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804 孔子之喪에 公西赤이 爲志焉호대 飾棺牆하고 置翣하며 設披하니 周也요 設崇하니 殷也요 綢練設旐하니 夏也라
集說
≪集說≫ 公西는 氏요 赤은 名이요 字는 子華니 孔子弟子也라
集說
○疏曰 孔子之喪에 公西赤이 以飾棺榮夫子라 故爲盛禮에 備三王之制하야 以章明志識焉이라
於是以素爲褚하고 褚外加牆하며 車邊置翣하고 恐柩車傾虧하야 而以繩左右維持之하니 此皆周之制也라
其送葬
에 所建旌旗
에 刻繒爲崇牙之飾
하니 此則殷制
요 又綢盛旌旗之竿以素錦
하고 於杠首
에 設長
之旐
하니 此則夏禮也
라
集說
○詩에 虡業維樅이라하니 疏云 懸鐘磬之處에 以采色爲大牙하야 其狀隆然하니 謂之崇牙라
練은 素錦也라 緇布는 廣終幅이요 長八尺이니 旐之制也라
大全
門人之葬孔子에 則飾牆置翣하고 以至周披殷崇夏旐하야 而二代之禮莫不兼用하니 豈孔子之心乎리오
蓋門人以孔子有所不可及之道라 故報之以人所不可行之禮하니 是雖禮兼於三代나 蓋亦稱情以爲文而已라
공자孔子의
상喪에
공서적公西赤이 예를 갖추어 표지를 하되,
관棺과
장牆(상여를 덮는 장식용 휘장)을 장식하고
운삽雲翣과
불삽黻翣을 세우고
관棺을 당기는 줄[
피披]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주周나라의 제도이고, 깃봉[
숭아崇牙]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은殷나라의 제도이며, 흰 비단[
연練]으로 깃대를 감싸고 거북과 뱀을 그린 기[
조旐]를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하夏나라의 제도이다.
雲翣 黻翣
集說
공서公西는
씨氏이고
적赤은 이름이며
자字는
자화子華인데,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旐
集說
○소疏:공자孔子의 상喪에 공서적公西赤이 관棺을 장식해서 공자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대한 예를 행할 때에는 삼왕三王의 제도를 구비해서 밝히고 표지하였다.
이에 흰 비단으로 관棺 덮개[저褚]를 만들고, 관棺 덮개 밖에 장牆을 더하였으며, 상여 옆에 운삽雲翣과 불삽黻翣을 세우고, 상여가 기울어질까 염려스러워 끈으로 좌우를 동여매었으니, 이는 모두 주周나라의 제도이다.
송장送葬할 때에 승거乘車에 세우는 깃발[정기旌旗]은 비단에 그림을 그려서[각刻] 숭아崇牙를 만들어 장식을 했으니 이는 은殷나라의 제도이고, 또 깃발의 장대를 흰 비단으로 동여서 싸고 깃대 꼭대기에 길이가 여덟 자 되는 깃발을 설치하였으니 이는 하夏나라의 예禮이다.
集說
○≪시경詩經≫ 〈대아大雅․영대靈臺〉에 “종틀 설주에 종을 매다는 널과 들쭉날쭉한 숭아崇牙가 있다”고 했는데, 소疏에 이르기를 “쇠북과 경쇠를 매다는 곳에 채색하여 대아大牙를 만들어 그 형상이 우뚝 솟아 있으니 그것을 일러 숭아崇牙라 한다.
연練은 흰 비단이다. 치포緇布는 넓이가 온폭(2척尺)이고 길이가 여덟 자이니 깃발의 제도이다.”라고 했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문인들은 후하게 장례葬禮를 치르고자 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안 된다고 하셨고, 공자의 병이 위독하자 자로子路가 문인으로 하여금 가신이 되게 하니 공자께서 하늘을 속였다고 하셨다.
문인들이 공자를 장사葬事지낼 때 관棺 덮개 밖에 장牆으로 장식하고 상여 옆에 운삽雲翣과 불삽黻翣을 세우고, 심지어 주周나라의 제도인 관棺을 당기는 줄[피披]과 은殷나라의 제도인 숭아崇牙와 하夏나라의 제도인 거북과 뱀을 그린 기[조旐]까지도 설치하여 하나라와 은나라 2대代의 예禮까지도 함께 사용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어찌 공자의 마음이었겠는가?
아마도 문인들이 공자는 누구도 미칠 수 없는 도道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남이 행할 수 없는 예로 보답한 것인 듯하니, 이를 보면 비록 예는 삼대三代를 겸하더라도 또한 인정人情에 걸맞게 예문禮文을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이 공자의 묘墓에서 6년 동안 여묘廬墓를 함에 맹자孟子께서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으셨으며, 문인들이 삼대三代의 제도로 후하게 장사를 지냈음에도 군자君子가 허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