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說
[集說] 不反兵은 謂常以殺之之兵器로 自隨也라.
○ 呂氏가 曰호대 殺人者死는 古今之達刑也나 殺之而義則無罪라.
考其所以컨대 必其人勢盛하야 緩則不能執이라 故로 遇則殺之오, 不暇告有司也니라.
父者는 子之天이니, 不能復父讐면 仰無以視乎皇天矣라.
報之之意가 誓不與讐俱生이니 此所以弗共戴天也라.
大全
[大全] 馬氏가 曰호대 先王이 以恩論情하고 以情合義하사 其恩大者는 其情厚하고 其情厚者는 其義隆이라.
是故로 父也‧兄弟也‧交遊也가 其爲讐則一이나 而所以報之者는 不同하니,
或은 弗共戴天하니 將死之而恥與之俱生也요, 或은 不反兵하니 將執殺之而爲之備也요, 或은 不同國 하니 將遠之而惡其比也라.
聖人이 不能使世之無讐하고 亦不能使之釋讐而不報요, 惟稱其情義而已矣라
若夫公羊論九世之讐하야는 則禮失於太過며 而所報도 非所敵矣라.
漢之時에 孝子見讐而不敢復은 則法失於太嚴이니 而孝悌之情을 無所伸矣라
○ 新定顧氏가 曰호대 二禮에 載復讐事를 向頗疑之하야 治平盛世에 井井有綱紀하니 安有私相報讐之事리요. 然이나 天下事를 亦不可知요
四海至廣하야 事變萬端하니, 豈可以一律論이리요.
如父母出於道하야 忽被强寇劫盜殺害면 其子가 豈容但已리요.
在旁이면 必力闘하야 與之俱死하고 不在旁이면 必尋探殺之而後已리니 此乃人子之至痛이라.
追思殆不欲生이니 縱彼在窮荒絶域이라도 亦必欲尋殺之以雪父母之寃이라.
如父母가 因事被人擠陷이면 爲人子者가 亦當平心自反하야 不可專以報復爲心이요,
或被人挾王命以矯殺이면 雖人子之至恨이나 然이나 城狐社鼠는 不可動搖요,
凡此之類는 皆宜隨事斟酌이요 儻不顧事之曲直勢之可否하고 各挾復讐之義以相搆害면 則是는 刑戮之民이요 大亂之道也라.
集說
[集說] 무기를 가지러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일 무기를 항상 휴대함을 말한다.
여씨呂氏 : 사람을 죽인 자를 죽인다는 것은 고금에 통용하는 형벌이지만 사람을 죽인 것이 의義롭다면 죄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는〉 원수로 삼지 말도록 하였으니,
의 직책이 그것이다.
사람을 죽인 것이 의롭지 못한 경우에는 죽인 자는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때는〉 의당 유사有司에게 고하여 죽여야 하니, 사사士師의 직분이 이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유사가 있으니〉 모두 복수復讐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복수에 대한 글이 경전經傳의 여기저기에 보인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니, 필시 원수의 세력이 커서 늦추다 보면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원수를〉 만나면 즉시 죽였으니 유사에게 고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니,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다.
원수를 갚겠다는 뜻에서 원수와 더불어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니, 이것이 〈원수와〉 함께 하늘을 〈머리에〉 일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大全
[大全]마씨馬氏 : 선왕께서 은혜로써 정리情理를 논정하고 정리情理로써 의리에 맞게 하셨으니, 그 은혜가 큰 것은 그 정리情理가 두텁고 그 정리情理가 두터운 것에는 그 의리가 높다.
이 때문에 아버지나 형제나 붕우에게 있어서 〈죽임을 당했다면 어느 경우에나〉 한결같이 〈나의〉 원수가 되지만 복수하는 것은 같지 않다.
따라서 혹은 함께 하늘을 일 수 없으니, 〈이는〉 장차 죽어도 〈원수와는〉 함께 살지 않는 것이고, 혹은 무기를 가지러 돌아가지 않으니, 〈이는〉 장차 〈원수를 우연히 만나면〉 잡아서 죽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며, 혹은 한 나라에 살지 않으니, 〈이는〉 장차 멀리 가서 〈원수와〉 가까이 있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성인이 이 세상에 원수지는 일을 없애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모든 원수를 〈일률적으로〉 풀어주어 복수하지 못하게 하지도 않으셨으니, 오직 〈경중에 따라〉 정情과 의義에 알맞게 〈원수를 갚도록〉 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같은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점에서
예禮를 그르친 것이며 복수의 대상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漢나라 때 효자孝子가 원수를 보고도 감히 복수하지 못한 것은 법이 지나치게 엄격한 것에서 잘못된 것이니 효제孝悌의 정리를 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예기禮記》의 본 뜻이 아니다.
신정고씨新定顧氏 : 《주례周禮》와 《의례儀禮》에 복수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것에 대하여, 이전에는 태평성세는 반듯하게 기강이 서 있으니 어찌 사사로이 서로 원수를 갚는 일이 있었겠는가? 하고 자못 의심하였지만, 천하의 일은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이 지극히 넓어서 일의 변화가 수만 가지이니 어찌 일률적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
가 이 〈복수에 대한〉 한 조목을 둔 것도 역시 보통 사람의 인정에 따른 것이다.
만약 부모가 길거리에 나가서 갑자기 사나운 도적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다면 그 아들이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옆에 있다면 반드시 힘써 싸워서 그와 함께 죽고, 곁에 없으면 반드시 찾아내어 죽이고 나서야 그만둘 것이니 이것은 바로 〈부모를 잃은〉 자식 된 자의 지극한 고통이다.
따라서 같이 죽기를 생각하여 거의 살고자 하지 않으며, 비록 원수가 세상의 끝 아주 먼 곳에 있더라도 또한 반드시 찾아서 죽여 부모의 원통함을 씻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더불어 하늘을 함께 〈머리에〉 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을 함께 이지 않는다는 것은 구차하게 살아남아 원수와 한 하늘 밑에서 더불어 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일의 경중이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니 원수라는 것도 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모가 어떤 일로 인해서 모함에 빠졌다면 자식 된 자는 또한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반성해야 하며 오직 복수심으로만 마음을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거짓된 왕명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비록 자식으로서 지극히 한스럽지만, 성안에 사는 여우나 사직에 사는 쥐처럼 권세에 의지하고 있어서 잡아버리고 싶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경우이니, 이에 동요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마땅히 한을 삼켜서 복수를 다짐하는 마음을 스스로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종류의 일들은 모두 형편에 따라서 짐작해야 하니 혹 일의 곡직이나 형편의 가부는 돌아보지 않고 각자 복수의 의리를 끼고서 서로 해치려 한다면 이는 형륙刑戮해야 할 백성이며 대란大亂을 일으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