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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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謂鄭王曰:
, 一世之明君也; , 一世之賢士也; 韓與魏, 敵侔之國也.
申不害與昭釐侯執珪而見梁君, 非好卑而惡尊也, 非慮過而議失也.
申不害之計事, 曰: ‘我執珪於魏, 魏君必得志於韓, 必外靡於天下矣,
是魏弊矣.
諸侯惡魏必事韓, 是我免於一人之下, 而信於萬人之上也.
夫弱魏之兵, 而重韓之權, 莫如朝魏.’
昭釐侯聽而行之, 明君也; 申不害慮事而言之, 忠臣也.
今之韓弱於始之韓, 而今之秦强於始之秦.
今秦有梁君之心矣, 而王與諸臣不事爲尊秦以定韓者, 臣竊以爲王之明爲不如昭釐侯, 而王之諸臣忠莫如申不害也.
此以一勝立尊令, 成功名於天下.
今秦數世强矣, 大勝以數, 小勝以百數, 大之不王, 小之不霸, 名尊無所立, 制令無所行,
然而春秋用兵者, 非以求主尊成名於天下也.
昔先王之攻, 有爲名者, 有爲實者.
爲名者攻其心, 爲實者攻其形.
昔者, 吳與越戰, 越人大敗, 保於之上.
吳人入越而戶撫之. 越王使大夫種行成於吳, 請男爲臣, 女爲妾, 而隨諸御.
吳人果聽其辭, 與成而不盟,
此攻其心者也.
其後越與吳戰, 吳人大敗,
亦請男爲臣, 女爲妾, 反以越事吳之禮事越.
越人不聽也, 遂殘吳國而禽夫差,
此攻其形者也.
今將攻其心乎?
宜使如吳;
攻其形乎?
宜使如越.
夫攻形不如越, 而攻心不如吳,
而君臣‧上下‧少長‧貴賤, 畢呼霸王, 臣竊以爲猶之井中而謂曰: ‘我將爲爾求火也.’”


422. 정왕鄭王에게 말하다
〈어떤 이가〉 정왕鄭王( 의혜왕宜惠王)에게 말하였다.
소리후昭釐侯는 일세의 명군名君이요, 신불해申不害는 일세의 현사賢士이며 나라와 나라는 서로 동등한 국가입니다.
그리고 신불해와 소리후昭釐侯규옥珪玉을 잡고 가서 양왕梁王(위왕魏王)을 뵌 것은 결코 비천卑賤함을 좋아하고 존귀함을 싫어해서가 아니며, 또한 사려가 깊지 않거나 계획을 실패해서도 아닙니다.
신불해가 일찍이 왕에게 일을 계획하기를 ‘내가 규옥을 잡고 위왕을 뵈면 위왕은 반드시 우리 한나라의 뜻을 얻어 천하를 깔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나라는 피폐해집니다.
제후들은 위나라가 한나라를 섬기는 것을 싫어하게 되니, 이는 우리가 한 사람에게 머리를 숙여서 만민 위에서 신임을 받는 것입니다.
무릇 위나라의 병력兵力을 약화시키고 한나라의 권력을 중히 하려면 위나라를 받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소리후昭釐侯는 이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였으니 현명한 군주요, 신불해는 국사를 고려하여 이렇게 말하였으니 충성된 신하인 것입니다.
지금의 한나라는 초기의 한나라보다 약해졌으며, 지금의 진나라는 초기의 진나라보다 강해졌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양왕의 마음까지 얻고 있는데 왕과 여러 신하들은 진나라를 존중하여 한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 대왕의 총명함은 결코 소리후만 못한 것 같고, 왕의 여러 신하들은 아무래도 신불해만큼 충성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옛날 목공穆公한원韓原에서 〈나라를〉 한번 굴복시키고 서쪽의 패자霸者가 되었고, 문공文公성복城濮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
이는 한 번 승리로 존귀尊貴를 세워 천하에 공명이 날리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 나라는 여러 대를 내려오면서 강성해져서 큰 승리가 수십 번이요, 작은 승리도 수백 번이건만 아직도 크게는 왕업을 이루지 못하고 작게는 패업도 이루지 못하였으며, 명예나 존귀를 세운 바 없고 제도나 법령도 남에게 실행해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춘추 시대에 용병用兵한 자들은 천하에 임금을 높이고 명예를 이루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하여 옛날 선왕의 공격은 명분을 위한 것도 있었고, 실리를 위한 것도 있었습니다.
명분을 위한 자는 상대방의 마음을 공격하고 실리를 위한 자는 상대방의 형체 있는 것을 공격합니다.
지난날 나라와 나라가 교전할 때 월나라가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 들어가 보전하였습니다.
오나라가 월나라에 들어와 백성을 안무安撫하자 월왕은 대부 문종文種을 시켜 오나라에 강화를 요청하면서 그 조건으로 월나라의 남자는 오나라의 노복이 되고 여자는 비첩이 되고, 자신은 스스로 새를 잡아 오왕의 예물로 바쳐 신하라 일컬으며 오왕吳王시종侍從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나라는 이 말을 허락하였으나 맹약을 맺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오나라가 월나라의 마음을 공격한 좋은 예입니다.
그 후 월나라와 오나라는 다시 싸움이 붙어 이번에는 오나라가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나라 역시 월나라에게 남자는 노복으로, 여자는 비첩이 되기를 청하였으며,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받았던 예를 다 갖추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월나라는 들어주지 않고 오나라를 아주 멸망시켜 버리고 오왕 부차夫差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는 월나라가 오나라의 형체를 공격한 좋은 예입니다.
이제 나라의 마음을 공격하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한 것처럼 하십시오.
지금 그 형체를 공격하려 하십니까?
이러면 마땅히 월나라가 오나라에게 하듯 하십시오.
무릇 형체를 공격하기로는 월나라만한 것이 없고, 마음을 공격하기로는 오나라만한 게 없습니다.
군신君臣상하上下소장少壯귀천貴賤이 모두 패왕霸王의 사업을 끝냈다고 소리치는 것은 제 생각으로는 마치 사람이 우물 안에서 ‘내가 너를 위해 불을 구해 오겠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역주
역주1 : 이 장의 내용은 다음 423장과 연결된다.
역주2 昭釐侯 : 昭侯라고도 하며 哀侯의 孫子, 申不害를 相國으로 삼았다.
역주3 申不害 : 昭侯를 도와 15년 동안 相國을 지냈는데, 그 사이 외적의 침입이 없었다. 그의 학문은 黃老를 주로 하여 刑名으로 다스렸다. 뒤에 法家의 祖로 받들어졌다.
역주4 穆公……西州 : 周 襄王 7년(B.C.645년)에 秦 穆公이 晉 惠公과 韓原(지금의 陝西省 韓城縣의 동쪽 山西省과의 경계)에서 싸워 惠公을 사로잡았다. 이로부터 穆公은 西戎 各國까지 합해 霸者가 되었다.
역주5 晉 文公……定天下 : 周 襄王 20년(B.C.632년)에 文公이 城濮(지금의 山東省 濮縣)에서 당시 北進 세력인 楚를 대패시켜 周室에 조견하여 패자가 되었다. 楚의 成王이 中原을 쟁패하려 들었기 때문에 ‘定天下’라 한 것이다.
역주6 千(十) : 鮑彪本에 의하여 ‘十’으로 고쳤다.
역주7 會稽 : 산 이름. 浙江省 紹興縣에 있다.
역주8 身執禽 : 越王 자신이 새를 사냥하여 吳王에게 바치며 신하라 일컫겠다는 뜻. 《禮記》 〈檀弓篇〉 注에 “諸侯는 새를 잡아 바치니, 존귀함을 낮추는 뜻이다.”라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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