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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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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說秦王曰:
“臣聞之 弗知而言爲不智; 知而不言爲不忠.
爲人臣不忠當死, 言不審亦當死.
雖然, 臣願悉言所聞, 大王裁其罪.
收餘韓成從, 將以與秦爲難. 臣竊笑之.
世有三亡, 而天下得之, 其此之謂乎!
臣聞之曰:以亂攻治者亡, 以邪攻正者亡, 以逆攻順者亡.
今天下之府庫不盈, 囷倉空虛, 悉其士民, 張軍數千百萬, 白刃在前, 在後, 而皆去走, 不能死,
言賞則不與, 言罰則不行, 賞罰不行, 故民不死也.
今秦出號令而行賞罰, .
出其父母懷衽之中, 生未嘗見寇也, 聞戰頓足徒裼, 犯白刃, 蹈煨炭, 斷死於前者比是也.
夫斷死與斷生也不同,
而民爲之者是貴奮也.
一可以勝十, 十可以勝百, 百可以勝千, 千可以勝萬, 萬可以勝天下矣.
今秦地形, 斷長續短, 方數千里, 名師數百萬,
秦之號令賞罰, 地形利害, 天下莫如也.
以此與天下, 天下不足兼而有也.
是知秦戰未嘗不勝, 攻未嘗不取, 所當未嘗不破也.
開地數千里, 此甚大功也. 然而甲兵頓, 士民病, 蓄積索, 田疇荒, 囷倉虛, 四鄰諸侯不服, 伯王之名不成, 此無異故,
謀臣皆不盡其忠也.
臣敢言往昔.
昔者, 齊南破荊, 中破宋, 西服秦, 北破燕, 中使韓‧魏之君,
地廣而兵强, 戰勝攻取, 詔令天下,
濟淸河濁, 足以爲限, , 足以爲塞.
齊, 五戰之國也, 一戰不勝而無齊.
故由此觀之, 夫戰者, 萬乘之存亡也.
且臣聞之曰:削株掘根, 無與禍鄰, 禍乃不存.
當是之時, 隨荊以兵, 則荊可擧.
擧荊, 則其民足貪也, 地足利也.
東以强齊‧燕, 中陵三晉. 然則是一擧而伯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與荊人和.
荊人收亡國, 聚散民, 立社主, 置宗廟, 令帥天下西面以與秦爲難, 此固已無伯王之道一矣.
天下有比志而軍,
大王以詐破之, 兵至, 圍梁數旬, 則梁可拔. 拔梁, 則魏可擧.
擧魏, 則荊‧趙之志絶.
荊‧趙之志絶, 則趙危. 趙危而荊孤.
東以‧燕, 中陵三晉, 然則是一擧而伯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與魏氏和,
令魏氏收亡國, 聚散民, 立社主, 置宗廟, 此固已無伯王之道二矣.
前者, 之治秦也, 用一國之兵, 而.
是故兵終身暴靈於外, 士民潞病於內, 伯王之名不成, 此固已無伯王之道三矣.
趙氏, 中央之國也, 雜民之所居也.
其民輕而難用, 號令不治, 賞罰不信, 地形不便,
上非能盡其民力. 彼固亡國之形也,
當是時, 趙氏上下不相親也, 貴賤不相信,
然則是不守, 拔邯鄲, 完,
引軍而去, 西攻, 踰, 降‧上黨.
代三十六縣, 上黨十七縣, 不用一領甲, 不苦一民, 皆秦之有也.
代‧上黨不戰而已爲秦矣. 不戰而已反爲齊矣, 以北不戰而已爲燕矣.
然則是擧趙則韓必亡, 韓亡則荊‧魏不能獨立.
荊‧魏不能獨立, 則是一擧而壞韓, 蠹魏, 挾荊, 以東弱齊‧燕, 決之口, 以流魏氏. 一擧而三晉亡, .
大王拱手以須, 天下徧隨而伏, 伯王之名可成也.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與趙氏爲和.
以大王之明, 秦兵之强, 伯王之業, 地尊不可得, 乃取欺於亡國, 是謀臣之拙也.
且夫趙當亡不亡, 秦當伯不伯, 天下固量秦之謀臣, 一矣.
乃復悉卒乃攻邯鄲, 不能拔也, 棄甲兵, 戰慄而却, 天下固量秦力, 二矣.
軍乃引退, 幷於, 大王又幷軍而致與戰, 非能厚勝之也, 又交罷却, 天下固量秦力, 三矣.
內者量吾謀臣, 外者極吾兵力.
由是觀之, 臣以天下之從, 豈其難矣?
內者吾甲兵頓, 士民病, 蓄積索, 田疇荒, 囷倉虛, 外者天下比志甚固. 願大王有以慮之也.
且臣聞之:戰戰慄慄, 日愼一日.
苟愼其道, 天下可有也.
何以知其然也?
昔者, 紂爲天子, 帥天下將甲百萬, 左飮於, 右飮於,
淇水竭而洹水不流, 以與周武爲難. 武王將三千領.
戰一日, 破紂之國, 禽其身, 據其地, 而有其民,
帥三國之衆, 以攻趙襄主於晉陽,
決水灌之, 三年, 城且拔矣.
占兆, 以視利害, 何國可降, 而使張孟談.
於是潛行而出, 反智伯之約, 得兩國之衆,
以攻智伯之國, 禽其身, 以成襄子之功.
今秦地斷長續短, 方數千里, 名師數百萬, 秦國號令賞罰, 地形利害, 天下莫如也.
以此與天下, 天下可兼而有也.
臣昧死望見大王, 言所以擧破天下之從, 擧趙亡韓, 臣荊‧魏, 親齊‧燕, 以成伯王之名, 朝四鄰諸侯之道.
大王試聽其說,
一擧而天下之從不破, 趙不擧, 韓不亡, 荊‧魏不臣, 齊‧燕不親,
伯王之名不成, 四鄰諸侯不朝,
大王斬臣以徇於國, .”


장의張儀진왕秦王에게 유세하다
장의張儀진왕秦王(惠王)에게 유세하였다.
“신은 듣건대 ‘알지 못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요, 알면서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
남의 신하가 되어 충성스럽지 못하면 사형에 해당하고, 말을 잘 살펴서 하지 않는 것도 사형에 해당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는 제가 들은 바를 대왕께 모두 말씀드리오니 대왕께서 제 죄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듣기로 산동육국山東六國이 북쪽으로는 나라와, 남쪽으로는 나라 (荊)나라와 연합하여 나라를 견고히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나라까지 끌어들여 합종合從을 이루어 장차 서남쪽으로 나라와 대항하고자 한다고 하여 신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세상에 멸망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는데, 산동육국山東六國이 이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어지러운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악한 것으로 바른 것을 치는 자는 망하며, 역리逆理로써 순리順理를 치는 자는 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하의 부고府庫가 모두 비어 있고 창고가 공허한데도 그 사민士民들을 모두 모아 포진布陣한 군대가 수천 백 만이나 되지만 백인白刃이 앞에 있고 부질斧質이 뒤에 있더라도 모두 도망갈 마음뿐,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각오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백성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지 않는 것을 죄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윗사람이 용감하게 싸워 적을 죽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을 준다고 해 놓고 주지 않으며, 말로는 을 주겠다고 떠들면서 행하지 않아, 상벌이 행해지지 않으니 그런 까닭으로 백성이 나라를 위해 죽으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는 호령號令을 내어 상벌賞罰을 행함에 공이 없는 자는 공이 있는 자의 부림을 받고,
백성들은 그 부모의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원수를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전쟁이라는 말만 들으면 맨발로 쫓아 나가 맨몸으로 시퍼런 칼날에 대들며, 숯불을 밟아 나라를 위해 죽기를 결심한 자들이 전부입니다.
무릇 죽음을 결심하는 마음과 살기만 바라는 마음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백성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분격奮擊을 귀하게 여겨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열을 이기고 열이 백을, 백이 천을, 천이 만을 이겨 결국 만이 천하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의 땅은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맞추어 계산하면 사방 수천 리나 되며 이름난 군사도 수백 만이 됩니다.
나라의 호령과 상벌賞罰, 그리고 지형地形이해利害는 천하에 이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이로써 천하를 영위하면 천하를 모두 겸병하여 가져도 부족합니다.
이에 나라는 싸워서 이기지 못한 것이 없고, 공격해서 함락하지 못한 것이 없으며, 닥치는 것은 모두 깨뜨리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토를 수천 리나 넓히는 것은 아주 큰 공로인데, 군대는 피로하고, 사민士民은 병들고, 쌓아 놓은 재물은 줄어들고, 논밭은 황폐해지고, 창고는 비어 사방 이웃 제후들이 복종하지 않고, 패왕伯王의 이름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대왕의 모신謀臣들이 충성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감히 옛날의 사실을 들어 말씀 올리겠습니다.
옛날 나라는 남으로 (楚)을 파하고 그 중간으로 나라를 치고, 서쪽으로 나라를 굴복시키고 북으로 나라를 깨뜨렸으며 중간의 나라와 나라의 임금까지도 부렸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넓어지고 군대는 강성해져 싸우면 이기고 이기면 빼앗아, 천하를 호령하였습니다.
제수濟水는 맑고 하수河水는 탁하여 경계로 삼기에 족하고, 장성長城거방鉅坊은 요새가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나라는 다섯 번 싸운 나라였는데 단 한 번이라도 졌더라면 나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무릇 전쟁이란 만승萬乘존망存亡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또 제가 듣기로 ‘나무를 없애려면 뿌리를 파 버리면 되듯이, 를 이웃하지 않으면 화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나라와 싸워 크게 이겨 수도인 을 습격하여 동정洞庭오도五都강남江南까지 빼앗자 초왕楚王은 도망가서 동쪽 진성陳城에 피신하였습니다.
그때를 당하여 나라를 뒤쫓아 쳤더라면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나라가 멸망하고 나면 그 백성은 족히 탐낼 만했고, 땅도 족히 나라의 이익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동으로 강한 나라‧나라로써 중간의 약한 삼진三晉(韓‧)을 침벌하였더라면 일거一擧패왕伯王의 이름을 드날려 사방 제후로부터 조회朝會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의 모신謀臣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군대를 끌고 물러나서 나라와 강화를 맺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라는 망해 가던 나라를 부흥시켜, 흩어졌던 백성을 다시 모으고, 사직社稷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건설하고, 천하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 나라와 대항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실로 천하 패권을 잃은 첫째 과오 중의 하나입니다.
천하가 뜻을 합쳐 군대를 화산華山 아래에 주둔시키고 있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때 사술詐術을 써서 이들을 깨뜨리고 나라 서울 대량大梁의 외곽까지 쳐들어갔는데 그때 대량大梁을 수십 일만 포위하였더라면 함락시킬 수 있었을 것이며 대량만 점령하면 나라는 망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무너지면 나라와 나라의 연합은 끊어지고 맙니다.
나라와 나라의 연합이 끊어지면 조나라는 위험해지고 조나라가 위험해지면 나라는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동쪽의 강한 나라와 나라로써 가운데의 삼진三晉을 침벌하였으면 일거一擧패왕伯王의 이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며, 사방 이웃 제후의 조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신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여 위나라와 강화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로 하여금 망해 가던 나라를 회복하여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고, 사직 종묘를 재건하게 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실로 천하 패권을 잃은 둘째 과오입니다.
지난번 양후穰侯나라를 다스리면서 한 나라의 군사로 두 나라에 공을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인은 종신토록 밖에서 햇볕을 쬐어야 하고, 사민士民은 모름지기 안에서 병들고 피폐함을 당하여 패왕의 이름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실로 이미 패왕의 도를 잃은 세 번째 과오입니다.
나라는 중앙에 있는 나라이며 각국 백성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백성은 경솔하여 부리기가 어렵고, 나라의 법령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상벌賞罰을 내려도 믿지 않으며 지형도 수비하기에 좋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윗사람들은 그 백성의 역량力量을 십분 이용하지 못하니, 그러한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는 형세입니다.
그런데도 백성을 걱정하지 않고 온 사민士民들을 모아 장평長平 아래에다 주둔시켜 한나라와 상당上黨 땅을 다투자 대왕께서 사술詐術로써 이를 깨뜨리고 무안武安을 점령하셨습니다.
그 당시 조나라는 상하가 서로 불친不親하였고, 이 서로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수도 한단邯鄲을 지킬 수 없었으니, 한단만 점령했더라면 하간河間 땅은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가 서쪽으로 수무修武를 공격했더라면 양장羊腸을 넘어 땅과 상당上黨을 항복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땅은 36개의 이 있고, 상당上黨 땅은 17개의 현이 있는데 무기 하나 잃지 않고 백성 하나 고생시키지 않은 채 이 많은 땅을 다 진나라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와 상당은 싸우지 않고도 이미 진나라 소유가 되었을 것이며 동양東陽하외河外나라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땅이며, 또 중호지中呼池 이북은 나라가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땅입니다.
그렇게 되어 나라를 쳐 멸망시키면 나라도 틀림없이 망하게 되며, 나라가 망하면 나라와 나라도 독립할 수 없게 됩니다.
초나라와 위나라가 독립하지 못하면 일거에 나라를 괴멸壞滅시켜 나라를 좀먹듯이 야금야금 먹어 들고, 나라를 끼고 동쪽의 나라‧나라를 약화시켜 백마진白馬津 둑을 무너뜨려,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면 일거에 삼진三晉(韓‧)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이며 합종책도 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대왕은 팔짱을 끼고 기다려도 천하가 다 나라에 휩쓸려 따라 복종하여 패왕伯王의 명성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데, 대왕의 모신謀臣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채 〈나라와 싸우다 말고〉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여 오히려 나라와 강화를 맺고 말았습니다.
대왕처럼 명철하시고 진나라 병사들처럼 강하다면 패왕伯王을 이룰 수 있었을 터인데 땅과 존귀함을 얻지 못한 채, 도리어 망해야 할 조나라에게 속임을 당하셨으니, 이는 대왕의 모신謀臣들이 졸렬拙劣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또 무릇 나라는 의당 망해야 했으나 망하지 않았고, 나라는 마땅히 패자霸者가 되어야 했는데도 패자가 되지 못한 것은, 천하가 진나라 모신謀臣들의 역량을 헤아렸기 때문이니,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에 온 힘을 다해 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공격하다가 실패하자 갑옷과 무기를 내던지고 무서워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퇴각하였으니, 이것이 천하가 진나라의 힘을 알아보게 된 두 번째 이유입니다.
퇴각한 군대를 이끌고 이하李下 땅에 모아 놓고 대왕께서 군대를 다시 합쳐 싸웠으나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또다시 쌍방 모두 지친 채 퇴각한 것, 이것이 천하가 진나라의 힘을 알아차리게 된 세 번째 이유입니다.
안으로는 우리 모신謀臣의 역량을 헤아려야 하고, 밖으로는 우리 병력의 강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제 생각으로는 천하가 합종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지금 나라는 안으로 군대가 피로하고, 사민士民은 병들어 있으며, 재물은 바닥이 나고, 농토는 황폐해졌으며, 창고는 비어 있으며, 밖으로는 천하의 적들이 서로 뜻을 합쳐 매우 굳세지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또 신은 듣건대 ‘조심조심해서 하루하루를 삼가라.
진실로 그 를 신중하게 한다면 천하를 소유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이런 이치를 알 수 있습니까?
옛날 가 천자가 되었을 때 천하의 백만 군대를 이끌고 왼쪽으로 기곡淇谷의 물을 다 마셔 버리고, 오른쪽으로는 원수洹水의 물을 다 마셔 버렸습니다.
기수淇水의 물이 다 마르고 원수洹水의 물이 흐를 게 없을 정도의 많은 군사로 무왕武王과 대적하였지만 무왕은 불과 3천 명의 소갑素甲뿐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싸워 의 군대를 쳐부수어 를 사로잡았고, 그의 토지를 점거하였으며, 백성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주왕紂王을 동정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나라가 분열될 때〉 지백智伯삼국三國의 무리를 이끌고 양자襄子진양晉陽에서 공격하였습니다.
둑을 터뜨려 물을 흘려 내려 3년 만에 성이 거의 함락될 때였습니다.
양자襄子가 거북껍질을 뚫고 시초蓍草를 헤아려 점을 쳐서 이해利害를 살피되, 어느 나라가 조씨趙氏에게 투항投降할까를 알아본 다음, 신하 장맹담張孟談을 시켰습니다.
이에 장맹담이 몰래 나가서 지백智伯맹약盟約을 깨어버리고, 두 나라(韓‧)의 군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백의 나라를 쳐서 그를 사로잡아 양자襄子로 하여금 승리를 거두게 했습니다.
지금 나라의 땅을 긴 쪽은 떼어 짧은 데 이어 붙이면 수천 리나 되고 이름난 군사도 수백 만이며 진나라의 법령과 상벌제도와 지형의 유리함은 천하에 따를 나라가 없습니다.
이를 천하 제후와 다툰다면 천하를 겸병兼幷하여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을 뵙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천하의 약종約從을 깨어버리고 나라를 들어 쳐서 나라를 멸망시키며, 나라와 나라를 신하로 삼고, 나라와 나라와는 친교를 맺으셔서 패왕伯王의 이름을 성취시켜, 사방 이웃 제후로부터 조회를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시험삼아 들어주십시오.
한꺼번에 천하를 들어 치되, 천하의 합종을 깨버리지 않으면, 조나라를 격파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도 망하지 않을 것이요, 나라‧나라도 신하라 일컫지 않게 될 것이며, 나라와 나라도 친교를 맺고자 아니할 것입니다.
패왕伯王의 이름도 얻지 못할 것이며 사방 이웃 제후도 조공해 올 리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제 목을 잘라 국내에 두루 돌려 대왕께 불충不忠모책謀策을 바친 자들에게 보이십시오.”


역주
역주1 050. 張儀說秦王 : 이 章은 張儀의 連橫說이 워낙 유명해지자 뒤에 누군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이 이야기는 《史記》 〈張儀列傳〉과 《韓非子》 〈初見秦〉에도 실려 있다.
역주2 張儀 : 鮑彪本에는 이 두 글자가 없다.
역주3 天下陰燕陽魏 : 여기서 天下는 山東六國을 말한다. 원주에 “陰은 小이며 陽은 大이다.”라고 하였으나, 陰은 북쪽, 陽은 남쪽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燕나라는 趙나라의 북쪽, 魏나라는 趙나라의 남쪽에 위치한다.
역주4 連荊固齊 : 강국인 楚나라와 齊나라를 연합한다는 뜻. 荊은 楚나라의 별칭. 《左傳》 莊公十年 註에 “荊 楚之本號”라 하였는데, 당시 楚나라를 야만시해서 荊蠻이라 불렀다. 또 秦나라에서는 후세에 진시황의 아버지 이름이 子楚이므로 楚자를 피하였다.
역주5 西南 : 《韓非子》 〈初見秦〉에는 西面으로 되어 있다.
역주6 斧質 : 옛날의 刑具. 斧는 사람의 목을 자르는 도끼, 質는 그 도끼 바탕.
역주7 罪其百姓不能死也 : 원주에 “錢藻本과 劉敞本에는 其百姓不能死也의 7字가 없고 曾鞏本에는 있다.”라고 하였다. 鮑彪本에는 罪자가 非자로 되어 있어 “그 백성들이 죽으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된다.
역주8 其上不能殺也 : 《韓非子》에는 殺자가 故로 되어 있는데, “〈백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은 것은〉 윗사람이 상벌을 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뜻이 된다.
역주9 不(有)攻(功)無攻(功)相事也 : 원주에 “曾鞏本에는 有功無功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고, 《韓非子》 〈初見秦〉에도 有功無功으로 되어 있으므로 고쳐 번역하였다. 孫詒讓은 “공이 없는 자로 하여금 공이 있는 자를 위해 대신 服役하게 한다.”라는 뜻이라 하였으나 何建章은 事는 使자와 通하므로 “공이 있는 자나 공이 없는 자를 막론하고 모두 나라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전쟁에 임하도록 시키고 있다.”의 뜻으로 보았다.(《戰國策注釋》)
역주10 長城‧鉅坊 : 長城은 齊나라 장성을 가리키며 戰國時代에는 秦‧趙‧齊‧燕‧楚 등에 모두 장성이 있었다. 鉅坊은 鉅防으로도 쓰는데 거대한 防禦築城工事.
역주11 秦與荊人戰……東伏於陳 : 이 사실은 편자의 착오로 잘못 기록된 것이다. 《史記》 〈楚世家〉와 〈白起王翦列傳〉 등에 의하면 秦이 楚의 수도 郢을 친 것은 周 赧王 37년의 일이며, 張儀가 죽은 것은 周 赧王 7년의 일이다. 《史記》 〈楚世家〉 襄王 21년에 “진나라 장수 白起가 우리 郢을 빼앗고 선왕의 묘 夷陵을 불태웠다. 초양왕의 군사가 흩어져 마침내 더는 싸우지 못하고 동북 陳城에서 보전했다.[秦將白起拔我郢 燒先王墓夷陵 楚襄王兵散 遂不復戰 東北保於陳城]”라고 되어 있으며 여기서 陳城(지금의 河南省 淮陽縣)은 춘추시대 國名으로, 이미 楚에게 멸망당하여 초의 영토가 되었었다.
역주12 郢 洞庭‧五都(渚)‧江南 : 모두 楚나라의 읍, 혹은 지명이다. 五都는 五渚의 誤記로 長江, 湘水, 沅水, 資水, 灃水. 江南은 지금의 湖省北 일대. 원주에 “五都는 《史記》에서 《戰國策》을 인용하여 五渚라 하였다. 郢은 楚都이며, 洞庭‧五都‧江南은 모두 楚邑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3 今(令) : 대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으나 원주에 “혹 令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라고 하였으며, 《韓非子》에도 令으로 되어 있어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4 華下 : 華는 華山. 陝西省 華陰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太華山이라고도 한다.
역주15 梁郭 : 魏나라의 도읍인 大梁. 지금의 河南省 開封縣의 外城.
역주16 强齊 : 《韓非子》에는 弱齊로 되어 있다.
역주17 穰侯 : 戰國時代 秦 昭王의 어머니인 宣太后의 同母異父 동생. 성은 魏, 이름은 冉, 昭王 때 네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올라 穰邑(지금의 河南省 鄧縣 부근)과 陶(지금의 산동성 定陶縣)에 봉해졌다.
역주18 欲以成兩國之功 : 穰侯가 秦의 재상으로 있을 때 秦 昭王 32년에 군사를 거느리고 魏나라를 공격하여 大梁을 포위하였다. 이때 위나라의 大夫 須賈가 양후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대량을 공격하였다가 함락시키지 못하면 진나라 군사가 피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封地인 陶가 망하게 된다.”라고 하니, 양후는 그럴 듯하게 여겨 대량을 공격하지 않았다. 兩國은 秦나라와 陶를 말한다.
역주19 軍於長平之下……拔武安 : 이 이야기도 착오로 기재된 것이다. 長平 싸움은 戰國時代의 대표적 싸움으로 秦將 白起가 趙나라 趙括의 군사 40만을 長平에서 詐術로 생매장한 큰 싸움이다. 연대상으로 周 赧王 55년의 일이며 張儀가 죽은 지 49년 후의 일이므로 張儀가 이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武安은 地名으로 지금의 河北省 武安縣 경내에 있다. 《史記》 〈白起王翦列傳〉 및 〈廉頗藺相如列傳〉‧〈趙世家〉‧〈秦世家〉 등 참조.
역주20 邯鄲 : 趙나라의 수도. 지금의 河北省 邯鄲市.
역주21 河間 : 趙나라 邑名. 지금의 河北省 河間縣.
역주22 脩武 : 趙나라 邑名. 지금의 河南省 獲嘉縣.
역주23 羊腸 : 趙나라 요새 이름.
역주24 : 원래는 小國 이름으로 趙에게 망하였다. 지금의 山東省 북부 및 河北省 蔚縣 부근.
역주25 東陽 : 趙나라의 읍명. 山東省 恩縣 서북.
역주26 河外 : 지금의 河南省 黃河 以南 地域.
역주27 中呼池 : 水名. 山西省 繁峙縣에서 발원하여 河北省 경계를 거쳐 古漳水로 흘러든다.
역주28 白馬 : 黃河의 나루 이름. 지금의 河南省 滑縣 동쪽.
역주29 從者敗 : 函谷關 동쪽의 六國(楚, 齊, 燕, 韓, 趙, 魏)의 合從이 깨어짐을 말한다.
역주30 怒(弩) : 대본에는 怒로 되어 있으나 《韓非子》에 의거하여 弩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31 李下 : 지명. 지금의 하남성 溫縣.
역주32 淇谷 : 淇水(淇河)의 골짜기.(지금의 河南省 湯陰縣)
역주33 洹水 : 安陽河. 지금의 河南省 安陽縣에 있다.
역주34 素甲 : 흰 갑옷을 입은 군사. 武王이 紂를 칠 때에 그의 아버지 文王의 喪中에 있었기 때문에 군사들에게 흰 갑옷을 입게 하였다 한다.
역주35 天下莫[不]傷 : 대본에는 天下莫不傷으로 되어 있어 “천하가 모두 슬퍼하였다.”로 해석되지만, 《韓非子》 〈初見秦〉에는 不자가 없어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36 智伯 : 전국시대 들어서 晉이 분열될 때 6명의 대부들이 서로 싸워 그 중 智‧韓‧魏‧趙 등 四卿의 싸움이 치열하였다.(周 貞王 16년, B.C.453) 그때 智伯(荀瑤)이 魏‧韓과 연합해서 趙襄子를 공격하였다. 조양자가 晉陽城에서 苦戰하던 끝에 張孟談을 密行시켜 韓‧魏에게 脣亡齒寒이란 고사를 들어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智氏를 멸하고 晉을 三分시켰다. 이를 흔히 三晉이라 하며 모두 戰國七雄에 들었다.
역주37 襄主 : 趙 襄子. 趙簡子의 아들로 이름은 毋恤. 원주에 “大夫를 主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38 錯龜‧數策 : 錯龜가 《韓非子》 〈初見秦〉에는 鑽龜로 되어 있다. 즉 거북껍질을 태워 그 갈라진 무늬로 길흉을 점치는 일이다. 數策은 蓍草로 점치는 것으로, 모두 占筮法의 일종이다.
역주39 以主爲謀不忠者 : 모책을 짜는 데에 불충한 자에게 이렇게 연좌됨을 알려 경계로 삼도록 하라는 뜻. 主는 坐와 같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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