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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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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賈於邯鄲,
見秦質子, 歸而謂父曰:
“耕田之利幾倍?”
曰:
“十倍.”
“珠玉之贏幾倍?”
曰:
“百倍.”
“立國家之主贏幾倍?”
曰:
“無數.”
曰:
“今力田疾作, 不得煖衣餘食; 今建國立君, 澤可以遺世. 願往事之.”
秦子異人質於趙, 處於{戶/夘}.
故往說之曰:
有承國之業, 又有母在中.
今子無母於中, 外託於不可知之國, 一日倍約, 身爲糞土.
今子聽吾計事, 求歸, 可以有秦國.
吾爲子使秦, 必來請子.”
乃說秦王后弟曰:
“君之罪至死, 君知之乎?
君之門下無不居高尊位, 太子門下無貴者.
君之府藏珍珠寶玉, 君之駿馬盈外廐, 美女充後庭.
王之春秋高, 一日山陵崩, 太子用事, 君危於累卵, 而不壽於.
說有可以一切, 而使君富貴千萬歲, 其寧於太山四維, 必無危亡之患矣.”
陽泉君避席, 請聞其說. 不韋曰:
“王年高矣, 王后無子, 子傒有承國之業, 又輔之.
王一日山陵崩, 子傒立, 士倉用事, 王后之門, 必生蓬蒿.
子異人賢材也, 棄在於趙,
無母於內, 引領西望, 而願一得歸.
王后誠請而立之, 是子異人無國而有國, 王后無子而有子也.”
陽泉君曰:
“然.”
入說王后, 王后乃請趙而歸之.
趙未之遣, 不韋說趙曰:
“子異人, 秦之寵子也,
無母於中, 王后欲取而子之.
使秦而欲屠趙, 不顧一子以留計, 是抱空質也.
若使子異人歸而得立, 趙厚送遣之, 是不敢倍德畔施, 是自爲德講.
秦王老矣,
一日晏駕, 雖有子異人, 不足以結秦.”
趙乃遣之.
異人至, 不韋使楚服而見.
王后悅其狀, 高其知, 曰:
“吾楚人也.”
而自子之, 乃變其名曰楚.
王使子誦, 子曰:
“少棄捐在外, 嘗無師傅所敎學, 不習於誦.”
王罷之, 乃留止.
間曰:
“陛下嘗軔車於趙矣,
趙之豪桀, 得知名者不少.
今大王反國, 皆西面而望. 大王無一介之使以存之,
臣恐其皆有怨心. 使邊境早閉晩開.”
王以爲然, 奇其計.
王后勸立之. 王乃召相, 令之曰:
“寡人子莫若楚.”
立以爲太子.
子楚立, 以不韋爲相, 號曰文信侯, 食藍田十二縣.
王后爲華陽太后, 諸侯皆致秦邑.


복양濮陽 사람 여불위呂不韋
복양濮陽 사람 여불위呂不韋한단邯鄲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라에서 인질로 와 있던 이인異人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농사짓는 이익은 몇 배나 됩니까?”
아버지가 말하였다.
“열 배이다.”
주옥珠玉의 이익은 몇 배입니까?”
아버지가 말하였다.
“1백 배는 되겠다.”
“나라의 임금을 세워 주면 이익이 몇 배나 됩니까?”
아버지가 말하였다.
“그야 셀 수 없지.”
여불위가 말하였다.
“지금 힘써 농사를 짓거나 급히 서둘러 일을 해서 얻는 이익이란 그저 추위에 떨지 않고 배곯지 않는 정도도 어렵지만, 지금 나라를 일으킬 왕을 세워 주면 그 혜택이 대대로 남을 테니 저는 가서 그런 일을 하겠습니다.”
당시 나라의 이인異人나라에 인질人質로 와 요성{戶/夘}城에 살고 있었다.
여불위는 일부러 그를 찾아가 달래었다.
“그대의 이복형異腹兄 자혜子傒는 나라의 을 이어갈 것이며, 또 안에는 그의 어머니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대는 어머니도 없으며 게다가 앞일을 알 수 없는 이 외국에 인질로 의탁하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맹약이 깨어지게 되면 분토糞土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 계책대로만 하여 돌아가기를 요구하면 진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진나라에 심부름을 가서 나라로 하여금 반드시 그대를 데려가게 하겠습니다.”
여불위는 나라에 가서 왕후王后의 동생 양천군陽泉君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의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데, 그대는 알고 있소?
그대 문하門下 사람들은 고관존위高官尊位에 오르지 않은 자가 없지만 태자(子傒)의 문하 사람들은 귀하게 된 자가 하나도 없소.
게다가 그대의 창고에는 진주珍珠보옥寶玉이 가득하고, 그대의 마구馬廐에는 준마駿馬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그대의 후정後庭에는 미녀들이 우글거리고 있소.
지금 임금의 연세가 많아 하루아침에 죽고 나면 태자가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니, 그대는 알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고 목숨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만도 못하오.
그대를 천만 년 동안 부귀하게 해 주고 태산太山 사유四維보다 편안하여 반드시 영원히 후환이 없게 해 줄 계책이 있습니다.”
양천군이 자리를 옮겨 앉으며 그 말을 듣기를 청하니, 여불위가 말하였다.
(孝文王)께서는 이미 늙었는데 왕후에게는 아들이 없어 자혜子傒가 나라의 대업을 잇게 되어 있고 사창士倉이 보좌하게 될 것이오.
이 하루아침에 죽고 자혜子傒가 즉위하여 사창士倉이 국사를 맡게 되면, 왕후의 문전門前은 틀림없이 쑥밭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인異人(子楚)은 어진 인물로 몸이 나라에 버려져 있습니다.
궁중에 어머니가 없어, 목을 빼고 서쪽을 바라보며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왕후가 임금에게 청해서 그를 세워 주면 이인異人은 없던 나라를 얻게 되고, 왕후는 없던 아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양천군이 말하였다.
“그렇겠소.”
그리고는 곧 왕후에게 들어가 알리니, 왕후는 이에 나라에 청하여 그를 귀국시키도록 하였다.
조나라가 아직 자초子楚를 보내 주지 않고 있자 여불위가 조왕趙王에게 말하였다.
이인異人나라가 총애하는 왕자입니다.
궁중에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왕후가 그를 아들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도륙하고자 한다면 왕자 하나가 인질로 있다고 해서 계책을 유보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헛되이 인질을 껴안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인異人이 돌아가 왕이 되도록, 조나라가 많은 예물을 주어 보내 준다면 이는 조나라의 은덕과 시혜施惠를 배반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저절로 으로 화호和好를 맺는 셈입니다.
지금 진왕秦王은 늙었습니다.
어느 날 죽게 되면 이인異人이 있다 하더라도 진나라와의 결맹結盟이 이어지기에는 부족합니다.”
조나라는 이에 그를 귀국시켜 주었다.
이인異人나라에 이르자 여불위는 그에게 나라 옷을 입히고 왕후를 뵙게 하였다.
왕후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그 지혜를 높이 보며 말하였다.
“나는 초나라 사람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아들로 삼고, 이름도 (子楚)라고 바꾸었다.
왕이 그에게 책을 읽어 보라고 하니, 자초가 말하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에 버려져, 일찍이 스승에게 학문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왕은 그만두게 하고 궁중에 머물게 하였다.
얼마 후 자초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도 일찍이 조나라에 수레를 머물렀던 적이 계셨습니다.
그때 조나라의 호걸들로서 폐하와 사귀어 이름을 알고 지낸 자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돌아와 왕이 되고 난 후에는 그들이 서쪽을 바라보며 폐하를 생각하고 있는데 대왕께서는 한 번도 사자使者 한 사람이라도 보내어 그들을 위로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마 지금 그들이 모두 오히려 원한을 갖고 있지 않나 두려우니, 국경의 관문을 저녁 일찍 닫고 아침 늦게 열도록 하셔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왕이 그렇게 여기고 그 계책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왕후가 그를 태자로 세우기를 권하자 왕은 이에 재상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과인의 아들 중에 자초만한 자가 없다.”
그리고는 곧바로 태자로 삼았다.
자초는 왕이 되자 여불위呂不韋를 승상으로 삼아 문신후文信侯라 하였으며, 남전藍田 땅 12식읍食邑으로 주었다.
왕후는 화양태후華陽太后로 승격되고 제후들이 모두 나라에 토지를 헌납하였다.


역주
역주1 107. 濮陽人呂不韋 : 이 장의 사실은 《史記》 〈呂不韋列傳〉에도 실려 있으며, 내용도 비슷하다. 呂不韋가 文信侯에 봉해진 것은 秦王 政(秦 始皇) 元年(B.C.246)이며, 嫪毐 사건에 연루되어 상국에서 면직된 것은 始皇 10년(B.C.237)이다.
역주2 濮陽人 : 《史記》에는 陽翟人으로 되어 있다. 濮陽은 원래 衛나라의 서울로 지금의 河南省 濮陽縣 경내이다.
역주3 呂不韋 : 秦나라 큰 상인. 秦 始皇의 親父. 趙나라 서울 邯鄲에 갔을 때 그곳에 인질로 와 있던 왕자(子楚)를 奇貨로 여겨 秦에 돌아가 왕이 되게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첩을 子楚에게 주는데 그 첩은 이미 呂不韋의 아이인 政을 잉태하고 있었으니, 이가 바로 秦 始皇이다. 왕이 된 子楚(莊襄王)에 의해 呂不韋는 재상이 되어 文信侯의 칭호를 얻으며 같은 시대의 戰國四公子를 능가하는 식객을 거느렸으며 학자를 모아 《呂氏春秋》를 지어 “이 책에서 한 자라도 잘못된 곳을 찾아내는 자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자신하였다. 政은 열세 살 때 莊襄王이 죽자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呂不韋는 태후와 계속 私通하는 등 정권을 농단하다가 그의 권력이 너무 큰 것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안 시황이 추방해 버리니, 결국 蜀에서 음독자살하고 만다. 《史記》 〈呂不韋列傳〉 참조.
역주4 異人 : 본래 인질로 와 있는 사람, 異邦人이라는 뜻. 뒤에 정식으로 子楚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秦나라 孝文王의 아들로 昭王 때에 趙나라에 인질로 있었으며 당시 呂不韋가 邯鄲에서 장사를 하다가 만난 것이다.
역주5 {戶/夘}城 : 趙나라 邑 이름. 《史記》 〈呂不韋列傳〉의 張守節集解에는 聊城으로 되어 있다. 聊城은 지금의 山東省 聊城市. 당시 趙나라 땅.
역주6 子傒 : 子楚가 인질로 와 있을 때 태자였던 安國君(柱)의 장자. 원주에 “子傒는 秦나라 太子로 異人의 異母兄弟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昭王이 재위 중이고 子楚의 父인 安國君이 태자였으므로 그의 아들을 가리킨다.
역주7 陽泉君 : 華陽夫人의 동생.
역주8 朝生 :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木槿花. 또는 朝菌(버섯).
역주9 士倉 : 秦나라의 신하.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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