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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全] 長樂陳氏가 曰호대 爲人臣者는 無以有己라.
故로 將軍이 受命之日에 則忘其家하며 臨軍誓衆에 則忘其親하며 援桴而鼓에 則忘其身이라.
大夫가 見於國君에 國君拜其辱커든 況君言至乎아.
孔子가 問人於他邦에 再拜而送之어든 況使人於君所乎아.
言朝服而命之면 則知拜辱‧拜送도 亦朝服也요, 言拜辱‧拜送이면 則知朝服而命之도 亦拜之也며 拜送於門外면 則拜辱도 亦門外也라.
○ 吳郡范氏가 曰호대 人君所以爲國者는 恃其命令足以鼓舞群下而已니,
人臣敬君之命을 如雷霆之不敢侮는 蓋以吾君之所以爲國者가 在焉 이라.
朝受君言하고 夕舍於郊는 非必使事가 如此其急也오 不敢慢君之命也라.
使者가 以君言至어든 出而拜迎하고 出而拜送하니 非拜使者也오 拜君之命也라.
使人請命於君에 其往則朝服而遣之하고 其反則下堂而受之는 非嚴使者也오 嚴君之命也라.
人君이 深居九重之中而動化萬里之外는 命令이 所至에 奔走奉承하야 其震動이 如此일새니라.
是以로 聖王은 兢兢業業하야 不敢忽於出令하야 審之而勿輕發하고 守之而勿輕變하야 使天下로 致敬而取則하야 觀聽不惑而後에 治功可成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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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全]장악진씨長樂陳氏 : 신하가 된 자는 자신의 몸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장군이 출정의 명령을 받은 날에는 마음에서 집안일을 잊고, 출정에 앞서 군사들에게 훈계하면서부터는 어버이에 대한 생각을 잊으며, 북채를 당겨 북을 쳐서 진격을 명한 다음에는 자신의 안위를 잊는다.
그러고 보면 임금의 사신이 된 자도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이것이 〈《의례儀禮》의〉 〈빙례聘禮〉에서 “사당에 폐백을 바쳐 고하고 즉시 떠난다.”고 말한 까닭이며, 〈지시 받은〉 임금의 말씀을 자기 집에서 묵히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대부가 임금을 알현할 때에 임금도 절하는데 하물며 임금의 말씀을 가지고 온 경우이겠는가.
공자가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예물禮物을 전할 때에도 〈사자使者에게〉 두 번 절하고 보냈으니, 더구나 임금이 계신 곳에 사람을 보내는 경우이겠는가.
조복朝服차림으로 지시한다면 배욕拜辱과 배송拜送도 또한 조복차림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배욕拜辱이라 하고 배송拜送이라 한 것을 보면 조복차림으로 지시할 때에도 또한 절을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문밖에서 배송拜送하였다면 배욕拜辱 또한 문밖에서 한 것이다.
오군범씨吳郡范氏 :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자신의 명령이 여러 신하들을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명령이 중시되면 그 정령이 시행되고, 명령이 경시되면 정사가 무너진다.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마치 우레처럼 공경하는 것은 우리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기禮記》의〉 〈곡례曲禮〉에 임금의 명령을 존경하는 것에 대한 서술이 특히 자세한 것이다.
아침에 임금의 지시를 받고 저녁에 교외에서 묵는 것은 반드시 사신가는 일이 이처럼 급해서가 아니고, 임금의 명령을 감히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이다.
임금의 명을 받은 사자使者가 도착하면 주인은 나아가서 절한 후 맞이하고, 〈사자가 돌아갈 때는〉 반드시 문밖에 나가서 절하고 전송하니 사자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며 임금의 명에 절하는 것이다.
사람을 보내어 임금의 지휘를 요청할 때에는, 그가 떠나갈 때에 조복차림으로 전송하고, 그가 임금의 지시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에는 당堂에서 내려가서 받는 것은, 사자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임금의 명을 존중해서이다.
임금은 깊은 구중궁궐에 있으면서도 만리 밖에 있는 백성들을 감화感化시키는 것은 명령이 이르는 곳마다 달려 나와 받들어서 진동함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왕聖王은 근신하고 두려워하여 명령을 내리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아서 살피고 또 살펴서 경솔하게 하지 않았고, 지켜서 쉽게 바꾸지 않아서 천하 사람들이 공경하고 본받아서 보고 들음에 의혹되지 않게 한 뒤에야 치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