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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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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無子,
春申君患之, 求婦人宜子者進之, 甚衆, 卒無子.
趙人李園, 持其, 欲進之楚王, 聞其不宜子, 恐又無寵.
李園求事春申君爲舍人.
已而謁歸, 故失期.
還謁, 春申君問狀. 對曰:
“齊王遣使求臣女弟, 與其使者飮, 故失期.”
春申君曰:
“聘入乎?”
對曰:
“未也.”
春申君曰:
“可得見乎?”
曰:
“可.”
於是園乃進其女弟, 卽幸於春申君.
知其有身, 園乃與其女弟謀.
園女弟承間說春申君曰:
“楚王之貴幸君, 雖兄弟不如.
今君相楚王二十餘年, 而王無子, 卽百歲後將更立兄弟.
卽楚王更立, 彼亦各貴其故所親, 君又安得長有寵乎?
非徒然也?
君用事久, 多失禮於王兄弟, 兄弟誠立, 禍且及身, 奈何以保相印‧之封乎?
今妾自知有身矣, 而人莫知.
妾之幸君未久, 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 王必幸妾.
妾賴天而有男, 則是君之子爲王也,
楚國封盡可得, 孰與其臨不測之罪乎?”
春申君大然之.
乃出園女弟謹舍, 而言之楚王.
楚王召入, 幸之. 遂生子男, 立爲太子, 以李園女弟立爲王后.
楚王貴李園, 李園用事.
園旣入其女弟爲王后, 子爲太子, 恐春申君語泄而益驕,
陰養死士, , 而國人頗有知之者.
春申君相楚二十五年, 考烈王病.
謂春申君曰:
“世有之福, 又有無妄之禍.
今君處無妄之世, 以事無妄之主, 安不有無妄之人乎?”
春申君曰:
“何謂無妄之福?”
曰:
“君相楚二十餘年矣, 雖名爲相國, 實楚王也. 五子皆相諸侯.
今王疾甚, 旦暮且崩, 太子衰弱, 疾而不起, 而君相少主,
因而代立當國, 如. 王長而反政, 不, 卽遂南面稱孤, 因而有楚國.
此所謂無妄之福也.”
春申君曰:
“何謂無妄之禍?”
曰:
“李園不治國, 王之舅也.
不爲兵將, 而陰養死士之日久矣.
楚王崩, 李園必先入, 據本議制斷君命, 秉權而殺君以滅口.
此所謂無妄之禍也.”
春申君曰:
“何謂無妄之人?”
曰:
“君先仕臣爲郞中,
君王崩, 李園先入, 臣請爲君𠟍其胸殺之.
此所謂無妄之人也.”
春申君曰:
“先生置之, 勿復言已.
李園, 軟弱人也, 僕又善之, 又何至此?”
朱英恐, 乃亡去.
後十七日, 楚考烈王崩, 李園果先入, 置死士, 止於之內.
春申君後入, 止棘門. 園死士夾刺春申君, 斬其頭, 投之棘門外.
於是使吏盡滅春申君之家.
而李園女弟, 初幸春申君有身, 而入之王所生子者, 遂立, 爲楚幽王也.
是歲, 秦始皇立九年矣. 嫪毐亦爲亂於秦. 覺, 夷, 而呂不韋廢.


나라 고열왕考烈王은 자식이 없었다
나라 고열왕考烈王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춘신군春申君이 이를 걱정하여 아이를 가질 만한 부인婦人을 구하여 왕에게 바친 자가 심히 많았지만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때 나라 사람 이원李園이 자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초왕에게 바치려다가 마침 왕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동생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이원은 춘신군을 섬기기 위해 그의 사인舍人이 되기를 구하였다.
얼마 후, 이원은 휴가를 청해 집으로 돌아가서는 고의로 돌아올 날짜를 넘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뵙자 춘신군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였다.
제왕齊王이 사람을 보내어 제 여동생을 요구하기에 그 사신과 술을 마시느라 그 때문에 기일이 늦어졌습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이미 빙례聘禮는 들어왔는가?”
이원이 대답하였다.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만나 볼 수 있을까?”
이원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리하여 이원이 그 여동생을 바치니, 곧바로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게 되었다.
동생에게 태기胎氣가 있는 것을 알자 이원은 동생과 계략을 꾸몄다.
이원의 여동생은 틈을 보아 춘신군을 설득하였다.
“초왕이 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형제들조차도 그만 못할 것입니다.
지금 군은 20년 넘게 초왕의 재상을 역임하셨는데 왕에게 아들이 없으니, 왕이 죽은 뒤에는 다른 형제를 왕으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초왕이 다른 사람이 서게 되면 그 역시 각기 자기와 친한 자를 귀히 여길 것이 뻔하니, 그렇게 되면 군께서 길이 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것뿐이겠습니까?
군께서 용사用事한 지 오래여서 왕의 형제들에게 실례失禮한 것이 많은데 참으로 그 형제 중에서 왕이 되면 가 몸에 미칠 것이니, 어떻게 의 지위와 강동江東봉지封地를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자신만 제가 임신했음을 알 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또 군의 총애를 받은 지도 얼마 안 되니, 군의 중함으로 첩을 초왕에게 바치시면 왕은 반드시 첩을 총애할 것입니다.
첩이 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는다면 이는 당신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의 봉토封土는 모두 당신 것이 되는데, 헤아릴 수 없는 죄가 닥치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춘신군은 그 말이 크게 옳게 여겼다.
이에 이원의 여동생을 다른 처소로 옮겨 근신하게 하고 초왕에게 말하였다.
초왕이 그녀를 불러들여 총애하였고 드디어 사내아이를 낳자 태자로 세웠으며, 이원의 여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그리고 초왕이 이원을 총애하자 이원이 용사用事하였다.
이원은 이미 여동생을 왕에게 바쳐 왕후로 삼았고, 그 아들이 태자가 되었지만 춘신군이 기밀을 누설하고 더욱 교만해질까 걱정이었다.
그리하여 몰래 죽기를 각오한 군사를 길러 춘신군을 죽여 그 입을 막으려고 하였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나라 사람들이 많게 되었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상국을 지낸 25년 만에 고열왕考烈王이 병들었다.
주영朱英이 춘신군에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뜻밖의 이 있고, 뜻밖의 가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군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처하여 예측할 수 없는 임금을 섬기고 있으니, 어찌 뜻밖의 사람이 없겠습니까?”
춘신군이 물었다.
“뜻밖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이오?”
주영이 말하였다.
“군은 초나라 을 지낸 지 20여 년인데, 이름은 상국이지만 실제로는 왕과 다름없으며 다섯 아들은 모두 제후諸侯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임금의 병이 심해서 조석 사이에 하게 되었으며, 태자는 쇠약하여 병이 들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군은 그 어린 임금의 상으로 있습니다.
이에 군은 이를 인하여 섭정攝政하기를 마치 이윤伊尹이나 주공周公처럼 하다가 왕이 자란 후에야 정권을 돌려줄 수도 있고, 돌려주지 않고 직접 남면南面하여 을 일컬으면 초나라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곧 뜻밖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뜻밖의 란 무엇이오?”
주영이 말하였다.
“이원이 정권을 잡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왕의 처남입니다.
군대를 통솔하는 장수도 아니면서 암암리에 죽기를 각오한 사병私兵을 키운 지 오래입니다.
초왕이 하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원래의 계획대로 왕의 명령이라고 속여 정권을 잡고 귀하를 죽여 입을 막아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곧 뜻밖의 화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란 무엇이오?”
주영이 말하였다.
“청컨대 군은 먼저 저를 낭중郎中으로 삼으십시오.
임금이 죽은 후에 만약 이원이 궁궐로 먼저 들어오면 제가 그의 가슴을 찔러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예측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선생은 그만두고 더는 말하지 마시오.
이원李園은 연약한 사람이며, 내가 또한 아주 잘 대해 주고 있는데 어찌 그 지경에 이르겠소?”
주영은 겁이 나서 도망쳐 버렸다.
그후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자 과연 이원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죽음을 각오한 병사를 극문棘門 안에 매복시켜 놓았다.
춘신군이 뒤늦게 궁에 들어가려고 극문에 닿자, 이원의 군사들이 양쪽에서 춘신군을 찌르고는 그의 목을 쳐서 이를 극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이에 관리를 시켜 춘신군 집사람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았다.
이원의 여동생이 처음 춘신군에게 총애를 받아 아이를 가진 후, 초왕에게 바쳐져 태어난 아들이 즉위하니 이가 곧 초나라 유왕幽王이다.
이 해에 에서는 시황始皇이 이미 재위 9년째였고, 노애嫪毐 역시 진나라를 어지럽히다가 발각되어 삼족三族이 몰살당하였으며, 여불위呂不韋폐척廢斥되었다.


역주
역주1 220. 楚考烈王無子 : 이 이야기는 《史記》에도 비슷하게 실려 있는데, 결국 楚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사건이다. 그러나 책에 따라 춘신군의 죽음이 달리 기록되어 있다.
역주2 考烈王 : 頃襄王의 아들인 熊元(熊完). 재위 25년.
역주3 女弟 : 李園의 여동생. 《越絶書》에 의하면 이름은 環이라고 한다.
역주4 江東 : 揚子江 하류로 春申君의 封地.
역주5 원주] 欲殺春申君以滅口 : 《越絶書》에 “春申君은 초나라 考烈王의 相이다. 고열왕이 죽고 幽王이 즉위하여 춘신군을 吳에 봉하였다. 3년에 유왕이 불러 초나라의 令尹을 삼으니, 춘신군이 그 아들을 假君으로 삼아 11년 동안 다스렸는데, 幽王이 그 假君과 춘신군을 불러 함께 죽였다. 두 사람이 吳를 다스린 지 무릇 14년이다.”라 하였다.
역주6 朱英 : 趙나라 觀津 사람으로 春申君의 식객.
역주7 無妄 : 뜻밖의 일. 《史記》에는 無望으로 되어 있다.
역주8 伊尹‧周公 : 伊尹은 商湯을 도운 명재상으로 湯이 죽자 그 손자 太甲을 도왔다. 그리고 周公은 周나라 武王의 아우로 武王이 죽자 封地인 魯로 가지 않고, 무왕의 아들인 어린 成王을 보필하다가 7년 후 정사를 돌려 주었다.
역주9 棘門 : 宮門. 옛날 궁문에는 戟을 꽂아 두어서 생긴 말. 戟은 棘과 통한다.
역주10 三族 : 父族, 母族, 妻族.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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