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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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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工師藉, 相呂倉, 國人不說也.
君有閔閔之心. 謂周文君曰:
“國必有誹譽, 忠臣令誹在己, 譽在上.
, 而民非之, 無忠臣以掩蓋之也.
, 民非子罕而善其君,
, 七百, 國人非之.
管仲故爲, 以掩桓公, 非自傷於民也.
記臣弑君者以百數, 皆大臣見譽者也.
故大臣得譽, 非國家之美也.
故衆庶成彊, .”
周君遂不免.


011. 문군文君공사자工師藉를 면직시키다
문군文君공사자工師藉를 면직시키고, 여창呂倉을 상국으로 삼자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임금이 불안해 하는 마음을 갖자 어떤 사람이 주 문군에게 말하였다.
“나라 일에는 반드시 비방과 칭송이 있게 마련인데, 충신은 비방은 자기에게 있게 하고, 명예는 윗사람에게 돌리는 법입니다.
송군宋君이 농사철[民時]을 빼앗아 누대樓臺를 짓자, 백성들이 비난하였지만 그 어떤 충신도 이를 엄호해 덮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한子罕상국相國자리를 버리고 사공司空이 되자 백성들이 이번에는 자한을 비난하고 임금을 칭찬하였습니다.
환공桓公이 궁중에다 일곱 개의 시장市場을 개설하고, 7백 군데의 여려女閭를 차리자 백성들이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관중管仲이 일부러 〈그보다 더 사치스러운〉 삼귀지가三歸之家를 지어 환공을 엄호해 주고, 스스로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춘추春秋》에 신하가 임금을 시해弑害한 기록이 수백 군데 있는데, 이는 모두 대신大臣이 명예를 얻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신大臣이 명예를 얻는 것은 국가에 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리가 많아지면 강함을 이루게 되고, 불어나고 쌓이면 산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주군周君은 드디어 여창을 파면하지 아니하였다.


역주
역주1 周文君免士工師藉 : 대본에는 이 章이 앞장(010)과 연결되어 있다. 《左傳》 襄公十七年에 宋皇國父가 大宰가 되어, 平公을 위하여 누대를 축성하자 子罕이 극력 반대한 기록이 있다.
역주2 원주] 周文君免[士] : 集賢院本과 曾鞏本에는 士자가 없다.
역주3 宋君奪民時以爲臺 : 宋君은 春秋時代 宋 平公(재위 B.C.575~B.C.532)으로 이름은 成, 共公의 막내아들이며 당시 재상은 司城子罕이었다. 이 사건은 《左傳》 襄公十七年에 실려 있는데, 樓臺는 靑陵臺를 가리킨다.
역주4 子罕釋相爲司空 : 子罕은 宋나라의 어진 신하 司城子罕을 가리키는데 이름은 樂喜이다. 司城은 司空과 같으며 재상 다음의 직위로 토목공사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역주5 齊 桓公 : 춘추시대 五霸 중의 首長인 齊나라의 桓公(재위 B.C.685~B.C.643). 이름은 小白, 管仲을 재상에 임용하였다. 《史記》 〈齊世家〉‧〈管子列傳〉 참조.
역주6 宮中七市 : 宮苑 안에 설치한 일곱 종류의 상품을 파는 시장. 이때의 일곱 가지 상품이 무엇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鮑彪本에는 七이 女로 되어 있다.
역주7 女閭 : 公娼制度의 하나. 이때 천하의 豪客‧行商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시에 이 女閭를 설치해 여자를 거처시켜 旅客의 便宜를 도모하였다.
역주8 三歸之家 : 三歸에 대한 설은 구구하다. 《論語》 〈八佾〉에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중은 三歸를 두었으며 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或曰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乎]”라고 하였는데, ① 歸를 嫁로 보아 姓이 다른 세 여자에게 장가들고 그 여자들이 거처할 집을 지어 주었다는 說. 《漢書》 〈地理志 下〉에 “몸이 배신이면서 三歸를 聚하였다.[身在陪臣而聚三歸]”라고 하였다. ② 地名으로 관중의 采邑이라는 說. ③ 호화스러운 세 개의 臺, 즉 民人歸臺‧諸侯歸臺‧四夷歸臺라는 설 등이다.
역주9 春秋 : 六經의 하나. 魯나라의 歷史書로 魯隱公부터 哀公까지 12公 242년의 사실을 孔子가 刪削하고 褒貶을 가했다. 本文이 간략하고 난해하여 후에 해설서로 《春秋左氏傳》, 《春秋公羊傳》, 《春秋穀梁傳》이 나왔다.
역주10 增積成山 : 大臣이 민중의 세력을 얻어 너무 커지면 제어할 수 없다는 뜻.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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