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802 曾子曰 蕢尙이 不如杞梁之妻之知禮也로다 齊莊公이 襲莒于奪할새 杞梁死焉이어늘 其妻迎其柩於路而哭之哀러니
集說
≪集說≫ 魯襄公二十三年에 齊侯襲莒하니 襲者는 以輕兵掩其不備而攻之也라
左傳言 杞殖華還이 載甲夜入且于之隧라하니 且于는 莒邑名이라 隧는 狹路也라
증자曾子께서 말하기를 “괴상蕢尙은 기량杞梁의 아내가 예禮를 안 것만도 못하도다.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좁은 길에서 거莒나라를 습격했을 때 기량이 전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남편의 널을 길에서 맞이하여 슬피 곡哭하였다.
集說
노魯나라 양공襄公 23년에 제齊나라 임금이 거莒나라를 습격하였는데, 습襲이라는 것은 경무장한 병력으로 적이 대비하지 않고 있을 때 엄습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 23년에 “기식杞植과 화환華還이 갑옷을 수레에 싣고 밤에 저우읍且于邑의 좁은 길로 들어갔다.”고 하였는데, 저우且于는 거莒나라의 읍邑 이름이다. 수隧는 좁은 길이다.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더러 ‘태兌’자字로도 쓴다.”고 하였으니, 따라서 탈奪은 태兌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
량梁은 바로 기식杞殖인데, 전사했기 때문에 아내가 그 널을 맞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