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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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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5. 정곽군靖郭君제모변齊貌辨에게 잘 해주다
靖郭君善.
정곽군靖郭君이 식객 제모변齊貌辨을 잘 대해 주었다.
齊貌辨之爲人也多疵, 門人弗說.
제모변은 사람됨이 흠이 많아 문인門人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以証靖郭君, 靖郭君不聽, 士尉辭而去.
사위士尉가 정곽군에게 하였으나 정곽군이 들어주지 않자 사위는 떠나버리고 말았다.
又竊以諫, 靖郭君大怒曰:
맹상군孟嘗君(田文)이 가만히 간하니, 정곽군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剗而類, 破吾家. 苟可慊齊貌辨者, 吾無辭爲之.”
“너희들을 다 없애고 우리 집이 결단나는 한이 있더라도 참으로 제모변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사양하지 않겠다.”
於是舍之, 令長子御, 旦暮進食.
그리고는 이에 제모변을 상사上舍에 거처하게 하면서 장자長子로 하여금 시중 들게 하고 아침저녁 식사까지 갖다 바치게 하였다.
數年, 威王薨, 宣王立.
몇 년이 흘러 위왕威王이 죽고 선왕宣王이 즉위하였다.
靖郭君之交, 大不善於宣王, 辭而之薛, 與齊貌辨俱留.
정곽군은 평소 선왕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으므로 사직하고 로 돌아가, 제모변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無幾何, 齊貌辨辭而行, 請見宣王.
얼마 지나지 않아 제모변이 선왕을 만나 보러 가겠다며 하직 인사를 하러 왔다.
靖郭君曰:
정곽군이 말하였다.
“王之不說嬰甚,
“왕이 나를 미워하는 정도가 아주 심하오.
公往必得死焉.”
그대가 가면 틀림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齊貌辨曰:
제모변이 말하였다.
“固不求生也, 請必行.”
“본디 살기를 바라지 않으니, 청컨대 반드시 가겠습니다.”
靖郭君不能止.
정곽군은 제지할 수가 없었다.
齊貌辨行至齊, 宣王聞之, 藏怒以待之.
제모변이 제 땅에 이르자 선왕이 이 소식을 듣고 노여움을 품은 채 그를 맞이하였다.
齊貌辨見宣王, 王曰:
제모변이 선왕을 뵙자 왕이 말하였다.
“子, 靖郭君之所聽愛夫!”
“그대는 정곽군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아끼는 인물이라던데!”
齊貌辨曰:
제모변이 말하였다.
“愛則有之,
“저를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聽則無有.
그러나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王之方爲太子之時, 辨謂靖郭君曰:太子相不仁,
대왕께서 태자가 되셨을 때 제가 정곽군에게 ‘태자의 관상이 어질지 못합니다.
過頤豕視, 若是者信反.
턱이 너무 크고 돼지눈처럼 보이니, 이런 얼굴은 신의를 배반합니다.
不若廢太子, 更立衛姬嬰兒.
태자를 폐위시키고 다시 위희衛姬의 어린 아들 교사郊師를 세우니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靖郭君泣而曰:不可,
그러자 정곽군께서는 울면서 ‘안 되오.
吾不忍也.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오’라고 하였습니다.
若聽辨而爲之, 必無今日之患也.
만약 제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같은 환난은 틀림없이 없었을 것입니다.
此爲一.
이것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
至於薛, 請以數倍之地易薛,
땅에 이르자 나라 소양昭陽이 몇 배의 땅으로 설 땅과 바꾸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辨又曰:必聽之.
저는 그때 ‘그 제의를 반드시 받아들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靖郭君曰:受薛於先王, 雖惡於後王, 吾獨謂先王何乎!
그러자 정곽군께서 ‘설 땅은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비록 후왕後王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장차 선왕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 吾豈可以先王之廟與楚乎! 又不肯聽辨.
게다가 선왕의 사당이 바로 이곳 에 있는데 내 어찌 선왕의 사당을 나라에 넘겨 줄 수 있겠소!’라고 하면서 또다시 저의 의견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此爲二.”
이것이 그 두 번째 예입니다.”
宣王大息, 動於顔色, 曰:
선왕宣王은 크게 탄식하면서 얼굴색이 흔들리며 말하였다.
“靖郭君之於寡人一至此乎!
“정곽군이 과인에 대하여 한결같이 이와 같았구려!
寡人少, 殊不知此.
과인이 어려서 몰랐구려.
客肯爲寡人來靖郭君乎?”
께서 과인을 위하여 정곽군을 불러올 수 있겠소?”
齊貌辨對曰:
제모변이 말하였다.
“敬諾.”
“말씀대로 준행하겠습니다.”
靖郭君衣威王之衣冠, 其劍,
정곽군은 위왕威王이 내려 준 옷을 입고 위왕이 준 검을 차고 나섰다.
宣王自迎靖郭君於郊, 望之而泣.
선왕은 스스로 교외까지 나와서 정곽군을 맞으며 멀리서 보고 눈물을 흘렸다.
靖郭君至, 因請相之.
정곽군이 이르자 인하여 재상자리를 맡아 줄 것을 청하였다.
靖郭君辭, 不得已而受.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어쩔 수 없어 부득이 수락하고 말았다.
七日, 謝病强辭.
그러나 7일 만에 병을 핑계로 굳게 사양하였다.
靖郭君辭不得, 三日而聽.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고 다시 사흘 만에야 겨우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當是時, 靖郭君可謂能自知人矣!
당시에 정곽군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고 하겠다.
能自知人, 故人非之不爲沮. 此齊貌辨之所以外生樂患趣難者也.
능히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비방에도 전혀 꺾일 줄 몰랐던 것이며, 그래서 제모변이 생사를 도외시하고 기꺼이 환난에 나선 것이다.
역주
역주1 115. 靖郭君善齊貌辨 : 이 사건은 齊 威王이 죽은 B.C.320년, 혹은 이듬해의 일이다. 한편 이 장의 기록은 《呂氏春秋》 〈知士〉篇에도 실려 있다.
역주2 齊貌辨 : 靖郭君 田嬰의 식객. 《呂氏春秋》 〈知士〉篇에는 劑貌辨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士尉 : 靖郭君 田嬰의 식객.
역주4 孟嘗君 : 田文. 田嬰(靖郭君)의 아들. 戰國四公子 중의 하나. 《史記》 〈孟嘗君列傳〉 참조.
역주5 上舍 : 제일 좋은 집. 옛날 식객을 모실 때 上舍‧中舍‧下舍로 그 숙소를 나누어 구분시켰다. 上舍는 공로와 덕이 있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들이 대접받는 숙소였다.
역주6 郊師 : 威王과 衛姬 사이에 난 왕자. 宣王의 庶弟.
역주7 昭陽 : 楚나라 장수. 058‧131‧171‧205장 참조.
역주8 先王之廟在薛 : 齊 威王 때부터 사당을 薛 땅에 세웠다.
역주9 원주] 舞(帶) : 劉敞本에는 帶로 되어 있어 이를 따랐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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