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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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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昭王收破燕後卽位, 卑身厚幣, 以招賢者, 欲將以報讎.
故往見曰:
“齊因孤國之亂, 而襲破燕.
孤極知燕小力少, 不足以報.
然得賢士與共國, 以雪先王之恥, 孤之願也.
敢問以國報讎者奈何?”
郭隗先生對曰:
“帝者與師處, 王者與友處, 霸者與臣處, 亡國與役處.
詘指而事之, 北面而受學, 則百己者至;
先趨而後息, 先問而後嘿, 則十己者至;
人趨己趨, 則若己者至;
馮几據杖, 眄視指使, 則廝役之人至;
若恣睢奮擊, 呴籍叱咄, 則徒隷之人至矣.
此古服道致士之法也.
王誠博選國中之賢者, 而朝其門下,
天下聞王朝其賢臣, 天下之士必趨於燕矣.”
昭王曰:
“寡人將誰朝而可?”
郭隗先生曰:
“臣聞古之君人, 有以千金求千里馬者, 三年不能得.
涓人言於君曰: ‘請求之.’
君遣之. 三月得千里馬, 馬已死, 買其首五百金, 反以報君.
君大怒曰: ‘所求者生馬, 安事死馬而捐五百金?’ 涓人對曰: ‘死馬且買之五百金, 況生馬乎?
天下必以王爲能市馬, 馬今至矣.’ 於是不能期年, 千馬之馬至者三.
今王誠欲致士, 先從隗始;
隗且見事, 況賢於隗者乎?
豈遠千里哉?”
於是昭王爲隗築宮而師之.
自魏往, 自齊往, 自趙往, 士爭湊燕.
燕王弔死問生, 與百姓同其甘苦. , 燕國殷富, 士卒樂佚輕戰.
於是遂以樂毅爲上將軍, 與秦‧楚‧三晉合謀以伐齊.
齊兵敗, 於外.
燕兵獨追, 北入至, 盡取齊寶, 燒其宮室宗廟. 齊城之不下者, 唯獨.


453. 소왕昭王이 파괴된 연나라를 수습하고 즉위하다
소왕昭王이 다 망한 연나라를 다시 수습한 후 즉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후한 예물을 주어 어진 자를 초빙하여 장차 나라에게 당하였던 수모를 갚고자 하였다.
왕은 우선 곽외郭隗 선생을 찾아가 뵙고 말하였다.
“제나라가 저희 나라 내란을 틈타 침입하여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 연나라는 작고 힘이 모자라 복수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사賢士를 모아들여 나라를 함께 일으켜 선왕의 치욕을 씻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감히 묻습니다.”
곽외 선생이 대답하였다.
제왕帝王은 스승과 함께 처하며, 왕자王者는 친우와 함께 처하고, 패자霸者는 신하와 함께 처하며 나라를 망칠 자는 역부役夫들과 함께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굽혀 남을 모시고 북면北面하여 학문을 배우면 자기보다 1백 배 나은 자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다음, 먼저 달려 나와 일하고 나중에 쉬며, 먼저 묻되 나중에 아는 척하면 자신보다 열 배 나은 자가 찾아옵니다.
남이 달려나가 일할 때 나도 달려나가 일하면 자기와 같은 자가 찾아옵니다.
의자에 앉아 지팡이에 기대어 거드름을 피우고 눈을 부라리면서 일만 시키면 마구간 잡역부가 찾아오게 됩니다.
방자하게 굴며 눈을 부라리며 때리고 꾸짖기만 할 줄 아는 자에게는 노예들이나 겨우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상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있는 선비를 모으는 방법입니다.
왕께서 진실로 국중의 현자를 널리 뽑으려거든 먼저 그 문하에 몸을 굽혀 찾아가십시오.
천하가 왕이 그렇게 겸손히 어진 자를 구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천하의 선비들이 틀림없이 우리 연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소왕이 말하였다.
“그럼 과인이 우선 먼저 누구를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까?”
곽외가 말하였다.
“제가 옛날 얘기를 하나 하지요. 옛날 어떤 임금이 1천 금으로 천리마를 구하려 하였지만 3년이 되도록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궁중 청소꾼 하나가 임금에게 나타나 ‘청컨대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그를 보냈더니 과연 석 달 만에 천리마를 구하여 왔으나 죽은 말인데도 그 자는 5백 금에 말머리를 사서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내가 구하는 것은 산 말인데, 죽은 말을 그것도 어찌 5백 금이나 주고 사왔느냐?’ 하니, 그 청소꾼은 ‘죽은 말도 5백 금이나 주고 사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말이야 어떻겠습니까?
천하가 반드시 대왕은 말을 살 줄 아는 분이라 여기고 곧 좋은 말이 모여들 테니 두고 보십시오.’라고 하였는데 과연 1년이 넘지 않아 천리마가 3필이나 이르렀습니다.
지금 왕께서 진실로 선비를 모으고 싶거든 저로부터 시작하십시오.
저 같은 자도 섬김을 받는다면 하물며 저보다 어진 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찌 1천 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이에 소왕은 곽외 선생을 위해 집을 지어 주고 스승으로 모셨다.
그로부터 과연 악의樂毅나라에서, 추연鄒衍나라에서, 극신劇辛나라에서 왔으며 숱한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연왕은 죽은 자를 조위弔慰하고 산 자를 문안하는 일을 철저히 하며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한 28년 만에 나라는 부강해지고 군대는 편안하면서도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연나라는 악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나라‧나라 및 삼진三晉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토벌하였다.
제나라 군사가 대패하여 민왕閔王은 도망하였다.
연나라는 홀로 패병을 추격하여 제나라의 서울 임치臨淄를 점령해서 나라의 보물을 탈취하고 궁전과 종묘를 불살라 버리니, 제나라 들 중에 무너지지 않은 곳은 다만 즉묵卽墨 두 곳뿐이었다.


역주
역주1 : 이 장의 사실은 《史記》 〈燕召公世家〉에도 실려 있으며 〈樂毅列傳〉에도 실려 있으나 매우 간략하며 특히 千里馬 고사는 싣지 않고 있다. 이 뒤의 사건은 160장으로 이어진다.
역주2 郭隗先生 : 燕人. 昭王을 도왔던 인물.
역주3 樂毅 : 魏將 樂羊의 후예. 燕의 장수가 되어 齊를 쳤다. 그 공으로 昌國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다시 趙로 도망하여 望諸君에 봉해졌다. 《史記》 〈樂毅田單列傳〉 참조.
역주4 鄒衍 : 齊나라 臨淄人, 燕 昭王이 집을 지어 주고 스승으로 모셨다. 뒤에 惠王이 참소를 들어 이를 옥에 가두자 여름에 서리가 내리는 異變이 있었다. 陰陽家, 鄒는 騶로도 쓴다.
역주5 劇辛 : 趙人. 燕에 이르러 昭王을 도왔다.
역주6 二十八年 : 燕 昭王 28년은 곧 周 赧王 31년(B.C.284년).
역주7 閔王出走 : 湣王은 燕과의 싸움에 70여 성을 잃고 도망하던 중 衛‧魯‧鄒 등 소국에 무례하게 굴어 들어가기를 거절당해 齊의 동쪽 莒城에 들어가 守戰하였다.
역주8 臨淄 : 齊나라 수도. 지금의 山東省 淄博市 臨淄區 齊都鎭.
역주9 莒‧卽墨 : 모두 산동성에 있는 제나라 옛 지명으로 莒는 山東省 東部에 있으며, 卽墨은 山東省 平度縣 東南에 있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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