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04 子顯이 以致命於穆公한대 穆公曰 仁夫라 公子重耳여 夫稽顙而不拜하니 則未爲後也라
故不成拜요 哭而起는 則愛父也요 起而不私는 則遠利也니라
集說
≪集說≫ 鄭註用國語하야 知使者爲公子縶이니 字는 子韅이라 故讀顯爲韅也라
喪禮에 先稽顙後拜를 謂之成拜니 爲後者成拜는 所以謝弔禮之重이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라하시니 夫不仁
이어늘 猶或有得國者
하니 而況於仁乎
아
向使自得於天資
요 非由於人授
라 推是以爲國
이면 則一語一黙
과 一動一靜
이 無非仁也
니 리오
자현子顯이 목공穆公에게 복명復命하자, 목공이 말하였다. “인仁하다, 공자公子 중이重耳여! 이마만 조아리고 절하지 않은 것은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배成拜하지 않은 것이고, 곡하고 일어난 것은 아버지를 애통해 한 것이요, 일어나되 사사로이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은 이익을 멀리한 것이다.”
集說
정현鄭玄의 주註에 ≪국어國語≫를 인용하여 사자使者가 공자公子 집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집의 자가 자현子顯이다. 그러므로 현顯을 현韅으로 읽어야 한다.
상례喪禮에 먼저 이마를 조아린 뒤에 절을 하는 것을 성배成拜라고 하는데, 후사後嗣가 된 사람이 성배하는 것은 조문한 예禮의 정중함에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공자는 아직 후사가 되지 못한 까닭에 성배하지 못한 것이다.
애부愛父는 그 아버지를 애통해한다는 말과 같다.
사사로이 사자使者와 더불어 말하지 않은 것은 귀국하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이니, 이는 이익을 멀리한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익을 멀리함은 모두 인자仁者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어질구나. 공자公子 중이重耳여!”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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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방씨嚴陵方氏: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길 “불인不仁하면서 나라를 얻은 자는 있지만, 불인하면서 천하를 얻은 자는 없다.”고 하셨으니, 불인不仁한데도 오히려 간혹 나라를 얻은 자가 있는데 하물며 인仁한 자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중이重耳가 진秦 목공穆公의 말을 거절했던 것을 살펴보면 그의 인仁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내 패자霸者가 되어 진晉나라를 완전히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이가 행한 바는 단지 구범舅犯에게서 받은 가르침이었을 뿐이다.
가령 타고난 자질에서 스스로 얻는 것이고, 남이 가르쳐주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미루어 나라를 다스렸다면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침묵, 한 번의 행동과 한 번의 멈춤이 인仁이 아님이 없을 것이니, 또한 어찌 공자로부터 “속임수를 쓰고 바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