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101 仲遂卒于垂어늘 壬午猶繹호대 萬入去籥한대 仲尼曰 非禮也라 卿卒不繹이라하시니라
集說
≪集說≫ 仲遂는 魯莊公子東門襄仲也니 爲魯卿이라 垂는 齊地名이라 祭宗廟之明日에 又設祭禮하야 以尋繹昨日之祭를 謂之繹이니 殷謂之肜이라
萬舞는 執干以舞也요 籥舞는 吹籥以舞也니 萬入去籥者는 言此繹祭時에 以仲遂之卒로 但用無聲之干舞以入하고 去有聲之籥舞而不用也라
集說
○陳氏曰 春秋之法에 當祭而卿卒이면 則不用樂하고 明日則不繹이라 故叔弓之卒에 昭公이 去樂卒事하니 君子以爲禮라하고 仲遂之卒에 宣公猶繹而萬入去籥하니 聖人以爲非禮라하시니라
集說
○詩記曰 萬舞는 二舞之總名也니 干舞者는 武舞之別名이요 籥舞者는 文舞之別名이니 文舞는 又謂之羽舞라하니라
春秋書
이라하니 言文武二舞皆入
호대 去其有聲者
라 故去籥焉
이라
公羊乃以萬舞爲武舞하야 與籥舞對言之하니 失經意矣라
若萬舞止爲武舞면 則此詩何爲獨言萬舞而不及文舞리오
然則萬舞爲二舞之總名이 明矣니 出詩緝簡兮註하니라
集說
○愚按
아하니 據此則萬舞信爲武舞矣
어늘 呂氏豈偶忘之耶
아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正祭之明日又祭를 謂之繹이니 繹者는 如繹絲然하야 以其續之而不絶故也라
중수仲遂가 수垂땅에서 죽었는데, 임오일壬午日에 〈노魯나라 선공宣公이〉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되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자, 중니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 “예禮가 아니다. 경卿이 죽으면 역제繹祭를 지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集說
중수仲遂는 노魯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동문양중東門襄仲인데, 노魯나라 경卿이 되었다. 수垂는 제齊나라의 지명地名이다. 종묘에 제사지낸 이튿날 또 제례祭禮를 베풀어서 전날 지낸 제사를 연이어서 지내는 제사를 역제繹祭라고 하는데, 은殷나라에서는 그것을 융제肜祭라고 하였다.
임오일壬午日이라고 말하였으니, 정시의 제사는 신사일辛巳日이다.
만무萬舞는 방패를 가지고 추는 춤이고, 약무籥舞는 피리를 불면서 추는 춤이니,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역제繹祭를 지낼 때에 중수仲遂가 죽은 까닭에 다만 소리가 없는 간무干舞(무무武舞)만을 사용해서 들이고 소리가 있는 약무籥舞는 제거하여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集說
○진씨陳氏:≪춘추春秋≫의 법에 따르면 제사지낼 때를 당해서 경卿이 죽게 되면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이튿날에는 역제繹祭를 지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숙궁叔弓이 죽었을 때 소공昭公이 음악을 중지하고 제사를 마치니 군자君子가 예禮라고 하였고, 중수仲遂가 죽었을 때에는 선공宣公이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면서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으니 성인聖人이 예가 아니라고 하였다.
集說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만무萬舞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두 가지 춤의 총칭이니 간무干舞라는 것은 무무武舞의 별칭이고, 약무籥舞는 문무文舞의 별칭인데 문무文舞는 또 우무羽舞라고도 한다.
정씨鄭氏(정현鄭玄)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근거로 만무를 간무라고 했는데, 잘못이다.
≪춘추春秋≫에 “만무만을 추고 약무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고 기록했으니, 문무와 무무 두 가지 춤을 모두 쓰되, 그 소리가 나는 것을 없앴기 때문에 약무를 버리고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춘추공양전≫에서는 이에 만무를 무무라고 해서 약무와 상대적으로 말하였으니, 경經의 뜻을 상실한 것이다.
만약 만무가 단지 무무일 뿐이라면 이 시詩(≪시경詩經≫ 〈패풍邶風 간혜簡兮〉)에서 무엇 때문에 유독 만무만을 말하고 문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중자仲子의 사당이 낙성됨에 장차 만무를 추게 하려 했다.”고 하였으니, 부인의 사당에서도 응당 무무만을 추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무가 문무와 무무 두 가지 춤의 총칭이라는 것이 분명하니, 이 내용은 ≪시즙詩緝≫ 〈간혜簡兮〉의 주註에 나온다.
集說
○내(진호陳澔)가 살펴보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초楚나라 영윤令尹인 자원子元이 문부인文夫人을 유혹하고자 하여 문부인의 궁전 옆에 집을 지어놓고서 만무萬舞를 추게 하니, 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소리 없이 울면서 말하기를 ‘선군先君은 이 춤을 가지고 전쟁 준비[융비戎備]를 익혔는데, 지금 영윤은 이것을 원수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고 미망인의 곁에서 찾고 있으니, 괴이하지 않은가.’라고 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근거해보면 만무는 참으로 무무武舞인데, 여씨呂氏가 아마도 우연히 그걸 잊었는가 보다.
大全
엄릉방씨嚴陵方氏:정제正祭를 지낸 다음날 또 지내는 제사를 역제繹祭라 하는데, 역繹이라고 한 것은 실을 자아내는 것과 같이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례祭禮는 길사吉事이지만 경卿의 죽음은 흉사凶事가 된다.
그러나 정제正祭는 폐지할 수 없기 때문에 경卿이 죽었을 때 역제를 지내지 않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