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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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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儀事秦.
惠王死, 立. 左右惡張儀, 曰:
“儀事先王不忠.”
言未已, 齊讓又至.
張儀聞之, 謂武王曰:
“儀有愚計, 願效之王.”
王曰:
“奈何?”
曰:
“爲社稷計者,
東方有大變, 然後王可以多割地.
今齊王甚憎張儀, 儀之所在, 必擧兵而伐之.
故儀願乞不肖身而之梁, 齊必擧兵而伐之.
齊‧梁之兵連於城下, 不能相去, 王以其間伐韓, 入, 出兵而無伐, 以臨周,
祭器必出, 挾天子, 案圖籍, 此王業也.”
王曰:
“善.”
乃具革車三十乘, 納之梁.
齊果擧兵伐之. 梁王大恐.
張儀曰:
“王勿患,
請令罷齊兵.”
乃使其舍人馮喜之楚, 藉使之齊.
齊‧楚之事已畢, 因謂齊王:
“王甚憎張儀,
雖然, 厚矣王之託儀於秦王也.”
齊王曰:
“寡人甚憎儀,
儀之所在, 必擧兵伐之, 何以託儀也?”
對曰:
“是乃王之託儀也.
儀之出秦, 因與秦王約曰:爲王計者, 東方有大變, 然後王可以多割地.
齊王甚憎儀, 儀之所在, 必擧兵伐之.
故儀願乞不肖身而之梁,
齊必擧兵伐梁.
梁‧齊之兵連於城下不能去, 王以其間伐韓,
入三川, 出兵函谷而無伐, 以臨周, 祭器必出,
挾天子, 案圖籍, 是王業也.
秦王以爲然, 與革車三十乘而納儀於梁. 而果伐之,
是王內自罷而伐與國, 廣鄰敵以自臨, 而信儀於秦王也.
此臣之所謂託儀也.”
王曰:
“善.”
乃止.


장의張儀 혜왕惠王을 섬기다
장의張儀 혜왕惠王을 섬겼다.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좌우가 장의를 미워하여 말하였다.
“장의는 선왕先王에게 불충하였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아 나라에서 보낸 〈장의를 중용重用한 데 대해〉 책망하는 말이 또 이르렀다.
장의가 이를 듣고 무왕에게 말하였다.
“저 장의에게 어리석은 계략 하나가 있으니 왕께 바치겠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무엇이오?”
장의가 말하였다.
“나라의 사직을 위한 계책입니다.
동쪽(六國)에 큰 변고가 있은 연후에야 왕께서는 더 많은 땅을 떼어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제왕齊王이 저를 굉장히 미워하여, 제가 있는 곳이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불초한 저는 (魏)나라로 갈까 하는데, 그러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칠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와 (魏)나라가 아래에서 싸움이 붙으면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되니, 왕께서는 그 틈을 이용해서 나라를 공략하여 삼천三川을 손에 넣은 다음 군대를 함곡관函谷關으로 출병시키면 싸움 없이 서주西周에 닿을 수 있습니다.
서주는 반드시 제기祭器를 내 놓을 것이요, 그러면 천자天子를 끼고 지도地圖호적戶籍을 장악하게 되니, 이것이 곧 왕업王業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좋소.”
그리고는 혁거革車 30을 준비하여 양나라로 보냈다.
제나라가 과연 군대를 일으켜 양나라를 공격해 오니, 양왕梁王(魏哀王)이 크게 겁을 먹었다.
장의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라 군대를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사인舍人 풍희馮喜나라로 가게 하여 나라의 사자인 것처럼하여 나라로 가게 하였다.
제나라와 초나라에 대한 일을 끝내고 풍희가 제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장의張儀를 대단히 미워하십니다.
비록 그러하나 왕께서는 오히려 그를 후대하여 장의를 진왕秦王에게 의탁시켜 놓고 계시는군요.”
제왕齊王이 말하였다.
“과인은 장의를 심히 미워하오.
그 장의가 있는 곳은 어디라도 군대를 일으켜 치는데, 장의를 의탁시켰다니 무슨 뜻이오?”
풍희가 대답하였다.
“그것이야말로 장의를 진왕秦王에게 의탁해 두었다는 말입니다.
장의가 진나라를 떠날 때 진왕과 약속하기를 ‘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동방(六國)에 큰 변고가 있은 연후에야 왕께서 많은 땅을 할양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 왕은 저를 아주 미워하여 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필히 군대를 일으켜 칩니다.
그러므로 저는 불초한 몸을 양나라로 가서 의탁하겠습니다.
그러면 제나라가 틀림없이 군대를 일으켜 양나라를 칠 것입니다.
양나라와 제나라가 서로 싸우느라 성 아래 얽혀 오도 가도 못할 때 왕께서는 그 틈을 이용하여 한나라를 치십시오.
그리고 삼천三川을 삼키고 군대를 함곡관函谷關으로 출병시키면 싸우지 아니하고도 나라에 이를 수 있으며 그러면 주나라는 제기祭器를 반드시 내놓을 것입니다.
이에 천자天子를 끼고 지도와 호적을 장악하는 이것이 바로 왕업王業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진왕秦王이 그렇게 여겨 혁거革車 30으로 장의를 양나라에 보낸 것인데 과연 왕께서 양나라를 치십니다.
이는 왕께서 안으로 스스로 피폐해지고 게다가 동맹국을 친 것이어서 모든 이웃을 적으로 만들어 스스로 고립孤立되고, 진왕秦王이 장의를 더욱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제가 말한 장의를 의탁시켰다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좋소.”
그리고는 이를 중지하였다.


역주
역주1 129. 張儀事秦惠王 : 이 기록은 《史記》 〈張儀列傳〉과 대략 같으며, 《資治通鑑》에 의하면 B.C.310년의 일이다. 061‧360장 등 참조.
역주2 惠王 : 孝公의 아들로 이름은 駟.
역주3 武王 : 惠王의 아들로 이름은 蕩.
역주4 三川 : 三川은 黃河 이남의 伊河와 洛河가 지나가는 곳. 지금의 하남성 서부.
역주5 函谷 : 函谷關. 지금의 하남성 靈寶縣 남쪽.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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