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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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之難, 韓氏請救於齊.
田侯召大臣而謀曰:
“早救之, 孰與晩救之便?”
對曰:
“晩救之, 韓且折而入於魏,
不如早救之.”
“不可.
夫韓‧魏之兵未弊, 而我救之, 我代韓而受魏之兵,
顧反聽命於韓也.
且夫魏有破韓之志, 韓見且亡, 必東愬於齊,
我因陰結韓之親, 而晩承魏之弊, 則國可重, 利可得, 名可尊矣.”
田侯曰:
“善.”
乃陰告韓使者而遣之.
韓自以專有齊國, 五戰五不勝, 東愬於齊,
齊因起兵擊魏, 大破之.
魏破韓弱, 韓‧魏之君因田嬰北面而朝田侯.


남량南梁의 싸움
남량南梁의 싸움에 나라가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전후田侯가 대신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한나라를 일찍 구해 주는 것과 천천히 구해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낫겠소?”
장개張丐가 대답하였다.
“늦게 구원해 주어 한나라가 굴복하면 곧 위나라에 편입되고 말 것입니다.
당장 구원해 주느니만 못합니다.”
그러자 전신사田臣思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무릇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대가 아직 지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구해 주면 우리가 한나라 대신 위나라의 병화兵禍를 입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오히려 한나라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또 지금 위나라는 한나라를 공파攻破하려는 뜻을 갖고 있는데 한나라가 장차 망하게 되면 틀림없이 동쪽으로 우리 제나라에 알려 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 몰래 한나라와 결맹하고 천천히 위나라가 피폐해진 틈을 이용하면 나라도 중시를 받고 이익도 얻을 수 있으며 명분도 높일 수 있습니다.”
전후가 말하였다.
“좋다.”
그리고는 몰래 한나라 사신에게 고해 돌려보내었다.
과연 한나라는 제나라가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 준다고 믿고 다섯 번 싸웠으나 다섯 번 모두 이기지 못하자 동쪽으로 제나라에 고하였다.
제나라는 그제야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쳐서 마릉馬陵에서 크게 패배시켰다.
이렇게 하여 위나라는 공파攻破되고 한나라는 약해져 한나라‧위나라의 두 임금은 전영田嬰을 인해 북면北面하고 전후田侯에게 조회朝會하였다.


역주
역주1 117. 南梁之難 : 이 이야기는 《史記》 〈田敬仲完世家〉의 齊 宣王 2년에 실려 있다. B.C.341년에 魏나라가 韓나라의 남량을 크게 침범한 사건이며, 馬陵의 전투는 171‧325장 참조.
역주2 南梁 : 韓나라 읍. 지금의 河南省 臨汝縣 동쪽.
역주3 張丐 : 齊나라의 신하. 124장 참조. 《史記》에는 田忌로 되어 있다.
역주4 田臣思 : 齊나라의 신하이며 陳臣思로도 쓴다. 128장 참조. 《史記》에는 孫子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주5 馬陵 : 지금의 河北省 大名縣 동남쪽. 齊나라 장수 孫臏이 馬陵 싸움에서 魏나라 장수 龐涓을 죽이고 太子 申을 사로잡았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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