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703 將軍文子之喪에 旣除喪而后에 越人來弔어늘 主人이 深衣練冠으로 待於廟호대 垂涕洟한대
子游觀之하고 曰 將軍文氏之子는 其庶幾乎인저 亡於禮者之禮也에 其動也가 中이로다
集說
≪集說≫ 將軍文子는 卽彌牟也요 主人은 文子之子也라 禮無弔人於除喪之後者하고 亦無除喪後受人之弔者라
庶幾는 近也라 子游善其處禮之變이라 故曰 文氏之子其近於禮乎인저 雖無此禮나 而爲之禮에 其擧動이 皆中節矣라
集說
○疏曰 深衣
는 卽
也
라 制如深衣
하니 緣之以布曰麻衣
요 緣之以素曰長衣
요 緣之以采曰深衣
라
始死至練祥來弔는 是有文之禮요 祥後來弔는 是無文之禮니 言文氏之子庶幾堪行乎無於禮文之禮也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喪已除而弔始至는 非喪非無喪之時也요 深衣練冠은 非凶非不凶之服也요 待于廟는 非受弔非不受弔之所也라
文子於其非喪非無喪之時에 能處之以非喪非無喪之禮라 故子游曰 其庶幾乎인저
亡於禮者之禮也에 其動也中이라 中者는 猶射之有中也라
中乎有於禮者之禮는 未足以爲善이요 中乎亡於禮者之禮則善矣라
장군將軍 문자文子의
상喪에 이미
상복喪服을 벗은 뒤에
월越나라 사람이 와서 조문을 하자,
주인主人이
심의深衣에
연관練冠 차림으로 사당에서 기다리되 곡은 하지 않고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深衣前圖 深衣後圖
자유子游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장군 문씨文氏의 아들이 거의 예禮에 가깝구나! 예문禮文에 없는 예에 있어 그 거동擧動이 절도에 맞는구나!”
集說
장군將軍 문자文子는 바로 미모彌牟이고, 주인主人은 문자의 아들이다. 예禮에는 상복喪服을 벗은 뒤에 남을 조문하는 경우가 없고, 또한 상복을 벗은 뒤에 남의 조문을 받는 경우도 없다.
심의深衣는 길사吉事나 흉사凶事에 통용할 수 있다.
소상小祥 연복練服의 관冠은 순전히 길吉하지도 않고 또한 순전히 흉凶하지도 않다.
사당은 신주神主가 계신 곳이니, 조문 온 사람을 기다리기만 하고 영접하지 않는 것이 조문을 받는 예禮이다.
곡哭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린 것은 곡할 때가 이미 지났지만 슬픈 감정이 아직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기庶幾는 가깝다는 뜻이다. 자유子游는 그가 예禮가 변함에 따라 맞게 대처함을 잘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문씨文氏의 아들이 예에 가깝구나. 비록 이러한 예는 없지만 예를 행함에 그 거동이 모두 절도에 맞는다.”라고 한 것이다.
集說
○소疏:심의深衣는 바로 〈간전間傳〉에서 말한 마의麻衣이다. 제도가 심의와 같은데 삼베로 가선을 두른 것을 마의麻衣라고 하고, 흰 베로 가선을 두른 것을 장의長衣라고 이르고, 채색 베로 가선을 두른 것을 심의라고 한다.
연관練冠이라는 것은 대상大祥 전에 쓰는 관冠이니 만약 대상제大祥祭라면 흰 관을 쓴다.
처음 죽었을 때부터 연제와 대상제에 이르기까지 와서 조문하는 것은 예문禮文에 있는 예禮이고, 대상제가 지난 뒤에 와서 조문하는 것은 예문에 없는 예이니, “문씨文氏의 아들이 거의 예문禮文에 없는 예禮를 감당하여 행한 것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동動은 거동이고 중中은 절도를 변화시킨 예에 합당하다는 뜻이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상복喪服을 이미 벗은 뒤에 조문객이 비로소 도착했다는 것은 초상初喪 중인 것도 아니고 초상이 아닌 것도 아닌 때이고, 심의深衣에 연관練冠은 흉복凶服도 아니고 흉복이 아닌 것도 아닌 복服이며, ‘사당에서 기다렸다’는 것은 조문을 받는 장소도 아니고 조문을 받지 않는 장소도 아니다.
문자文子의 아들이 초상인 것도 아니고 초상이 아닌 것도 아닌 때에 초상 중인 것도 아니고 초상이 아닌 것도 아닌 예禮로써 거뜬히 대처했기 때문에 자유子游가 “거의 예禮에 가깝구나!
예문禮文에 없는 예禮에 있어 그 거동이 절도에 맞는구나!”라고 말한 것이다. 중中이란 활을 쏘아맞힘에 적중함이 있다는 뜻과 같다.
예문에 있는 예에 적중한 것은 족히 잘했다고 할 수 없고, 예문에 없는 예에 적중한다면 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