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王
, 輦從
, 專淫逸侈靡, 不顧國政, 郢都必危矣.”
“臣聞鄙語曰:‘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今楚國雖小, 絶長續短, 猶以數千里, 豈特百里哉?
六足四翼, 飛翔乎天地之間, 俛啄蚊虻而食之, 仰承甘露而飮之, 自以爲無患, 與人無爭也.
不知夫五尺童子, 方將調
膠絲, 加己乎四仞之上, 而下爲螻蟻食也.
俯噣白粒, 仰棲茂樹, 鼓翅奮翼, 自以爲無患, 與人無爭也.
不知夫公子王孫, 左挾彈, 右攝丸, 將加己乎十仞之上, 以其
爲招.
游於江海, 淹乎大沼, 俯噣
, 仰嚙
, 奮其六翮, 而凌淸風, 飄搖乎高翔, 自以爲無患, 與人無爭也.
不知夫射者, 方將脩其𦲱盧, 治其繒繳, 將加己乎百仞之上. 彼礛磻, 引微繳, 折淸風而抎矣.
南游乎
, 北陵乎
, 飮
流, 食湘波之魚, 左抱幼妾, 右擁嬖女, 與之馳騁乎高蔡之中, 而不以國家爲事.
左州侯, 右夏侯, 輩從鄢陵君與壽陵君, 飯封祿之粟, 而
, 與之馳騁乎
之中, 而不以天下國家爲事.
不知夫穰侯方受命乎秦王, 塡
之內, 而投己乎黽塞之外.”
“임금의 왼쪽은 주후州侯가, 오른쪽은 하후夏侯가, 그리고 연輦 뒤에는 언릉군鄢陵君과 수릉군壽陵君이 따르면서 오로지 음란과 사치만 일삼으며 국정國政을 돌아보지 않으니 초나라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신臣은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여겨서이지, 감히 나라의 요상이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임금께서 그 네 신하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으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조趙나라로 피해서 그곳에 머무르면서 관망하겠습니다.”
그리고 5개월을 머물고 있는데 과연 진秦나라가 초나라의 언鄢‧영郢‧무巫‧상채上蔡‧진陳의 땅을 침입해 함락시켜 양왕은 눈물을 머금고 성양산城陽山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기사騎士로 하여금 조趙나라에 있는 장신을 모셔 오게 하니, 장신이 허락하였다.
“과인이 선생의 말을 듣지 않다가 지금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제가 듣건대 속담에 ‘토끼를 보고 사냥개를 돌아볼 정도면 아직 늦은 것이 아니요, 양羊을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저는 듣건대 옛날 상商의 탕湯 임금, 주周의 무왕武王은 1백 리의 좁은 땅으로 창업하였고, 하夏의 걸桀이나 은殷의 주紂는 천하를 다 가지고도 멸망하였습니다.
지금 초나라가 비록 작다고는 하나 절장보단絶長補短하면 오히려 수천 리는 될 것이니, 어찌 비단 1백 리 좁은 땅이라 하겠습니까?
여섯 개의 발과 네 날개로 천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내려다보아서는 모기 같은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쳐다보아서는 감로甘露를 받아 마시며 스스로 아무런 근심이 없다고 여기며 사람과는 아무런 다툴 일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오척동자五尺童子들이 실 끝에다가 단물을 발라서 네 길 높은 공중에서 잡아 끌어내리면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벌레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잠자리는 작은 경우이니, 참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래로는 흰 쌀알을 쪼아먹고 위로는 무성한 숲에 깃들어 날개를 치며 날아다니면서 스스로 아무런 근심도 없고 사람과는 다툴 일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공자公子 왕손王孫이 왼쪽에는 총을 끼고 오른쪽에는 총알을 들고 장차 열 길 높이에서 자기를 쏘아 목에 총알을 맞게 될 줄은 모릅니다.
낮에는 우거진 나무 위를 높이 날아다니다가 저녁에는 시고 짠 양념으로 조리되어 잠깐 사이에 공자 왕손의 손에 떨어지게 됩니다.
강해江海에 떠돌아다니며 큰 못을 뒤덮고 아래로 메기나 잉어로 배를 불리며 능형䔖衡을 씹어먹으며 여섯 깃을 퍼덕거리며, 청풍淸風을 타고 표요飄搖히 높이 날아, 스스로 아무런 근심 없이 사람들과는 다툼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활을 든 자가 바야흐로 화살과 흑궁黑弓을 수리하고 실이 매달린 화살을 만들어 1백 길 하늘 위로 쏘아 올리면 날카로운 살촉에 맞아 보이지 않는 가는 실에 끌려 맑은 바람을 가르며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낮에는 강하江河에서 놀다가 저녁 때에는 큰솥에 삶겨 조리되고 맙니다.
이 황곡도 작은 경우이며 채蔡나라 성후聖侯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쪽 고피高陂에서 놀고, 북쪽 무산巫山에 올라 즐기고, 여계茹谿의 물을 말에게 먹이고 상수湘水 물결 속의 물고기를 먹고, 왼쪽에는 어린 첩妾을 끼고 오른쪽에는 사랑하는 여자를 껴안고서 함께 고채高蔡의 땅을 달리면서 나라 일은 조금도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릇 자발子發이 선왕宣王의 명을 받들어 자기를 붉은 실로 묶어 선왕에게 바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채蔡 성후聖侯의 이야기도 작은 경우입니다.
오른쪽의 주후州侯, 왼쪽의 하후夏侯, 그리고 수레를 따르는 언릉군鄢陵君‧수릉군壽陵君은 국가의 봉록俸祿을 먹으면서 방부方府의 재화를 싣고 함께 운몽雲夢을 치달으며 천하天下 국가國家의 일은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후穰侯가 진왕秦王의 명을 받들고 민새黽塞의 안을 군대로 메우고 왕을 민새 밖으로 쫓아낼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는 이에 장신에게 집규執珪를 제수除授하고 양릉군陽陵君을 삼아 회북淮北 지역의 땅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