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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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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子爲趙合從, 說曰:
“大王之地, 南有許‧鄢‧昆陽‧邵陵‧舞陽‧新郪; 東有‧沂‧黃‧煮棗‧海鹽‧無踈; 西有長城之界; 北有, 地方千里.
地名雖小, 然而, 曾無所芻牧牛馬之地.
人民之衆, 車馬之多, 日夜行不休已, 無以異於三軍之衆.
臣竊料之, 大王之國, 不下於楚.
然橫人謀王外交强虎狼之秦, 以侵天下, 卒有國患, 不被其禍.
夫挾强秦之勢, 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且魏, 天下之强國也; 大王, 天下之賢主也.
今乃有意西面而事秦, 稱東藩, , 臣竊爲大王媿之.
臣聞越王勾踐以散卒三千, 禽夫差於; 武王卒三千人, 革車三百乘, 斬紂於牧之野. 豈其士卒衆哉?
誠能振其威也.
今竊聞大王之卒, 武力二十餘萬, 蒼頭萬, 奮擊二十萬, 廝徒十萬, 車六百乘, 騎五千疋.
此其過越王勾踐‧武王遠矣!
今乃劫於辟臣之說, 而欲臣事秦.
夫事秦必割地效質, 故兵未用而國已虧矣.
凡羣臣之言事秦者, 皆姦臣, 非忠臣也.
夫爲人臣, 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偸取一旦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 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以求割地, 願大王之熟察之也.
周書曰: ‘緜緜不絶, 縵縵奈何?
毫毛不拔, 將成斧柯.’
前慮不定, 後有大患, 將奈之何?
大王誠能聽臣, 六國從親, 專心並力, 則必無强秦之患.
故敝邑趙王使使臣獻愚計, 奉明約, 在大王詔之.”
魏王曰:
“寡人不肖, 未嘗得聞明敎.
今主君以之詔詔之, 敬以國從.”


297. 소자蘇子나라를 위하여 위왕魏王에게 합종合從을 유세하다
소진蘇秦나라를 위해 합종合從하려고 위왕魏王에게 유세하였다.
“대왕의 국토는 남쪽으로 홍구鴻溝여남汝南곤양昆陽소릉邵陵무양舞陽신처新郪가 있고, 동쪽으로는 자조煮棗해염海鹽무소無踈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장성長城의 경계에 닿고, 북으로는 하외河外산조酸棗가 있어 땅이 천리가 됩니다.
이 땅이 명의는 비록 작으나 모두 집들과 전지田地로 목장으로 쓰는 땅조차 없습니다.
백성과 거마車馬가 많아 밤낮 없이 왕래가 그칠 때가 없어 삼군三軍의 많은 군사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제 생각에 대왕의 나라는 나라에 못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자들이 대왕으로 하여금 호랑과 같은 강한 나라와 외교를 갖고 천하를 침범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마침내 나라는 환난에 빠져도 그 자신들은 화를 입지 않습니다.
그들은 밖으로 진나라의 강성함을 끼고 안으로 자신의 임금에게 겁을 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게다가 나라는 천하의 강국이요, 대왕은 천하의 현주賢主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기며 스스로 진나라의 동쪽 번속藩屬이라 칭하며 진나라를 위해 제궁帝宮을 짓고 관대冠帶를 받고 봄 가을로 진나라의 제사를 받들도록 공물貢物을 바치고 있으니, 저는 대왕을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저는 듣건대 월왕越王 구천勾踐산졸散卒 3천으로 오왕吳王 부차夫差간수干遂에서 사로잡았고, 무왕武王은 병졸 3천과 혁거革車 3백 승으로 목야牧野에서 베었다고 하니, 어찌 사졸이 많아야만 되겠습니까?
그것은 실로 그들의 위세를 잘 진작시킨 때문일 뿐입니다.
지금 제가 듣기로 대왕의 병력은 무사武士가 20여 만, 창두蒼頭가 20만, 분격奮擊이 20만, 시도廝徒가 10만, 병거는 6백 승, 기마는 5천 필이나 됩니다.
이 정도면 월왕 구천이나 무왕의 병력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측근 신하들의 말에 겁을 먹고 나라의 신하가 되어 섬기겠다고 하십니다.
무릇 진나라를 섬기려면 반드시 땅을 떼어 주고 인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군사를 써 보기도 전에 나라는 이미 무너지고 맙니다.
신하들 중에 진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간신들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더구나 남의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의 땅을 떼어 외교하기를 바라 구차하게 하루아침에 공만 세우면 그만이요 그 후환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라를 파괴하여 자기 집안을 성취시키려는 자들, 밖으로 강한 진의 세력을 끼고 안으로 그 임금을 겁주어 땅 떼어주기를 요구하는 자들,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런 자들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주서周書》에 ‘면면히 이어져 끊어지지 않고 자꾸 번져 나가니 어쩌면 좋은가?
티끌처럼 작다고 뽑지 않고 두었다가 장차 도끼자루만큼이나 커지고 말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고려해서 확정짓지 않으면 뒤에 틀림없이 큰 환란이 따를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장차 어찌 하시려고 하십니까?
대왕께서 실로 제 말을 들으셔서 육국六國종친從親해서 힘을 합하기에 전심하신다면 진나라에 대한 걱정은 틀림없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희 나라 조왕趙王께서 저를 보내어 어리석은 계책을 여쭙고 틀림없는 약속을 받들게 하였사오니, 대왕께서 을 내려 주시기기에 달려 있습니다.”
위왕魏王이 말하였다.
“과인은 불초하여 이토록 밝은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하였소.
지금 그대가 조왕의 명령으로서 나를 찾아와 알려 주시니 공경히 나라로써 따르겠소.”


역주
역주1 : 이 사건은 《史記》 〈蘇秦列傳〉의 기록과 같다. 시기는 B.C.333년이다.
역주2 魏王 : 魏 襄王, 惠王의 아들, 이름은 嗣.
역주3 鴻溝……新郪 : 鴻溝는 물 이름. 河南省의 賈魯河. 陳은 淮陽, 汝南은 지금의 汝南縣. 許는 許昌縣. 鄢은 지금의 鄢陵縣, 昆陽은 지금의 葉縣, 邵陵은 지금의 郾城縣, 舞陽은 지금의 方城縣, 新郪는 郪丘라고도 하며, 安徽省 太和縣. 新郪 이외에는 모두 지금의 河南省에 있는 地名.
역주4 [有] : 黃丕烈의 說에 의하여 ‘有’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5 淮‧穎‧沂‧黃‧無踈 : 穎은 潁의 오자이다. 河名이겠으나 《史記》 正義에는 淮陽, 潁川을 두 개의 군 이름으로 풀이하고 있다.(《史記》에는 沂黃이 없다) 이렇게 되면 위와 중복된다.(즉 陳‧鄢. 許는 潁川郡에 속한다) 煮棗는 지금의 山東省 荷澤縣, 海鹽, 無踈(《史記》에는 海鹽은 없고 無疎는 無胥로 되어 있다)는 둘 다 魏의 地名이다.
역주6 穎[潁] : 《史記》 〈蘇秦列傳〉에 의하여 ‘潁’으로 고쳤다.
역주7 河外‧卷‧衍‧燕‧酸棗 : 모두 지금의 河南省에 있는 魏地. 河外는 河南의 黃河以南 땅, 卷은 原武縣, 衍은 鄭縣, 燕과 酸棗은 南燕(周代 小國名)의 酸棗邑.
역주8 廬田廡舍 : 집들과 田地. 《史記》에는 ‘田舍廬廡之數’라 하였다.
역주9 築帝宮……祠春秋 : 築帝宮은 秦王의 巡狩를 위해 行宮을 짓는다는 뜻이며, 受冠帶는 制度, 法令을 秦으로부터 받아 시행함을 말한다. 그리고 祠春秋는 봄‧가을로 秦의 祭祝을 위해 貢物을 바침을 뜻한다.
역주10 干遂 : 干遂는 干隧라고도 쓴다. 이 이야기는 〈秦策〉 30 참조.
역주11 二千(十) : 원문 ‘千’은 ‘十’의 誤字.
역주12 趙王 : 趙의 肅侯. 맨 처음 蘇秦을 인정하여 合從을 펴기 시작했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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