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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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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 與之趙, 趙以爲.
秦下甲而攻趙.
司空馬說曰:
“文信侯相秦, 臣事之, 爲尙書, 習秦事.
今大王使守小官, 習趙事.
請爲大王設秦‧趙之戰, 而親觀其孰勝?
趙孰與秦大?”
曰:
“不如.”
“民孰與之衆?”
曰:
“不如.”
“金錢粟孰與之富?”
曰:
“弗如.”
“國孰與之治?”
曰:
“不如.”
“相孰與之賢?”
曰:
“不如.”
“將孰與之武?”
曰:
“不如.”
“律令孰與之明?”
曰:
“不如.”
司空馬曰:
“然則大王之國, 百擧而無及秦者, 大王之國亡.”
趙王曰:
“卿不遠趙, 而悉敎以國事,
願於因計.”
司空馬曰:
“大王裂趙之半以賂秦,
秦不接刃而得趙之半, 秦必悅.
內惡趙之守, 外恐諸侯之救, 秦必受之.
秦受地而郄(却)兵, 趙守半國以自存.
秦銜賂以自强, 山東必恐;
亡趙自危, 諸侯必懼.
懼而相救, 則從事可成.
臣請大王約從.
從事成, 則是大王名亡趙之半, 實得山東以敵秦,
秦不足亡.”
趙王曰:
“前日秦下甲攻趙, 趙賂以,
地削兵弱, 卒不免秦患.
今又割趙之半以强秦, 力不能自存, 因以亡矣.
願卿之更計.”
司空馬曰:
“臣少爲秦, 以官長而守小官,
未嘗爲兵首, 請爲大王悉趙兵以遇.”
趙王不能將.
司空馬曰:
“臣效愚計, 大王不用,
是臣無以事大王, 願自請.”
司空馬去趙, 渡平原.
勞而問:
“秦兵下趙, 上客從趙來, 趙事何如?”
司空馬言其爲趙王計而弗用, 趙必亡.
平原令曰:
“以上客料之, 趙何時亡?”
司空馬曰:
“趙將武安君, 期年而亡; 若殺武安君, 不過半年.
趙王之臣有者, 以曲合於趙王, 其交甚親,
其爲人疾賢妬功臣.
今國危亡, 王必用其言, 武安君必死.”
韓倉果惡之, 王使人代.
武安君至, 使韓倉數之曰:
“將軍戰勝, 王觴將軍. 將軍爲壽於前而捍匕首,
當死.”
武安君曰:
“繓病鉤, 身大臂短, 不能及地,
起居不敬, 恐懼死罪於前, 故使工人爲木材以接手.
上若不信, 繓請以出示.”
出之袖中, 以示韓倉, 狀如振, 纏之以布.
“願公入明之.”
韓倉曰:
“受命於王, 賜將軍死, 不赦.
臣不敢言.”
武安君北面再拜賜死,
縮劍將自誅, 乃曰:
“人臣不得自殺宮中.”
, 趣(趨)甚疾, 出也.
右擧劍將自誅, 臂短不能及, 銜劍徵之於柱以自刺.
武安君死. 五月.
平原令見諸公, 必爲言之曰:
“嗟嗞乎, 司空馬!”
又以爲:
司空馬逐於秦, 非不知也; 去趙, 非不肖也.
趙去司空馬而國亡.
國亡者, 非無賢人, 不能用也.


문신후文信侯가 도망가다
문신후文信侯가 도망하자 사공마司空馬나라로 들어가니, 나라는 그를 수상守相으로 삼았다.
그러자 진나라가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공격해 왔다.
사공마가 조왕趙王에게 말하였다.
“문신후가 진나라의 재상이었을 때, 저는 그를 모셔 상서尙書를 지냈기 때문에 진나라 일에 대해서는 익히 압니다.
지금 대왕께서 저에게 작은 벼슬을 주셔서 조나라에 대해서도 익히 알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대왕께서는 가령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운다면 친히 보시기에 어느 쪽이 이기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조나라와 진나라는 어느 쪽이 강대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백성은 어느 쪽이 많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돈이나 식량은 어느 쪽이 부유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나라는 어느 쪽이 더 잘 다스려졌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어느 나라 재상이 더 현명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장군들은 어느 쪽이 더 무용武勇이 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율령律令은 어느 쪽이 더 명확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우리가 못하오.”
사공마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대왕의 나라는 1백 가지를 들어도 진나라에 미치지 못하니 대왕께서는 망하고 맙니다.”
조왕이 말하였다.
은 우리 조나라를 멀다 아니하시고 오셔서 국사國事에 대하여 모두 가르쳐 주셨습니다.
원컨대 계책을 듣고자 합니다.”
사공마가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조나라 땅 반을 잘라 진나라에게 뇌물로 바치십시오.
진나라는 싸움도 없이 조나라의 반을 얻게 되어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은 안으로는 조나라에 대한 수비에 골머리를 앓아 왔고, 밖으로는 제후들이 조나라를 도울까 걱정하고 있던 터이므로 진나라는 틀림없이 받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땅을 받고 군대를 퇴각시키면 조나라는 그 반이나마 잘 지켜 스스로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진나라가 그 땅의 뇌물을 받아 스스로 강성해지면 산동山東의 각 나라들은 틀림없이 진나라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조나라가 망하면 제후들은 틀림없이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제후들이 두려워하면서 서로 구해주게 되면 약종約從(合從)의 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청하건대 대왕께서는 약종約從을 서두르십시오.
그 약종이 이루어지면 대왕께서는 명분상으로는 나라의 반을 잃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산동 여러 나라의 반진反秦 세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진나라는 조나라를 멸망시키기에 부족합니다.”
조왕이 말하였다.
“지난번 진나라가 군사를 보내어 우리를 공격해 왔을 때, 우리 조나라는 하간河間의 12개 현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땅이 깎이고 병력이 약해졌지만 끝내 진나라의 환난은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조나라의 반을 떼어 진나라를 강하게 해 준다면 우리 힘으로는 더 이상 스스로 보존할 수 없게 되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원컨대 그대는 다른 계책을 일러주십시오.”
사공마가 말하였다.
“저는 어려서 진나라의 도필리刀筆吏를 지냈으며, 그 후 관장官長의 배려로 겨우 소관小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맡은 우두머리는 해 보지 못하였으니, 청컨대 대왕을 대신해서 조나라 군사를 모두 거느리고 나가 싸우게 해 주십시오.”
조왕趙王은 그를 장군將軍으로 삼을 수가 없었다.
사공마가 말하였다.
“저의 어리석은 계책을 다 바쳤으나 대왕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제가 더 이상 대왕을 섬길 수 없으니, 원컨대 스스로 돌아가기를 청합니다.”
사공마가 조나라를 떠나 평원진平原津을 건너게 되었다.
평원진平原津진령津令 곽유郭遺라는 자가 사공마를 위로하면서 물었다.
“진나라 군대가 조나라로 내려오고 있다던데 상객上客께서는 조나라로부터 오시니 조나라 일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사공마는 자신이 조왕에게 계책을 일러주었으나 받아 주지 않았으니, 조나라는 반드시 망하리라고 말해 주었다.
평원진의 진령이 말하였다.
상객上客께서 헤아리건대 조나라는 언제 망하리라고 보십니까?”
사공마가 말하였다.
나라가 무안군武安君을 장군으로 삼으면 1년 정도는 버틴 다음 망할 것이요, 만약 무안군을 죽이면 반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또 조왕의 신하 중에 한창韓倉이란 자가 있는데 아첨으로 조왕과 의기투합되어 둘 사이가 아주 친밀합니다.
그 사람됨이 현인을 미워하고, 공신功臣을 질투합니다.
지금 나라가 위망危亡한 데도 왕은 틀림없이 그의 말만 듣고 있으니, 무안군은 틀림없이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한창韓倉은 과연 무안군을 미워하여 왕은 무안군을 교대시켰다.
무안군이 이르자 왕은 한창을 시켜 죄를 따지게 하였다.
“장군이 싸움에 이겨 왕이 축배를 내릴 때에 임금 앞에서 축수祝壽를 하면서 비수匕首를 그대로 차고 있었소.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오.”
무안군이 말하였다.
“나 은 팔이 굽는 병을 앓은 데다가 키는 크고 팔이 짧아 를 행할 때 손이 땅에 닿지 않소.
그래서 서거나 앉는 행동이 불경不敬스러워 임금 앞에서 사죄死罪를 지을까 염려되어 장인匠人을 시켜 나무로 의수義手를 만들어 붙이고 다니고 있소.
임금께서 못 믿으시면 제가 꺼내 보여드리겠소.”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꺼내어 한창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모습이 움직이는 문 말뚝 같은데 헝겊이 칭칭 감겨 있었다.
“원컨대 그대는 입조入朝하거든 임금께 사실대로 밝혀 주시오!”
한창이 말하였다.
“왕의 명을 받고 장군에게 사형을 내리기 위해 왔으니, 사면은 불가하오.
나는 감히 그러한 말을 할 수 없소.”
무안군은 북쪽을 향해 재배再拜하고 사형을 받아들였다.
칼을 빼어 자살하면서 말하였다.
“신하가 궁중에서 자살할 수는 없다.”
그리고는 사공마문司空馬門을 지나서 재빨리 달려 숙문諔門을 나왔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찔러 죽으려 하였으나 팔이 짧아 미치지 못하자 칼을 물고 기둥으로 내달아 스스로 목을 찔렀다.
무안군이 죽고 5개월만에 조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평원진의 은 여러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말하였다.
“아, 사공마여!”
또 이렇게 말하였다.
“사공마가 나라에서 쫓겨난 것은 지혜롭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며, 나라를 떠난 것은 불초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조나라는 사공마를 떠나 보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나라가 망한 것은 현자賢者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현자를 등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109. 文信侯出走 : 이 장의 사건은 武安君 李牧(繓)이 죽은 B.C.229년, 그리고 趙나라가 망한 B.C.228년쯤의 일로 여겨진다.
역주2 文信侯出走 : 《史記》 〈呂不韋列傳〉에는 이런 기록이 없으며, 다만 〈六國年表〉에 呂不韋가 재상직에서 물러난 2년(B.C.236)에 자신의 封地인 河南으로 쫓겨난 것으로만 되어 있다. 따라서 다음에 나오는 본문의 與자를 吳師道와 黃丕烈은 衍文으로 보아 “文信侯가 쫓겨나자 司空馬는 趙나라로 갔다.” 즉 司空馬가 국내 사정상 자신이 모시던 呂不韋가 위험해지자 국외로 도망친 것으로 보았는데, 이를 따랐다.
역주3 司空馬 : 秦나라 여불위 밑에서 尙書 벼슬을 하다가 趙나라에 갔던 인물로 보인다.
역주4 守相 : 守는 代理의 뜻. 鮑彪 註에 “守는 假官이다.”라고 하였다. 相은 재상이나 相國이 아니라 아래 글에서 보면 어떤 小官인 듯하다. 아마 《論語》 〈先進〉에 나오는 小相의 相으로 보인다.
역주5 趙王 : 趙나라 末王인 幽王. 幽繆王이라고도 쓰며, 이름은 遷. B.C.228년에 죽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趙 悼襄王 때의 일로 보고 있다.
역주6 河間十二縣 : 이 사건은 108장 참조.
역주7 刀筆 : 문서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 刀筆吏. 어떤 本에는 奉筆로 되어 있다.
역주8 平原津 : 지금의 山東省 平原縣의 남쪽에 있던 나루. 당시 趙나라 땅이었다.
역주9 郭遺 : 人名. 平原津의 令.
역주10 韓倉 : 趙王의 측근 신하.
역주11 振㧢(梱) : 㧢은 梱의 오기로 보인다.
역주12 遇(過)司空馬門 : 劉敞本과 高誘의 註에는 遇가 過로, 司空馬門이 司馬門으로 되어 있다. 司馬門은 궁궐의 外門. 대본대로 하면 “司空馬를 門에서 만났다.”는 뜻이 되며, 高誘의 註로 하면 “사마문을 지나서”의 뜻이 된다.
역주13 諔門 : 未詳. 一說에는 誄門의 誤라고 한다. 誄門은 棘門으로 가시를 꽂아 만든 궁궐문.
역주14 趙亡 : 여기서는 趙 幽王이 포로로 잡힌 것을 말하며, 趙나라는 公子 嘉가 自立하여 代王이 되어 6년 후에 망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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