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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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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曰:
“臣離齊‧趙, 齊‧趙已孤矣,
王何不出兵以攻齊?
燕乃伐齊攻晉.
令人謂閔王曰:
“燕之攻齊也, 欲以復振古地也.
燕兵在而不進, 則是兵弱而計疑也.
王何不令蘇子將而應燕乎?
夫以蘇子之賢, 將而應弱燕, 燕破必矣.
燕破則趙不敢不聽, 是王破燕而服趙也.”
閔王曰: “善.” 乃謂蘇子曰:
“燕兵在晉, 今寡人發兵應之,
願子爲寡人爲之將.”
對曰:
“臣之於兵, 何足以當之?
王其改擧.
王使臣也, 是敗王之兵, 而以臣遺燕也.
戰不勝, 不可振也.”
王曰:
“行,
寡人知子矣.”
蘇子遂將, 而與燕人戰於晉下,
齊軍敗. 燕得甲首二萬人.
蘇子收其餘兵, 以守, 而報於閔王曰:
“王過擧, 令臣應燕.
今軍敗亡二萬人, 臣有,
請自歸於吏以戮.”
閔王曰:
“此寡人之過也.
子無以爲罪.”
明日又使燕攻陽城及.
又使人謂閔王曰:
“日者, 齊不勝於晉下, 此非兵之過, 齊不幸而燕有天幸也.
今燕又攻陽城及狸,
是以天幸自爲攻也.
王復使蘇子應之,
蘇子先敗王之兵, 其後必務以勝報王矣.”
王曰: “善.”
乃復使蘇子, 蘇子固辭, 王不聽.
遂將以與燕戰於陽城. 燕人大勝, 得首三萬.
齊君臣不親, 百姓離心.
燕因使, 破之.


461. 소대蘇代나라에서 사람을 시켜 소왕昭王에게 말하다
소대蘇代나라에서 사람을 시켜 소왕昭王에게 말하였다.
“제가 제나라‧나라를 서로 이간離間시켜 제나라‧조나라는 각각 이미 고립되었습니다.
이럴 때 왕께서는 어찌하여 출병하여 제나라를 치지 않습니까?
저는 청컨대 왕을 위하여 제나라를 약화시키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연나라는 제나라의 땅을 공격하였다.
소대는 다시 사람을 시켜 민왕閔王에게 말하였다.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옛날 제나라에게 잃었던 땅을 다시 찾기 위해서입니다.
연나라는 병력을 땅에 주둔시키고 더 진공進攻을 하지 않는 것은 병력이 약할 뿐 아니라 계획도 의심되어서입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소대蘇代로 하여금 연나라에 응전應戰하라고 보내지 않습니까?
소대만한 인물이라면 장차 연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고, 연나라는 틀림없이 격파되고 말 것입니다.
연나라가 격파되면 조나라는 우리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연나라를 격파시키고, 조나라를 복종시키는 일거양득이 됩니다.”
민왕이 ‘좋소.’ 하고는 소대를 불렀다.
“연나라 군사가 에 있어 과인은 발병發兵하여 응전應戰하려 하오.
원컨대 그대가 과인을 위해 장수가 되어 주시오.”
소대가 대답하였다.
“제가 용병에 대하여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거용擧用하십시오.
왕께서 저를 시키시면 왕의 군사도 패배하고 저를 연나라로 보내는 것입니다.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떨치지 못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가시오.
나는 그대의 능력을 알고 있소.”
이리하여 소대는 드디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진읍 아래에서 연나라와 맞붙었다.
제나라는 결국 패하고 연나라로서는 제나라 군사 수급首級 2만을 얻는 전공을 세웠다.
소대는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양성陽城을 지키면서 민왕에게 보고하였다.
“왕께서 저를 잘못 거용하여 연나라와 응전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군이 패하여 2만을 잃었으니 저는 부질지죄斧鑕之罪를 짓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스스로 담당관리에게 가서 재판을 받고 육형戮刑을 당하겠습니다.”
민왕이 말하였다.
“이는 과인의 잘못이오.
그대는 아무런 죄가 없소.”
다음날 소대는 다시 몰래 사람을 연나라에 보내 양성과 땅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소대는 다시 몰래 사람을 민왕에게 보냈다.
“지난번 진읍 싸움에 우리가 진 것은 용병의 잘못이 아니라, 제나라는 불운不運하였고, 연나라는 천행天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가 또 양성과 땅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왕께서는 다시 소대를 시켜 응전하게 하십시오.
소대는 지난번에 패하였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대왕께 승전보勝戰報를 알려 올 것입니다.”
왕은 ‘좋소.’ 하였다.
이에 민왕이 다시 소대를 시켜 소대는 끝내 사양하였으나 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제군을 끌고 양성에서 연나라와 싸웠지만 이번에도 연나라가 대승하여 수급首級 3만을 얻었다.
이로부터 제나라 군신 사이에는 불신이 싹트게 되었고 백성들의 마음도 흩어지게 되었다.
연나라는 이 틈에 악의樂毅를 시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여 이를 크게 깨뜨렸다.


역주
역주1 : 이 장은 458‧459장 등의 연속이다. 樂毅가 齊를 대파한 것(160‧453장)은 B.C.284년쯤의 일이다. 蘇代가 燕에서 子之의 亂을 일으킨 후 감히 燕으로 가지 못하고 宋에 있었다. 昭王이 다시 부르자 우선 燕을 위해 齊를 치게 해 주겠다고 이 계략을 꾸민 것이다.
역주2 聞(間) : 포표본에 의하여 ‘間’으로 고쳤다.
역주3 請〈爲〉王弱之 : 文義로 보아 ‘爲’를 보충하였다.
역주4 : 원래 燕의 읍명(春秋 이전 古代의 鼓나라)으로 이때 齊에게 점령당하였었다.(河北省 晉縣)
역주5 陽城 : 河北省 淸苑縣의 陽城鎭.
역주6 斧質之罪 : 斧質은 원래 古代 戮刑 刑具. 죄인을 모탕 위에 올려놓고 참수하였다. 質은 鑕과 通한다.
역주7 : 地名. 陽城 근처일 것으로 보인다.
역주8 樂毅大起兵伐齊 : 燕 昭王이 樂毅를 上將軍으로 삼아 秦 및 三晉과 연합해서 周 赧王 31년(B.C.284년) 齊를 쳐 70여 성을 빼앗았다. 湣王은 도망하다가 결국 莒에서 自守하였다. 《史記》 〈樂毅田單列傳〉 및 〈燕世家〉, 〈趙世家〉 참조)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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