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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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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蘇秦爲趙合從, 說齊宣王曰:
“齊南有, 東有, 西有, 北有渤海, 此所謂四塞之國也.
齊地方二千里, 帶甲數十萬, 粟如丘山.
齊車之良, , 疾如錐矢, 戰如雷電, 解如風雨,
卽有軍役, 未嘗倍太山, 絶淸河, 涉渤海也.
臨淄之中七萬戶, 臣竊度之, , 三七二十一萬, 不待發於遠縣, 而臨淄之卒, 固以二十一萬矣.
臨淄甚富而實, 其民無不吹竽‧鼓瑟‧擊筑‧彈琴‧鬪鷄‧走犬‧者;
臨淄之途, 車轂擊, 人肩摩, 連衽成帷, 擧袂成幕, 揮汗成雨;
家敦而富, 志高而揚.
夫以大王之賢與齊之强, 天下不能當. 今乃西面事秦, 竊爲大王羞之.
且夫韓‧魏之所以畏秦者, 以與秦接界也.
兵出而相當, 不至十日, 而戰勝存亡之機決矣.
韓‧魏戰而勝秦, 則兵半折, 四境不守; 戰而不勝, 以亡隨其後.
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戰而輕爲之臣也.
今秦攻齊則不然,
倍韓‧魏之地, 之道, 徑之險,
車不得方軌, 馬不得並行, 百人守險, 千人不能過也.
秦雖欲深入, 則狼顧, 恐韓‧魏之議其後也.
是故, 高躍而不敢進,
則秦不能害齊, 亦已明矣.
夫不深料秦之不奈我何也, 而欲西面事秦, 是羣臣之計過也.
今無臣事秦之名, 而有强國之實,
臣固願大王之少留計.”
齊王曰:
“寡人不敏, 今詔之, 敬奉社稷以從.”


소진蘇秦나라와 합종을 위하여
소진蘇秦나라와의 합종을 위해 선왕宣王에게 유세하였다.
나라는 남쪽으로 태산太山이 있고, 동쪽으로 낭야琅邪가 있으며, 서쪽으로 청하淸河가 있고, 북쪽으로 발해渤海가 있으니, 이는 이른바 사새지국四塞之國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 영토는 2천 리, 병력은 수십 만, 양식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나라의 병거兵車는 뛰어나고 오가제五家制의 군사는 진격에는 화살처럼 빠르고 전투에는 번개같으며, 산개散開할 때에는 풍우처럼 신속합니다.
비록 전쟁이 있었다 해도 태산太山을 등지고 넘어오거나 청하淸河를 끊거나 발해渤海를 건너온 적군이 없었습니다.
도읍 임치臨淄는 7만 호나 되는데 제가 헤아려 보건대 한 집에 장정 3인 이하는 아닐 것이니, 장정만도 삼칠三七이십일二十一, 21만 명이나 되어 먼 에서 모집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임치의 사졸士卒만 21만 명이나 됩니다.
임치는 심히 부유하고 한 곳으로 백성들 누구 하나 취우吹竽고슬鼓瑟격축擊筑탄금彈琴투계鬪鷄주견走犬육박六博답국蹹踘 등의 놀이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또 임치의 거리는 번화하여 수레가 서로 부딪치고 길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닿아 걸을 수 없고, 옷깃이 이어져 휘장을 이루고, 소매를 들면 장막을 이루며, 땀을 뿌리면 비가 오듯 합니다.
이렇게 집집마다 후실厚實 부유富裕하며, 의지意志 양양揚揚합니다.
대왕의 현명하심과 제나라의 이런 부유함으로써 한다면 천하에 그 누구도 감히 당해낼 수가 없는데 지금 서쪽으로 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대왕의 수치라 여겨집니다.
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진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군대를 내어 진나라와 맞부딪쳐 봤자 열흘이 되지 않아 전승戰勝 존망存亡의 기틀이 결판나고 맙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이기자면 병사는 반이 꺾여 사경四境을 지키지 못하게 되며,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멸망이 뒤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위나라는 진나라와의 싸움을 어렵게 생각하고, 신하가 되는 것을 쉽게 여깁니다.
지금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함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후에는 한나라‧위나라 땅이 있고, 또한 나라의 양진陽晉의 길에 이르러 나라의 항보亢父의 험한 지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곳은 나란히 두 대의 수레가 지나갈 수가 없고, 말도 두 줄로 지나갈 수가 없는 곳이어서 1백 명만 요해처를 지켜도 1천 명이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비록 깊이 제나라 영토로 쳐들어오고 싶어도 뒤에서 습격당할까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한나라‧위나라가 뒤에서 자신들을 도모할까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여 공갈하며 날뛸 뿐, 감히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제나라에 해를 입힐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진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 보지 않고, 그저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시니 이는 군신群臣들의 잘못된 계책입니다.
그러니 이제 신이 진나라를 섬긴다는 명목을 없애고 강국의 실질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진실로 이 작은 계책을 대왕께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제왕齊王이 말하였다.
“과인이 불민不敏하나 지금 주군主君(蘇秦)께서 조왕趙王의 가르침으로 고해 주셨으니 사직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역주
역주1 126. 蘇秦爲趙合從 : 이 사실은 蘇秦이 처음 합종책으로 燕 文侯에게 허락을 받은 후, 다시 그의 부탁으로 趙 肅侯에게도 환영을 받는다. 이에 趙 肅侯는 蘇秦을 사절로 삼아 韓‧魏‧齊‧楚에 차례로 육국 합종의 성공을 기하는데, 소진이 그 부탁을 받고 활동한 내용이다. 《史記》 〈蘇秦列傳〉에도 실려 있다.
역주2 太山 : 山東省의 泰山.
역주3 琅邪 : 瑯琊라고도 쓴다. 지명‧산명, 지금의 山東省 諸城縣 동남.
역주4 淸河 : 濟水, 혹은 大淸河.
역주5 五家之兵 : 옛 齊 桓公 때 管仲이 정한 兵制를 말한다. 《史記》 〈齊太公世家〉 註 集解에서 《國語》를 인용하여 “관자가 五家를 軌로, 10궤를 里로, 4里를 連으로, 10連을 鄕으로 제정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6 下戶三男子 : 《史記》 〈蘇秦列傳〉에는 “호구마다 남자 셋 이하는 아니다.[不下戶三男子]”라고 되어 있다.
역주7 六博 : 六博은 옛날 도박 놀음의 일종. 《博經》에 “12棋를 사용하는데 6棋는 희고 6棋는 검다.”라고 하였다.
역주8 蹹踘 : 蹴鞠, 즉 축구를 겸한 練武 운동의 일종.
역주9 至闈(衛) : 闈는 衛의 誤字로 보이며, 《史記》 〈蘇秦列傳〉에는 過衛로 되어 있다.
역주10 陽晉 : 古地名. 춘추 때 衛나라, 전국 때는 魏나라 땅. 지금의 山東省 曹縣 북쪽.
역주11 亢父 : 齊나라 읍. 지금의 山東省 濟南市 남쪽에 옛터가 있다.
역주12 恫疑虛猲 : 두려워 불안하고 허세를 부려 공갈함
역주13 主君以趙王之敎 : 主君은 蘇秦을 가리키며 趙王은 肅侯이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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