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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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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韓‧魏共攻燕,
燕使太子請救於楚. 楚王使景陽將而救之.
暮舍, 使左右司馬各營壁地,
已, 表. 景陽怒曰:
“女所營者, 水皆至滅表.
此焉可以舍?”
乃令徙.
明日大雨, 山水大出, 所營者, 水皆滅表.
軍吏乃服.
於是遂不救燕, 而攻魏, 取之以與宋.
三國懼, 乃罷兵.
魏軍其西, 齊軍其東, 楚軍欲還不可得也.
景陽乃開, 晝以車騎, 暮以燭見, 通使於魏.
齊師怪之, 以爲燕‧楚與魏謀之, 乃引兵而去.
齊兵已去, 魏失其與國, 無與公擊楚,
乃夜遁. 楚師乃還.


471. 나라, 나라, 나라가 함께 나라를 공격하다
세 나라가 함께 나라를 공격하였다.
연나라는 태자太子로 하여금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니, 초왕楚王(경양왕頃襄王)은 경양景陽을 장군으로 삼아 연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저녁때가 되어 숙영宿營을 하게 되자, 경양은 좌우左右 사마司馬에게 각각 숙영의 진지를 구축하게 하였다.
진지 구축이 끝나고 각각 부대별로 표지까지 꽂았는데 경양이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구축한 숙영 진지는 물이 들어차면 그 표지까지 모두 씻겨나가고 말겠다.
어찌 여기에서 숙영하겠는가?”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명령하였다.
이튿날 과연 큰 비가 내려 산골짜기의 물이 크게 불어, 처음 만들어 놓았던 진지는 그 표지까지 물에 씻겨 나가고 말았다.
군리軍吏들은 모두 그에게 탄복하였다.
경양은 드디어 연나라를 구하러 가면서 직접 연나라로 가지 않고 나라의 옹구雝丘 땅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여 나라에 주었다.
그러자 세 나라는 두렵게 여겨 군사를 하였다.
위나라 군사는 서쪽에, 제나라 군사는 동쪽에 있어서 초나라 군사는 회군回軍하려고 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경양은 이에 서화문西和門을 열고 낮에는 수레와 기병騎兵으로, 밤에는 등불을 이용하여 나라와 사자使者통래通來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이를 괴이히 여겨 연나라와 초나라가 위나라와 더불어 자신에게 불리한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여기고 군대를 이끌고 철수해 버렸다.
제나라 병사들이 떠나자 위나라는 자신의 동맹국을 잃고 더 이상 초나라를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위나라도 밤에 몰래 도망해 초나라 군대는 간신히 귀환할 수 있었다.


역주
역주1 : 이 장의 사실은 田文(孟嘗君)이 函谷關 戰爭 때에 연합군이 秦나라와 강화를 맺은 후 齊‧韓‧魏가 공동으로 燕나라를 친 사건으로 여겨진다. 시간은 대체로 B.C.296년쯤이다.
역주2 稙(植) : 鮑彪本에 의하여 ‘植’으로 고쳤다.
역주3 雝丘 : 雍丘. 지금의 河南省 杞縣.
역주4 西和門 : 서쪽의 軍門인 듯하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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