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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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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召燕王, 燕王欲往.
蘇代約燕王曰:
齊‧楚不得以有枳‧宋事秦者, 何也?
是則有功者, 秦之深讎也.
秦取天下, 非行義也, 暴也.
秦之行暴於天下, 正告楚曰:
地之甲, 輕舟浮於, 乘夏水而下江, 五日而至郢.
之甲, 乘舟出於, 乘夏水而下, 四日而至.
寡人積甲, 東下, 知者不及謀, 勇者不及怒,
寡人如射隼矣.
王乃待天下之攻函谷, 不亦遠乎?’ 楚王爲是之故, 十七年事秦.
秦正告韓曰:
‘我起乎, 一日而斷太行.
我起乎宜陽而觸平陽, 二日而莫不盡繇.
我離兩周而觸鄭, 五日而國擧.’ 韓氏以爲然, 故事秦.
秦正告魏曰:
‘我擧, 塞, 韓氏太原卷.
我下枳, 道南陽‧封‧冀, 包兩周, 乘夏水, 浮輕舟, 强弩在前, 銛戈在後, 決, 魏無大梁; 決之口, 魏無; 決之口, 魏無.
陸攻則擊河內, 水攻則滅大梁.’ 魏氏以爲然, 故事秦.
秦欲攻安邑, 恐齊救之,
則以宋委於齊, 曰:
‘宋王無道, 爲木人以寫寡人, 射其面.
寡人地絶兵遠, 不能攻也. 王苟能破宋有之, 寡人如自得之.’ 已得安邑, 塞女戟, 因以破宋爲齊罪.
秦欲攻, 恐天下救之, 則以齊委於天下曰: ‘齊王四與寡人約, 四欺寡人, 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
有齊無秦, 無齊有秦, 必伐之, 必亡之!’
已得宜陽‧少曲, 致藺‧, 因以破齊爲天下罪.
秦欲攻魏, 重楚, 則以委於楚曰: ‘寡人固與韓且絶矣!
, 塞, 苟利於楚, 寡人如自有之.’ 魏棄與國而合於秦, 因以塞鄳隘爲楚罪.
兵困於, 重燕‧趙, 以委於燕, 以委於趙.
趙得講於魏, 公子延,
因犀首屬行而攻趙. 兵傷於離石, 遇敗於馬陵,
而重魏, 則以委於魏.
已得講於趙, 則劫魏, 魏不爲割.
困則爲和, 羸則兼欺舅與母.
適燕者曰: ‘以膠東.’ 適趙者曰: ‘以濟西.’ 適魏者曰: ‘以葉‧蔡.’ 適楚者曰: ‘以塞鄳隘.’ 適齊者曰: ‘以宋.’
此必令其言如循環, 用兵如, 母不能制, 舅不能約.
, , , , ,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 皆死秦之孤也.
之外‧上雒之地‧, 晉國之禍, 三晉之半.
秦禍如此其大, 而燕‧趙之秦者, 皆以爭事秦說其主, 此臣之所大患.”
燕昭王不行, 蘇代復重於燕.
燕反約諸侯從親, 如,
或從或不, 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
代‧厲皆以壽死, 名顯諸侯.


457. 나라가 소왕蘇王을 부르다
진왕秦王(소왕昭王)이 연왕燕王(소왕昭王)을 부르자 연왕이 가고자 하였다.
소대蘇代가 말리면서 말하였다.
나라는 땅을 얻으려다 망하였고, 나라는 땅을 얻으려다 망하였습니다.
제나라‧초나라가 지‧송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나라를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전쟁에 이긴 나라는 곧 진나라의 깊은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려 하는 것은 인의仁義를 펴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횡포橫暴입니다.
진나라는 천하에 횡포를 행하면서 정면으로 공공연히 초나라에게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촉지蜀地의 군사를 문강汶江에서 빠른 배로 출정시켜 여름날 불어난 물을 타고 장강長江으로 내려가면 불과 닷새면 너희 서울 에 도착한다.
한중漢中의 군사를 땅에서 배로 출발시켜 여름날 불어난 물을 타면 한수漢水를 거쳐 나흘 만이면 오저五渚에 도착한다.
과인이 완읍宛邑에다가 병력을 집결시켰다가 동으로 땅을 공격하면 제아무리 똑똑한 자라도 대책을 세울 겨를이 없고, 아무리 용기 있는 자도 화낼 틈조차 없어진다.
과인이 하는 일은 사냥하는 매와 같다.
그런데 그대가 천하의 제후를 모아 함곡관函谷關을 치려 한다면 너무나 먼 곳이 아니겠는가?’ 초왕은 그렇다고 여겨 17년이나 진나라를 섬겼던 것입니다.
다음에 진나라는 또 나라에게 정면으로 이렇게 고하였습니다.
‘내가 소곡少曲에서 군대를 일으켜 하루만이면 태행산太行山의 길을 끊어버릴 수 있다.
내가 의양宜陽에서 기병起兵하여 평양平陽을 치려면 이틀이면 내 손안에서 흔들리지 않을 곳이 없다.
내가 또 양주兩周를 떠나 땅을 건드리면 닷새 안에 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한나라도 과연 그렇다고 여기고 진나라를 섬겼습니다.
진나라는 또 나라에게 정면으로 경고하였습니다.
‘내가 안읍安邑을 공격하여 여극女戟을 막으면 나라와 태원太原이 휘말린다.
내가 를 무너뜨리고, 남양南陽봉릉封陵의 길로 나서서 양주兩周를 포위해 놓고 여름에 물이 불어날 때 빠른 배로 내려가서 앞에는 굳센 를 가진 부대, 뒤는 예리한 창을 가진 부대로 하여금 형택滎澤수구水口를 터 버리면 나라 대량大梁은 물바다가 되며, 백마진白馬津의 수구를 트면 위나라는 제양濟陽을 잃게 되고, 숙서宿胥의 수구를 트면 돈구頓丘가 사라진다.
뭍을 타고 공격하면 하내河內를 칠 수 있고, 물로 공격하면 대량이 무너진다.’ 위나라도 그렇다 여기고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안읍安邑을 공략하고 싶지만 나라가 위나라를 구원할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을 제나라에게 맡긴다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송왕宋王(강왕康王)은 무도하여 허수아비 목우木偶를 만들어 과인의 얼굴을 그려 이를 활로 쏘고 있소이다.
그러나 과인 나라와는 너무 멀어 공략할 수 없으니 그대가 만약 쳐서 그 땅을 갖는다면 과인은 내가 갖는 것처럼 기뻐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안읍安邑을 차지하고 여극女戟을 막아 버리고, 오히려 제나라에게 송나라를 친 죄를 물었습니다.
진나라가 나라를 치고 싶었지만 천하가 이를 구원할까 겁이 나서 제나라를 천하 제후들에게 맡기면서 ‘제왕齊王(민왕湣王)과 나는 네 차례나 약속을 하였는데도 그 네 차례 모두 나를 속였고, 그중 세 번은 천하 제후를 거느리고 과인을 공격하였소.
제나라가 있는 한 진나라가 있을 수 없고, 제나라가 없어야 진나라가 있게 되니, 반드시 이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의양‧소곡을 얻고 이석離石에 이르자 도리어 천하 제후들에게 제나라를 공격한 죄를 물었습니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략할 때 초나라가 두려워 남양을 초나라에게 맡기면서 ‘과인은 본래부터 한나라와 절교할 생각이었소!
그러니 〈초나라가〉 능히 균릉均陵을 격파하고, 맹애鄳隘를 봉쇄하여 초나라에게 유리하게 된다면 과인은 내가 이익을 얻은 것처럼 여기겠소.’ 라 하고는, 위나라가 다른 동맹국을 버리고 진나라와 결합하자 진나라는 오히려 초나라에게 맹애를 봉쇄하였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진나라 군사가 임중林中에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문득 나라와 나라를 두려워하여 교동膠東은 연나라에게 맡기고, 제서濟西는 조나라에게 맡겼습니다.
조나라는 위나라와 강화를 하여 위나라 공자公子 까지 인질로 삼았습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서수犀首를 보내어 연달아 조나라를 공격하여, 그 결과 조나라는 이석離石에서 많은 군사를 잃고 마릉馬陵에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진나라는 이번에는 위나라를 높여 를 위나라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조나라와 강화講和를 맺은 후에는 위나라를 협박하였지만 위나라는 토지를 할양하지 않았습니다.
진나라는 피폐해지면 태후太后와 그 동생 양후穰侯를 시켜 강화하게 하고 쇠약해졌을 때는 삼촌이나 어머니를 속이는 나라입니다.
연나라를 꾸짖을 때는 ‘교동을 막았다.’는 것을 구실로 삼고, 조나라를 트집잡을 때는 ‘제서濟西를 취하였다.’고 하였으며, 위나라를 나무랄 때는 ‘섭‧채를 차지했다.’고 소리쳤으며, 초나라를 꾸짖을 때는 ‘맹애를 막았다.’고 죄를 따지고, 제나라를 꾸짖을 때는 ‘송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진나라의 말은 마치 고리처럼 돌고돌아 끝이 없고 용병用兵은 자수를 놓는 것처럼 날렵한 것이어서, 모친도 어쩌지 못하고 삼촌일지라도 그와는 어떤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용가龍賈의 싸움, 안문岸門의 싸움, 봉릉封陵의 싸움, 고상高商의 싸움, 조장趙莊의 싸움 등으로 진나라에게 죽음을 당한 삼진三晉의 백성은 수백만에 이르며,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진나라에게 죽은 병사의 유족들뿐입니다.
서하西河 땅 밖과 상락上雒 일대 지방 및 삼천三川 땅 각처는 모두 이러한 화를 입은 곳으로, 그 넓이는 삼진의 반이나 됩니다.
진나라의 화환禍患이 이렇게 큰 데도 연나라나 조나라의 진나라와 친한 유세객들은 다투어 자신들의 임금들에게 진나라를 섬기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제가 우려하는 일입니다.”
연 소왕은 진나라로 가지 않았고 소대는 연나라에서 더 중용되었다.
연나라는 돌이켜 제후들과 다시 합종合從을 맺어 소진蘇秦 시대처럼 되었다.
어떤 제후는 합종에 찬성하고 어떤 이는 반대하였지만 그래도 천하의 마음은 소씨의 합종으로 기울어져 갔다.
소대蘇代소려蘇厲는 그후에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죽었으며, 그 이름이 제후들 사이에서 드날리게 되었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史記》 〈蘇秦列傳〉의 蘇代 부분에 있으며, 내용은 454장에 연결된다. 시기는 B.C.279년인데 이때 秦의 昭王이 燕의 昭王을 秦으로 부른 것이다.
역주2 楚得枳而國亡 : 枳는 지금의 四川省 涪陵縣. 周 赧王 36년(B.C.279년)에 秦將 白起가 楚의 鄢‧鄧을 攻陷하였다.
역주3 齊得宋而國亡 : 周 赧王 29년(B.C.286년)에 齊는 楚‧魏와 합해 宋을 멸하였다. 그러나 31년에 燕將 樂毅가 秦 및 三晉을 합해 齊의 70여 성을 함락시켰다.
역주4 : 國名. 지금의 四川省 일대로 도읍은 成都, 秦 惠王에게 망하였다.
역주5 : 泯江. 四川省에 있는 강이름.
역주6 漢中 : 秦의 郡名. 지금의 陝西省 南部 및 湖北省 西北部.
역주7 : 大巴山. 長江과 漢水의 분수령. 또는 巴 지역.
역주8 : 水源은 陝西省 寧羌縣, 湖北省을 거쳐 長江으로 흘러든다.
역주9 五渚 : 이설이 많다. 洞庭湖 부근, 혹은 宛‧鄧‧漢水 연안, 혹은 洞庭湖 부근의 五湖라고도 한다.
역주10 : 고대 申나라 땅. 春秋 때 楚에게 망하였으며 戰國 때에는 韓에 속하였다. 河南省 南陽縣.
역주11 : 國名. 春秋 때 楚에게 망하여 邑이 되었다. 지금의 湖北省 隨縣.
역주12 少曲 : 지금의 河南省 孟縣.
역주13 安邑 : 지금의 山西省 夏縣.
역주14 女戟 : 지금의 山西省 東南 경내.
역주15 榮(滎) : 호수 이름. 그 터는 河南省 氾水縣에 있으나 漢代에 말라 버렸다.
역주16 白馬 : 나루 이름. 지금의 河南省 滑縣, 혹은 黎陽津이라고도 한다.
역주17 濟陽 : 지금의 河南省 蘭封縣.
역주18 宿胥 : 水名. 지금은 없으나 그 물길 터는 河南省 濬縣에 있다.
역주19 虛‧頓丘 : 虛는 魏邑 《史記》 正義에 殷虛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지금의 河南省 安陽縣 小屯村. 頓丘 역시 魏邑으로 河南省 濬縣.
역주20 齊(韓) : 《史記》 〈蘇秦列傳〉에 의하여 ‘韓’으로 고쳤다.
역주21 〈離〉石 : 趙나라 邑으로 지금의 山西省에 離石이 있다.
역주22 南陽 : 河南省 南陽縣 일대.
역주23 均陵 : 湖北省 均縣.
역주24 鄳(澠)隘 : 鄳의 음은 ‘맹’이나 澠(민)의 이체자로 澠隘로도 쓴다. 河南省 信陽縣 東南의 平靖關.
역주25 林中 : 河南省 新鄭縣의 林鄕城.
역주26 膠東 : 漢代의 膠東郡. 山東省 膠縣 및 平度縣 일대.
역주27 濟西 : 지금의 山東省 荷澤縣, 堡城縣, 壽張縣 등지.
역주28 至(質) : 《史記》 索隱에 의해 ‘質’로 고쳤다.
역주29 : 河南省 葉縣.
역주30 : 河南省 上蔡縣.
역주31 使太后穰侯 : 《史記》에는 ‘使太后弟穰侯’라 하였다. 太后는 秦 昭王의 어머니인 宣太后, 穰侯는 太后의 異父同母弟인 魏冉.
역주32 刺蜚繡 : ‘繡’는 衍文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33 龍賈之戰 : 周顯王 39년(B.C.330년) 秦이 魏의 雕陰을 공격하여 그 장수 龍賈를 사로잡고 魏兵 8만을 죽였다.
역주34 岸門之戰 : 周 赧王 원년(B.C.314년) 秦의 公子 樗里疾이 韓을 岸門(山西省 河津縣‧韓地)에서 깨뜨리고 韓兵 1만을 죽였다. 이때 장수 犀首는 敗走하였다.
역주35 封陸(陵)之戰 : 원문 ‘陸’은 《史記》 〈蘇秦列傳〉에 의하여 ‘陵’으로 고쳤다. 周 赧王 12년(B.C.303년) 秦의 魏의 封陵을 함락시켰다. 封陵은 山西省 永濟縣.
역주36 高商之戰 : 未詳.
역주37 趙莊之戰 : 趙莊은 趙의 將帥. 《史記》에는 趙疵로 되어 있다. 周 顯王 41년(B.C.328년) 趙가 秦에게 패하자 趙莊은 河西에서 秦에게 죽었다.
역주38 西河 : 지금의 陝西省 華陰縣과 白水縣 일대. 黃河의 서쪽에 있음.
역주39 三川 : 河南省의 伊水, 洛水, 河水가 모이는 근처.
역주40 蘇秦時 : 蘇代, 蘇厲의 합종책 성공으로 秦은 15년간 函谷關을 나오지 못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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