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701 子路曰 傷哉라 貧也여 生無以爲養하며 死無以爲禮也로다
孔子曰 啜菽飮水나 盡其歡을 斯之謂孝요 斂首足形하야 還葬而無槨이나 稱其財를 斯之謂禮니라
集說
≪集說≫ 世固有三牲之養而不能歡者하고 亦有厚葬以爲觀美而不知陷於僭禮之罪者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君子之於親에 以其所以養이면 則養在志不在體요 以其所以葬이면 則葬在誠不在物이라
苟養在體不在志면 則雖三牲이라도 不足以爲孝요 葬在物不在誠이면 則雖醯醢百甕이라도 不足以爲禮라
若然則富者不足矜이요 貧者不足傷이니 要在自盡而已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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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陵方氏曰 子路於生曰養하고 於死曰禮라하니 則知所謂禮者는 喪葬之禮라
孔子又變養言孝者는 主盡其歡言之也니 盡其歡者는 存乎情이라 故以孝言이요 稱其財者는 存乎物이라 故以禮言이라
啜飮止以菽水言之者 菽不若稻梁之甘하고 水不若酒醴之美니 則以見盡其歡者는 在乎養志요 不在養口體而已니라
자로子路가 말하기를 “서글프구나, 가난함이여! 살아계실 때에는 봉양할 것이 없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예禮를 행할 수가 없구나.”라고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콩을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쁨을 극진하게 해드리는 것을 일러 효도라 하고, 머리와 발의 형체만 염하고 곧바로 장사葬事지내어 덧널이 없더라도 자기 형편에 맞게만 하면 그것을 예禮라고 이르느니라.”
集說
세상에는 진실로 소․양․돼지의 세 가지 희생으로 봉양하더라도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후하게 장사葬事를 지내어 보기에 아름답게 하지만 그것이 예禮를 참람한 죄에 빠지게 하는 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을 안다면 효도와 예禮를 다할 수가 있으니, 또 어찌 반드시 가난함을 서글퍼할 것이 있겠는가.
환장還葬은 설명이 윗 편篇(단궁檀弓 상上)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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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진씨長樂陳氏:군자는 어버이에 대해 봉양하는 것으로써 본다면 봉양함이 뜻을 봉양함에 있지 몸을 봉양함에 있지 않고, 장사지내는 것으로써 본다면 장사지내는 예는 정성에 달려 있지 예물에 달려 있지 않다.
만약 봉양함이 몸을 봉양함에 있고 뜻을 봉양함에 있지 않다면 세 가지 희생을 가지고 봉양을 하더라도 효가 되기에 부족하고, 장사지내는 예가 예물에 있고 정성에 있지 않다면 비록 식초와 젓갈을 백 개의 옹기에 담아 장사지내더라도 예가 되기에 부족하다.
만약 그렇다면 부자富者라도 족히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고, 가난한 자라도 족히 서글플 만한 것이 못되니, 요점은 스스로 정성을 다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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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방씨嚴陵方氏:자로子路는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 대해서는 양養이라 하고, 돌아가셨을 때에 대해서는 예禮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른바 예禮란 상장喪葬의 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장喪塟을 말한 것이라면 이른바 봉양이라고 하는 것도 예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이르길 “살아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낸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공자가 또 양養을 바꿔서 효孝라고 말한 것은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를 극진히 하는 것을 위주로 말한 것이니,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를 극진히 함은 정情에 달려 있기 때문에 효孝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재물에 맞춰서 하는 것은 사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예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단지 콩과 물만 가지고 말한 것은 콩은 쌀밥처럼 맛있지 않고, 물은 술이나 감주처럼 맛있지 않으니, 그렇다면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를 극진히 한다는 것은 뜻을 봉양함에 있는 것이지, 몸을 봉양함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