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301 小斂之奠을 子游曰 於東方이라하고 曾子曰 於西方이니 斂斯席矣라하시니 小斂之奠이 在西方은 魯禮之末失也니라
集說
≪集說≫ 疏曰 儀禮에 小斂之奠을 設於東方하고 奠又無席이어늘 魯之衰末에 奠於西方而又有席하니 曾子見時如此하고 將以爲禮라 故云小斂於西方이라하시니라
故記者正之云 小斂之奠이 所以在西方은 是魯人行禮末世에 失其義也라
集說
○今按 儀禮布席于戶內라하야늘 註云 有司布斂席也 在小斂之前이라하고 及陳大斂衣奠하야는 則云奠席在饌北하고 斂席在其東이라하야늘 註云 大斂에 奠而有席은 彌神之也라하니 據此則小斂奠에 無席이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萬物은 生於東而死於西라 小斂之奠을 於東方則孝子未忍死其親之意也라
소렴小斂의 전奠을 자유子游는 “시신의 동쪽에 올려야 한다.”고 하였고, 증자曾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시신의 서쪽에 올려야 한다. 소렴할 때 이 돗자리 위에 전奠을 진설한다.”고 하셨으니, 소렴의 전奠이 시신의 서쪽에 있는 것은 노魯나라의 예禮가 말엽에 잘못된 것이다.
集說
소疏:≪의례儀禮≫에 소렴小斂의 전奠을 시신의 동쪽에 올리고 전奠을 올릴 때에는 또 자리가 없었는데, 노魯나라가 쇠퇴한 말엽에는 시신의 서쪽에 전奠을 올리고 또 돗자리가 있었으니, 이것은 증자曾子께서 당시에 이와 같이 한 것을 보시고 장차 예禮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서쪽에 소렴한다.”고 하신 것이다.
염기석의斂斯席矣라고 할 때의 ‘사斯’는 이것이라는 뜻이니, 소렴할 때 이 돗자리 위에 전奠을 진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한 사람이 이를 시정하여 말하길 “소렴의 전奠이 서쪽에 있게 된 것은 이 노나라 사람이 예를 시행해 오다가 말세에 그 의리義理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하셨다.
集說
○지금 살펴보니,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에 “내실의 문 안에 자리를 편다.”고 했는데, 그 주註에 “유사有司가 염을 하는 자리를 펴는 것이 소렴小斂을 하기 이전에 있다.”고 하였고, 대렴大斂의 옷을 진열하는 전奠에 이르러서는 ≪의례≫ 〈사상례〉에 “전을 올리는 자리가 음식 북쪽에 있고, 염하는 자리가 그 동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이르길 “대렴할 때 전奠을 올리고 돗자리가 있는 것은 더욱 죽은 이를 신神으로 섬긴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근거해보면 소렴의 전奠에는 돗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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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방씨嚴陵方氏:만물萬物은 동쪽에서 생겨나서 서쪽에서 죽는다. 소렴小斂의 전奠을 시신의 동쪽에 진설하는 것은 효자孝子가 그 어버이를 차마 죽은 이로 여기지 못하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