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903 其坎深不至於泉하며 其斂以時服하며 旣葬而封하니 廣輪揜坎하며 其高可隱也러니 旣封에 左袒하고 右還其封하야 且號者三曰骨肉歸復于土는 命也어니와 若魂氣則無不之也며 無不之也라하고 而遂行한대
集說
≪集說≫ 不至於泉은 謂得淺深之宜也라 時服은 隨死時之寒暑所衣也라
下則僅足以揜坎하고 上則纔至於可隱하니 皆儉制也라
骨肉之歸土는 陰之降也요 魂氣之無不之는 陽之升也라
季子以骨肉歸復于土로 爲命者는 此精氣爲物之有盡이요 謂魂氣則無不之者는 此遊魂爲變之無方也라
壽夭得於有生之初하니 可以言命이요 魂氣散於旣死之後하니 不可以言命也라
再言無不之也者는 愍傷離訣之至情而冀其魂之隨己以歸也라
不惟適旅葬之節이라 而又且通幽明之故하니 宜夫子之善之也라
然爲疑辭而不爲決辭者는 蓋季子乃隨時處中之道니 稱其有無而不盡拘乎禮者也라
故夫子不直曰季子之於禮也에 合矣라하시고 而必加其乎二字하야 使人由辭以得意也니 讀者詳之니라
그 광중壙中의 깊이는 물이 나오는 곳까지 이르지 않았으며, 그 염습斂襲은 당시에 입었던 의복을 사용하였다. 이미 장사葬事지내고 나서 봉분封墳을 만들되 너비와 지름은 광중을 덮고, 그 높이는 손으로 짚고 기댈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미 봉분을 마치고 나서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으로 봉분을 돌면서 또 세 번 부르짖고, 말하기를 “뼈와 살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은 천명天命이지만, 넋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가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하고, 마침내 길을 떠나갔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연릉계자延陵季子가 행하는 것이 예禮에 합당한 듯하구나!”라고 하셨다.
集說
‘물이 나오는 곳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광중壙中의 얕고 깊음이 알맞았다는 말이다. 시복時服은 죽었을 때의 추위와 더위에 맞추어 입었던 옷을 따른 것이다.
봉封은 흙을 쌓아서 봉분封墳을 만든 것이다. 가로를 광廣이라고 하고, 세로를 윤輪이라고 한다.
아래로는 겨우 광중을 덮기에 충분하고 위로는 겨우 손으로 짚고 기댈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으니, 모두 검소한 제도이다.
‘왼쪽 어깨를 드러냄’은 양陽이 변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음陰이 돌아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뼈와 살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은 음이 내려간 것이요, ‘넋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은 양이 올라간 것이다.
음과 양은 기氣이고, 명命이라는 것은 기가 모인 것이다.
‘계자季子가 뼈와 살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을 명으로 여긴 것’은 정기精氣의 물건 됨이 다했다는 것이고, 넋은 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 것은 혼이 떠돌아다니니 변함에 일정한 방위가 없다는 것이다.
장수하고 요절함은 처음 태어날 때 얻으니 천명天命이라 할 수 있고, 넋은 이미 죽은 뒤에 흩어지니 천명이라 할 수 없다.
‘넋은 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재차 말한 것은 이별을 가엾이 여기고 상심傷心한 지극한 정情으로 그 넋이 자기를 따라서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객지에서 장례葬禮하는 예절에 적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이승과 저승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니, 부자夫子께서 훌륭하게 여기신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의문하는 말을 하시고 단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신 것은, 아마도 계자가 결국 때에 따라서 중中에 처하는 도리를 따른 것이니, 가산의 형편에 알맞게 하고 예에 다 구애받지는 않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곧장 ‘계자가 예에 있어서 합당하였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굳이 ‘기호其乎’ 두 글자를 더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을 통해서 그 뜻을 터득하도록 하셨으니, 읽는 사람이 그것을 상세히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