子丹質於秦, 亡歸.
見秦且滅六國, 兵以臨, 恐其禍至.
太子丹患之, 謂其太傅曰:
“燕‧秦不兩立,
願太傅幸而圖之.”
武對曰:
“秦地遍天下, 威脅韓‧魏‧趙氏, 則易水以北, 未有所定也.
奈何以見陵之怨, 欲排其哉?”
太子曰:
“然則何由?”
太傅曰:
“請入,
圖之.”
居之有間, 亡秦之燕, 太子容之.
太傅鞫武諫曰:
“不可.
夫秦王之暴, 而積怨於燕, 足爲寒心, 又況聞樊將軍之在乎!
是以委肉當餓虎之蹊, 禍必不振矣!
雖有, 不能爲謀.
願太子急遣樊將軍入匈奴以滅口.
請西約三晉, 南連齊‧楚, 北講於,
然後乃可圖也.”
太子丹曰:
“太傅之計, 曠日彌久,
心惛然, 恐不能須臾.
且非獨於此也.
夫樊將軍困窮於天下, 歸身於丹,
丹終不迫於强秦, 而棄所哀憐之交,
置之匈奴, 是丹命固卒之時也.
願太傅更慮之.”
鞫武曰:
“燕有者, 其智深, 其勇沉, 可與之謀也.”
太子曰:
“願因太傅交於田先生, 可乎?”
鞫武曰: “敬諾.” 出見田光, 道:
“太子曰願圖國事於先生.”
田光曰:
“敬奉敎.”
乃造焉.
太子跪而逢迎, 卻行爲道, 跪而拂席.
田先生坐定, 左右無人, 太子避席而請曰:
“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田光曰:
“臣聞騏驥盛壯之時, 一日而馳千里. 至其衰也, 駑馬先之.
今太子聞光壯盛之時, 不知吾精已消亡矣.
雖然, 光不敢以乏國事也.
所善, 可使也.”
太子曰:
“願因先生得願交於荊軻, 可乎?”
田光曰: “敬諾.” 卽起, 趨出.
太子送之至門, 曰:
“丹所報, 先生所言者, 國大事也,
願先生勿泄也.”
田光俛而笑曰:
“諾.”
僂行見荊軻, 曰:
“光與子相善, 燕國莫不知.
今太子聞光壯盛之時, 不知吾形已不逮也, 幸而敎之曰: ‘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光竊不自外, 言足下於太子,
願足下過太子於宮.”
荊軻曰:
“謹奉敎.”
田光曰:
“光聞長者之行, 不使人疑之, 今太子約光曰: ‘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也.’
是太子疑光也.
夫爲行使人疑之, 非節俠士也.”
欲自殺以激荊軻, 曰:
“願足下急過太子, 言光已死, 明不言也.”
遂自剄而死.
軻見太子, 言田光已死, 明不言也. 太子再拜而跪, 膝下行流涕,
有頃而後言曰:
“丹所請田先生無言者, 欲以成大事之謀,
今田先生以死明不泄言, 豈丹之心哉?”
荊軻坐定, 太子避席頓首曰:
“田先生不知丹不肖, 使得至前, 願有所道,
此天所以哀燕, 不棄其孤也.
今秦有貪饕之心, 而欲不可足也.
非盡天下之地, 臣海內之王者, 其意不饜.
今秦已, 盡納其地, 又擧兵南伐楚, 北臨趙.
將數十萬之衆臨, 而.
趙不能支秦, 必入臣. 入臣, 則禍至燕.
燕小弱, 數困於兵, 今計擧國不足以當秦.
諸侯服秦, 莫敢合從.
丹之私計, 愚以爲誠得天下之勇士, 使於秦, 窺以重利,
秦王貪其贄, 必得所願矣.
誠得劫秦王, 使悉反諸侯之侵地,
, 則大善矣; 則不可, 因而刺殺之.
彼大將擅兵於外, 而內有大亂, 則君臣相疑.
以其間, 諸侯得合從, 其破秦必矣.
此丹之上願, 而不知所以委命,
唯荊卿留意焉.”
久之, 荊軻曰:
“此國之大事,
臣駑下, 恐不足任使.”
太子前頓首, 固請無讓. 然後許諾.
於是尊荊軻爲上卿, 舍上舍, 太子日日造問, 供異物,
間進車騎美女, 恣荊軻所欲, 以順適其意.
久之, 荊卿未有行意.
秦將王翦破趙, , 盡收其地, 進兵北略地, 至燕南界.
太子丹恐懼,
乃請荊卿曰:
“秦兵旦暮渡易水,
則雖欲長侍足下, 豈可得哉?”
荊卿曰:
“微太子言, 臣願得謁之.
今行而無信, 則秦未可親也.
夫今樊將軍, 秦王購之金千斤, 邑萬家. 誠能得樊將軍首, 與燕之地圖獻秦王, 秦王必說見臣,
臣乃得有以報太子.”
太子曰:
“樊將軍以窮困來歸丹,
丹不忍以己之私, 而傷長者之意,
願足下更慮之.”
荊軻知太子不忍, 乃遂私見樊於期曰:
“秦之遇將軍, 可謂深矣.
父母宗族, 皆爲戮沒.
今聞購將軍之首, 金千斤, 邑萬家, 將奈何?”
樊將軍仰天太息流涕曰:
“吾每念, 常痛於骨髓, 顧計不知所出耳.”
軻曰:
“今有一言, 可以解燕國之患, 而報將軍之仇者,
何如?”
樊於期乃前曰:
“爲之奈何?”
荊軻曰:
“願得將軍之首以獻秦, 秦王必喜而善見臣,
臣左手把其袖, 而右手揕其胸,
然則將軍之仇報, 而燕國見陵之恥除矣.
將軍豈有意乎?”
樊於期偏袒扼腕而進曰:
“此臣日夜切齒拊心也, 乃今得聞敎.”
遂自刎.
太子聞之, 馳往, 伏屍而哭, 極哀.
旣已, 無可奈何, 乃遂收盛樊於期之首, 函封之.
於是, 太子預求天下之利匕首, 得趙人之匕首, 取之百金,
使工以藥淬之, 以試人, 血濡縷, 人無不立死者.
乃爲裝遣荊軻.
燕國有勇士, 年十二, 殺人, 人不敢與忤視.
乃令秦武陽爲副.
荊軻有所待, 欲與俱, 其人居遠未來, 而爲留待.
頃之, 未發, 太子遲之, 疑其有改悔,
乃復請之曰:
“日以盡矣,
荊卿豈無意哉?
丹請先遣秦武陽.”
荊軻怒, 叱太子曰:
“今日往而不反者,
豎子也!
今提一匕首入不測之强秦, 僕所以留者, 待吾客與俱.
今太子遲之, 請辭決矣!”
遂發.
太子及賓客知其事者, 皆白衣冠以送之.
至易水上, 旣, 取道.
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
之聲, 士皆垂泪涕泣.
又前而爲歌曰: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復爲忼慨, 士皆瞋目, 髮盡上指冠.
於是荊軻遂就車而去, 終已不顧.
旣至秦,
持千金之資幣物, 厚遺秦王寵臣中庶子.
嘉爲先言於秦王曰:
“燕王誠振畏慕大王之威, 不敢興兵以拒大王, 願擧國爲內臣, 比諸侯之列, 給貢職如郡縣, 而得奉守先王之宗廟.
恐懼不敢自陳, 謹斬樊於期頭, 及獻燕之督亢之地圖, 函封, 燕王拜送于庭, 使使以聞大王.
唯大王命之.”
秦王聞之, 大喜. 乃朝服, 設, 見燕使者.
荊軻奉樊於期頭函, 而秦武陽奉地圖匣, 以次進, 至陛下. 秦武陽色變振恐, 羣臣怪之,
荊軻顧笑武陽, 前爲謝曰:
“北蠻夷之鄙人, 未嘗見天子, 故振慴,
願大王少假借之, 使畢使於前.”
秦王謂軻曰:
“起,
取武陽所持圖.”
軻旣取圖奉之, 發圖, 圖窮而匕首見.
因左手把秦王之袖, 而右手持匕首揕[抗]之.
未至身, 秦王驚, 自引而起, 絶袖. 拔劍, 劍長, 摻其室.
急, 劍堅, 故不可立拔.
荊軻逐秦王, 秦王還柱而走.
羣臣驚愕, 卒起不意, 盡失其度.
而秦法, 羣臣侍殿上者, 不得持尺兵.
諸郞中執兵, 皆陳殿下, 非有詔不得上.
方急時, 不及召下兵, 以故荊軻逐秦王, 而卒惶急無以擊軻, 而乃以手共搏之.
是時侍醫夏無且, 以其所奉藥囊提軻.
秦王之方還柱走, 卒惶急不知所爲,
左右乃曰:
“王!”
王負劍,
遂拔以擊荊軻, 斷其左股.
荊軻廢, 乃引其匕首提秦王, 不中, 中柱.
秦王復擊軻, 被八創.
軻自知事不就, 倚柱而笑, 箕踞以罵曰:
“事所以不成者, 乃欲以生劫之, 必得約契以報太子也.”
左右旣前斬荊軻,
秦王目眩良久.
而論功賞羣臣及當坐者, 各有差. 而賜夏無且黃金二百鎰, 曰:
“無且愛我, 乃以藥囊提軻也.”
於是, 秦大怒燕, 益發兵詣趙, 詔王翦軍以伐燕.
十月而拔燕. 燕王喜‧太子丹等, 皆率其精兵東保於遼東.
秦將李信追擊燕王, 王急, 用計, 殺太子丹, 欲獻之秦.
秦復進兵攻之.
五歲而卒滅燕國, 而虜燕王喜.
其後荊軻客見秦皇帝, 而以筑擊秦皇帝, 爲燕報仇, 不中而死.


475. 나라 태자 이 진나라에 인질人質로 있었다
나라 태자太子 나라에 인질로 있다가 도망쳐 귀국하였다.
그는 진나라가 육국六國을 멸하고 군대가 이미 역수易水까지 이른 것을 보고 그 화가 이를까 염려되었다.
태자 단은 걱정이 되어 그의 태부 국무鞠武에게 말하였다.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兩立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태부께서 이를 도모해 주십시오.”
국무가 대답하였다.
“진나라의 토지는 천하에 두루 걸쳐 있고 나라‧나라‧나라를 위협하게 되면 역수 이북도 안정되지 못합니다.
어찌 능멸당한 원한으로 그 역린逆鱗을 건드리려 하십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태부가 말하였다.
“들어가시지요.
차츰 도모해 봅시다.”
그 얼마 후에 진나라 장수 번오기樊於期가 도망하여 연나라로 망명해 오자 태자가 받아 주었다.
태부 국무가 하였다.
“안 됩니다.
무릇 진왕처럼 포악한 임금이 연나라에 원한을 쌓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히 가슴 뛰는 겁나는 일인데 하물며 번장군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고깃덩어리를 굶주린 범이 지나가는 길목에 둔 것 같아서 화환이 닥치면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비록 관중管仲이나 안자晏子 같은 재능이 있다 해도 도모할 길이 없습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빨리 그를 흉노匈奴 쪽으로 보내어 진나라의 침략 구실을 없애십시오.
서쪽으로 삼진三晉과 남쪽으로 나라‧나라를 연합하기를 청하시고 북쪽으로 선우單于강화講和하십시오.
그런 후에야 도모해 볼 수 있습니다.”
태자 단이 말하였다.
“태부의 계획은 너무 장구한 시일을 요합니다.
제 마음은 두근거려 잠시도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무릇 번장군은 천하에 갈 곳이 없는 궁한 처지가 되어 몸을 나에게 의탁한 것입니다.
저로서는 끝내 강한 진나라의 협박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그 가련한 친구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를 흉노로 보내는 것은 내 목숨이 끝날 때가 될 것입니다.
원컨대 태부께서는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국무가 말하였다.
“연나라에 전광田光 선생이 있는데 지모가 깊고 침착해서 함께 꾀할 만합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태부께서 그와 사귈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국무는 ‘좋습니다.’ 하고는, 나가서 전광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선생과 국사를 의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전광이 말하였다.
“공경히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태자를 찾아왔다.
태자는 무릎을 꿇고 영접하고 뒷걸음으로 인도하며, 다시 무릎꿇고 자리를 털어 드렸다.
전광 선생이 자리를 잡자 좌우 사람을 물린 후, 태자가 자리를 피해 않으며 청하였다.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兩立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선생께서 깊이 유의留意하여 주십시오.”
전광이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기기騏驥 같은 천리마가 한창일 때는 하루에 1천 리를 달리지만 노쇠해지면 노마駑馬가 이를 앞지르는 법입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제가 한창일 때의 소문만 들으셨지, 저의 정기가 이미 쇠한 것은 모르고 계십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그것 때문에 감히 국사를 저버릴 수야 없습니다.
저와 친한 친구 중에 형가荊軻라는 자가 있는데 부릴 만합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원컨대 선생을 통해 형가를 사귀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전광은 ‘좋습니다.’ 하고는 즉시 일어서서 나갔다.
태자가 그를 전송하며 문에 이르러 말하였다.
“내가 원수를 갚겠다고 한 것과 선생과 의논한 것은 모두 국가의 대사입니다.
원컨대 선생께서는 누설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광이 머리 숙여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겠습니다.”
전광은 구부정한 걸음으로 가서 형가를 만나 말하였다.
“나와 그대가 친하다는 것을 연나라 사람으로 모르는 자가 없소.
오늘 태자께서 나의 한창일 때 일만 듣고 이렇게 늙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줄은 모르고는 영광스럽게 이르시기를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가 없다.
유념해 주기 바란다.’라고 하였소.
내 생각에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아 이미 족하足下를 태자께 추천하였소.
원컨대 족하는 어서 궁 안으로 가서 태자를 만나보기 바라오.”
형가가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전광이 말하였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장자長者의 행실은 남이 의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 지금 태자께서 저에게 약속하기를 ‘말한 것은 모두 나라의 대사이니, 원컨대 선생께서는 누설되지 않도록 하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결국 태자께서 저를 의심한 뜻입니다.
무릇 행동에 있어서 남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것은 이미 절개 있는 협사俠士가 아닙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살하여 형가를 격발시키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원컨대 족하는 급히 태자에게 가서 내가 이미 죽어서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음을 밝혀 주시오.”
그리고는 드디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형가가 태자를 만나 전광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비밀이 새나가지 않았음을 밝히니, 태자는 재배하고 무릎을 꿇고 기면서 눈물을 흘렸다.
조금 후 말하였다.
“제가 전광 선생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대사 계획을 성사시키고자 한 것뿐이었는데.
지금 전선생이 죽음으로써 말을 누설하지 않았음을 밝혔으니 이 어찌 내 본뜻이었겠소?”
형가가 자리를 잡고 앉자, 태자는 자리를 피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전광 선생이 저의 불초함을 모르고 나로 하여금 선생을 앞에 모시고 지도를 받게 해 주셨으니 저의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바로 하늘이 연나라를 불쌍히 여겨 이 고아孤兒를 버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하 토지를 다 차지하고 해내海內의 군주를 모두 신하로 삼지 않고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가 벌써 한왕韓王을 포로로 잡고, 그 토지를 모두 차지하였으며, 다시 군사를 일으켜 남쪽으로 나라를 치고, 북쪽으로 나라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진나라 왕전王翦은 수십만 무리를 이끌고 장수漳水업군鄴郡에 다다라 있으며, 이신李信 또한 태원太原운중雲中으로 출병하고 있습니다.
조나라는 더 이상 진나라를 대항할 수 없어 끝내 진나라의 신하가 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화가 우리 연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연나라는 약소한 데다가 자주 병화에 휩쓸려 피폐해져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전국을 총동원해도 진나라를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제후들도 이미 모두 진나라에 항복하여, 감히 합종合從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내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만약 천하의 용사를 얻는다면, 그를 진나라로 보내어 좋은 미끼로 진왕秦王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진왕이 그 선물을 탐내게 되면 틀림없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왕을 협박하여 그로 하여금 침탈한 제후들의 땅을 모두 내놓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치 조말曹沫 환공桓公을 협박한 것처럼만 된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계책입니다만,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그를 찔러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저 진나라의 장군들이 모두 군대를 거느리고 밖에 있으므로, 국내에서 이런 대란이 생기면 임금과 신하 사이에 틀림없이 서로 의심할 것입니다.
이런 틈에 제후들이 다시 합종하면 진나라를 틀림없이 격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만 과연 어떤 사람에게 임무를 맡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형경荊卿께서는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참 후 형가가 말하였다.
“이는 국가의 대사입니다.
저는 원래 용렬하고 무능하여 능히 그 임무를 이겨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자는 다시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제발 사양하지 말아달라고 청한 후에야 응락하였다.
그리하여 태자는 그를 높여 상경上卿으로 삼고 제일 좋은 객사에서 묵게 하였으며, 날마다 태자가 가서 문안을 드리며 태뢰太牢와 진기한 물건을 바쳤다.
때때로 거마와 미녀를 들여보내기도 하고 형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마음껏 제멋대로 누리도록 무엇이나 그 뜻에 따라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형가는 출발할 뜻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진나라 장수 왕전王翦이 이미 조나라를 깨뜨려 그 왕을 사로잡고, 조나라 토지를 다 차지하고, 계속 북쪽으로 초략하여 연나라의 남쪽 국경까지 이르렀다.
태자 은 두려웠다.
다시 형가에게 청하였다.
“진나라 군대는 조만간에 역수易水를 건너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더 오래 당신을 모시고 싶어도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형가가 말하였다.
“태자가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제가 찾아 뵈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번 걸음에 신물信物이 없으면 진왕秦王친근親近히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번장군樊將軍을 진왕이 1천 근과 만가萬家현상懸賞해서 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번장군의 머리와 연나라 독항督亢 땅 지도를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뻐하면서 나를 만나 줄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태자께 보답할 수 있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번장군은 곤궁 끝에 나를 찾아온 사람입니다.
나는 차마 나의 사사로운 일로 해서 장자長者의의 뜻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족하께서는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형가는 태자가 차마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에 사사로이 번오기를 찾아가 말하였다.
“진나라의 그대에 대한 대우는 아주 심하다고 할 수 있소.
그대의 부모와 종족은 모두 그때 죽음을 당하였소.
지금 들으니 당신의 머리에는 황금 1천 근과 만가 읍의 현상이 붙어 있다고 하는데, 장차 어쩔 작정이오?”
번오기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는 매양 생각할 때마다 항상 원한만 골수에 사무칠 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형가가 말하였다.
“지금 제 한 마디는 연나라의 근심을 풀 수 있고 당신의 원수도 갚을 수 있소.
어떻소?”
번오기는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어찌하면 되오?”
형가가 말하였다.
“장군의 머리를 얻어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저를 좋게 만나 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왼손으로 그의 옷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원수도 갚게 되고 연나라의 능멸당한 치욕도 씻을 수 있습니다.
장군의 생각은 어떻소?”
번오기는 한쪽 어깨를 벗고 왼손으로 오른쪽 팔뚝을 움켜잡으며 나서며 말하였다.
“이는 바로 제가 밤낮으로 절치부심切齒拊心하던 일인데 이제야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태자는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신체에 엎드려 울며 극도로 애통해 하였다.
이윽고 어쩔 수 없이 번오기의 머리를 수습하여 에다 넣어 봉하였다.
이에 태자는 미리 천하에 제일 잘 드는 비수匕首를 구하여 마침 나라 서부인徐夫人이 만든 비수를 1백 금을 주고 사들였었다.
그것을 다시 공인을 시켜 독약을 탄 물에다 담금질한 다음 사람에게 시험해 보니, 피가 살날같이 흘러나오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에 곧 행장을 갖추어 형가를 보냈다.
한편 연나라에 이름난 용사 진무양秦武陽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열두 살 때 이미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어 사람들이 감히 그에게 곁눈질도 못하였다.
이에 진무양을 로 삼았다.
형가는 또 한 사람을 기다렸다가 함께 가고자 하였는데 그 사람이 먼 곳에 살아서 아직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까지 아직 출발하지 못하고 있자 태자는 그가 시간을 끄는 것이 혹 후회하고 있지나 않은가 의심이 갔다.
그래서 다시 형가에게 청하였다.
“날짜가 되었습니다.
당신 형경荊卿께서는 어찌 가실 뜻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먼저 진무양이라도 보내기를 청합니다.”
형가가 버럭 화를 내어 태자를 큰소리로 나무랐다.
“오늘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소.
이 어리석은 자야!
지금 칼 하나에 의지해서 예측할 수 없는 그 강한 진나라로 가려 함에, 내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나의 친구를 기다려 함께 가기 위함이었소.
이제 태자께서 늦다 하시니 즉시 떠나겠소.”
그리고는 출발하였다.
태자와 빈객 중에 이 일을 아는 자들이 모두 흰색의 옷과 모자로 그를 보내 주었다.
역수易水 가에 이르자 조전祖餞의 예를 치른 후 길에 올랐다.
고점리高漸離을 두드리자 형가가 화답하여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곡조가 변치조變徵調여서 빈객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형가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도나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장사가 떠남이여, 돌아오지 못하리라!장사일거혜불부환壯士一去兮不復還
다시 곡조가 강개慷慨우성羽聲으로 변하자 듣고 있던 선비들이 눈을 부릅뜨고 머리털이 솟아 관을 찌를 정도였다.
이에 형가는 수레에 올라 떠나면서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드디어 진나라에 이르렀다.
먼저 1천 금의 값진 예물을 진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 중서자中庶子 몽가蒙嘉에게 뇌물로 바쳤다.
몽가는 기뻐하면서 진왕에게 먼저 아뢰었다.
“연왕이 정말로 대왕의 위엄을 외모畏慕하여 감히 군사를 일으켜 대왕께 대항하지 못하고, 나라를 바쳐 진나라의 내신內臣이 되어 제후의 열에 끼어 진나라의 군현郡縣처럼 공직貢職하면서 선왕의 종묘나 지키기를 원한다 하옵니다.
두려워서 스스로 감히 나타나 진달하지는 못하고 삼가 번오기樊於期의 머리를 베고, 연나라 독항督亢 땅 지도를 함에다 담아, 연왕 스스로가 궁정에서 직접 배송拜送하여 그 사자가 지금 대왕께 아룁니다.
오직 대왕께서 명하십시오.”
진왕秦王(시황始皇)이 듣고 매우 기뻐하며 조복朝服으로 갈아입고 구빈九賓의 예를 갖추어 함양궁咸陽宮에서 연나라 사자使者를 만나보았다.
형가는 번오기의 머리를 담은 함을 들고, 진무양은 지도를 담은 상자를 들고 차례로 나아가 계단 아래에 이르자 진무양이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려 무서움에 떨자 군신들이 괴이히 여겼다.
형가는 뒤를 돌아보고 진무양에게 웃어 보이면서 사과의 말을 하였다.
“북방 만이蠻夷의 촌놈이 아직 천자天子를 뵙지 못한 터라 저렇게 질려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셔서 왕 앞에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진왕이 형가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오.
진무양이 든 지도를 좀 봅시다.”
형가는 지도를 받아들어 올리며 펴자 지도가 다 펴지는 순간 비수가 드러났다.
형가는 즉시 왼손으로 진왕의 옷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고 찔렀다.
아직 제대로 몸을 찌르지 못하였는데 진왕이 놀라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일어나자 소매가 끊어졌고, 진왕이 칼을 뽑으려 하였지만 칼이 너무 길어 다만 칼집만 잡힐 뿐이었다.
시간은 급하고 칼은 꼭 끼어 얼른 뽑아낼 수가 없었다.
형가가 진왕을 뒤쫓으니, 진왕은 기둥을 돌며 도망다녔다.
신하들이 경악하여 불의의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자 모두가 제 정신을 잃고 있었다.
더구나 진나라 법에 신하들 중에 전상殿上에서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자는 한 자 짜리 무기도 지니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여러 낭중郞中들로서 무기를 가진 자는 모두 궁전 아래에 늘어서 있게 되어 있어 왕의 명령 없이는 올라올 수 없었다.
바야흐로 급한 순간이어서 그 병사들을 부를 틈도 없는데 형가는 계속 진왕을 쫓으므로 급하여 형가를 공격할 수 없어 맨손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왕의 시의侍醫 하무차夏無且가 들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진왕은 기둥을 돌아 도망가면서 황급하여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 좌우 신하들이 소리쳤다.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고 빼십시오!
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
그래서 그제서야 칼을 뽑은 왕은 형가를 내리쳐 형가의 왼쪽 다리가 끊어졌다.
형가는 쓰러진 채 진왕에게 비수를 던졌으나 빗나가 기둥에 꽂히고 말았다.
진왕이 다시 형가를 쳐 여덟 곳이나 찔렸다.
형가는 스스로 실패한 것을 알자 기둥에 기대어 웃으면서 책상다리를 하고 꾸짖었다.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진왕을 살려둔 채로 협박하여 침공해 빼앗은 땅을 되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기어코 얻어 태자에게 보고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좌우가 앞으로 나가 형가를 베었다.
진왕은 한참 동안 눈이 아찔하였다.
이윽고 군신 및 자리에 같이 있던 자들에게 차등을 두어 논공행상論功行賞하고, 하무차夏無且에게는 황금 2백 을 주면서 말하였다.
무차無且는 나를 사랑한 나머지 약봉지로 형가를 쳤다.”
이에 진왕은 연나라에게 크게 노하여 더욱 많은 군사를 내어 조나라로 보내 왕전王翦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공격하도록 조칙을 내렸다.
10개월 만에 연나라 수도 계성薊城이 함락되자 연왕燕王 와 태자 단은 정병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요동遼東에 가서 버티었다.
진장秦將 이신李信이 그곳까지 연왕을 추격하자 급해진 연왕은 대왕代王 의 계략을 듣고 태자太子 을 죽여 진왕에게 바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5년 후에 마침내 연나라는 멸망하고 연왕 도 포로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진나라는 천하를 겸병하게 되었다.
그 후 형가의 친구였던 고점리高漸離으로 이름을 날려 진왕에게 불려간 기회를 틈타 악기로 진왕을 내리쳐 연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지만 결국 맞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역주
역주1 : 六國 중에 최후로 망하여 秦 始皇이 천하를 통일(B.C.221년)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소설보다 더욱 장렬한 내용이다. 《史記》 〈刺客列傳〉에도 실려 있으며 시기는 B.C.228~227년 사이이다.
역주2 易水 : 河北省 易縣에서 발원하여 燕나라를 흐르는 물.
역주3 鞫(鞠)武 : 太子를 가르치는 스승. 太傅. 《史記》에는 ‘鞠武’로 되어 있다.
역주4 逆鱗 : 龍의 목 밑에 있는 거꾸로 된 비늘. 이를 건드리면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역주5 樊將軍 : 樊於期를 가리킨다. 秦의 장수로 평소 丞相 呂不韋를 미워하여 이에 秦王(始皇) 政의 동생인 長安君 成嶠와 모반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燕으로 도망왔다.(B.C.229년의 일)
역주6 管‧晏 : 管仲과 晏子. 管仲은 春秋 때 齊 桓公을 도와 霸者가 되게 하였다. 《史記》 〈齊世家〉, 〈管仲晏子列傳〉 참조. 162‧164‧217‧459장 등 참조. 晏子는 齊의 景公을 도운 賢相. 《晏子春秋》를 남겼다.
역주7 單于 : 匈奴의 추장.
역주8 田光先生 : 燕의 處士.
역주9 荊軻 : 字는 公叔. 원래 齊나라 사람. 春秋時代 齊나라 公族大夫인 慶封의 후손. 독서와 검술을 배워 衛에 옮겨 살았다. ‘荊卿’이라 칭하였다. 《史記》 〈刺客列傳〉 참조.
역주10 虜韓王 : 秦 始皇 17년에 內史 勝을 보내 韓을 멸하고 韓王 安을 사로잡았다.
역주11 王翦 : 秦의 名將, 秦 始皇의 천하통일 때 趙‧燕을 침. 287장 참조.
역주12 漳‧鄴 : 漳水는 山西省에서 발원하여 河南省을 거쳐 河北의 衛河로 들어가는 물. 鄴은 魏의 郡, 河南省 臨漳縣.
역주13 李信 : 秦의 장군. 燕을 쳤다.
역주14 太原‧雲中 : 太原은 山西省 中‧北部 일대. 雲中은 내몽골의 東‧南部.
역주15 曹沫之與齊桓公 : 齊策 ‘孟嘗君有舍人而弗悅’章의 注 참조.
역주16 [諸侯] : 《史記》 〈剌客列傳〉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7 [償] : 《史記》 〈剌客列傳〉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8 太牢 : 소‧양‧돼지로 대접하는 큰 잔치. 훌륭한 대접을 뜻한다.
역주19 虜趙王 : 秦 始皇 19년(B.C.228년) 秦은 趙를 멸하고 趙王 遷을 사로잡았다. 遷의 형인 公子 嘉가 자립하여 代王이 되어 계속 항거하다 6년 만에 결국 망하였다.
역주20 督亢 : 地名. 戰國時代 燕의 가장 좋은 沃士. 지금의 河北省 檻縣 부근.
역주21 [抗] : 《史記》 〈剌客列傳〉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22 徐夫人 : 칼 만들던 男子 대장장이. 徐는 姓, 夫人은 이름.
역주23 秦武陽 : 燕의 名將 秦開之의 孫, 12세에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武는 舞로도 쓴다.
역주24 : 祖餞, 出行 때 路神에게 祭하는 것을 祖, 飮杯하는 것을 餞이라 한다.
역주25 變徵 : 7음의 하나. 宮‧商‧角‧徵‧羽에 變徵와 變宮을 합해 7음이 된다. 變徵는 대단히 凄凉하다.
역주26 羽聲 : 역시 7음의 하나 느낌이 激昻되고 비장하다.
역주27 蒙嘉 : 秦 始皇의 中庶子(近臣)이며 秦의 名將인 蒙恬의 동생.
역주28 九賓 : 원래 周代 天子가 외교 사절을 접견할 때 쓰는 上等의 禮.
역주29 咸陽宮 : 秦 孝公이 咸陽으로 천도하여 商鞅의 建議로 지금의 陝西省 咸陽縣에 지은 궁궐.
역주30 怨(恐) : 曾鞏本에 의하여 ‘恐’으록 고쳤다.
역주31 負劍 : 긴 칼을 차고 있을 때 쉽게 빼기 위해 뒤로 돌려 지는 형태를 함.
역주32 薊城 : 燕의 都邑, 河北省 大興縣. 지금의 北京 근처.
역주33 代王 嘉 : 趙가 망하자 趙의 公子 嘉가 자립하여 代王이 되었다. 그후 계속 秦에 항거, 秦兵이 燕을 追擊하는 것을 보고 燕王에게 편지를 보내어 秦에 太子 丹의 머리를 보내면 禍를 면할 것이라고 하였다. 燕王이 이를 듣고 실행 丹은 생을 마쳤다.
역주34 秦兼天下 : 秦은 三晉 및 楚를 멸한 후 始皇 25년(B.C.222년)에 燕과 趙의 代王 嘉를 멸하고 이듬해 齊를 멸하여 천하통일을 이룩하였다. 始皇 26년(B.C.221년)의 일.
역주35 高漸離以擊筑 : 秦이 六國을 倂呑한 후 太子 丹과 荊軻가 모두 죽자 그 친구였던 高漸離는 姓名을 바꾸고 남의 종노릇을 하였다. 始皇이 이를 알고 사면해 주자 말똥을 태워 눈을 지져 스스로 장님이 되어, 筑을 치기에 전념. 그의 솜씨가 알려지자 始皇에게 가까이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高漸離는 筑 속에 몰래 납을 넣어 무겁게 한 후, 始皇 앞에서 연주하는 척하다가 그것으로 쳤지만 눈이 멀어 빗나가 誅殺당하고 만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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