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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於葬者는 必執引이니 若從柩及壙하야는 皆執紼이니라.
諸侯之禮에 曰호대 寡君이 有宗廟之事하야 使一介老某로 相執紼이라 하니 則助葬者는 雖諸侯라도 亦執紼也라.
無服之喪은 至誠惻怛하니 當與天下로 同之어든 況隣里乎아.
適墓不歌는 如望柩不歌也요, 送喪不由徑은 不欲速也요, 不 避塗潦는 不擇地也라.
執紼不笑는 猶臨喪不笑也요, 當食不歎은 猶臨樂不歎也라.
臨喪則必有哀色하고, 介冑則有不可犯之色은 色必稱其服하고 情必稱其色하야 內外相顧니 所謂不失色於人也니라.
不避塗潦라. 傳에 曰호대 所樂而憂는 猶有憂而樂이니 君子之樂憂는 各有所當이라하니
禮에 曰호대 服其服하면 則文以君子之容하며 有其容이면 則文以君子之辭하고 遂其辭면 則實以君子之德이라 하니,
德稱容하고 容稱服이면 則民이 望其容貌하고 瞻其顔色하야 而喩其德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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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全]남전여씨藍田呂氏 : 무덤의 봉분은 올라갈 곳이 아니다.
장례를 도울 때에 상여줄을 잡는 것은 반드시 일이 있는 것이다.
장례 때에 조문하는 이는 반드시 영구차의 새끼줄[引]을 잡으며, 만약 〈상여줄을 잡지 못하고〉 널 뒤를 따라 갔더라도 광壙에 이르면 모두 다 불紼을 잡는다.
제후諸侯의 예에 “과군寡君이 종묘의 일이 있어서 일을 받들지 못하고 일개 늙은 아무개[某]를 보내어 도와서 불紼을 잡게 하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장례를 돕는 사람은 비록 제후의 신분이라도 또한 불紼을 잡는 것이다.
남의 상례喪禮에 참석하였다면 그곳은 웃을 자리가 아니다.
영구차靈柩車를 바라보면서 노래 부르지 않는 것도 남의 상례喪禮에 참석하여 웃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든 상喪은 지극한 슬픔이니 마땅히 천하 사람들과 슬픔을 함께할 일인데 하물며 이웃이겠는가.
상相은 방아 찧는 사람이 노래를 불러서 방아 찧는 것을 돕는 것이다.
무덤에 가서 노래하지 않는 것은 영구차를 바라보면서 노래하지 않는 것과 같은 뜻이고, 영구를 옮길 때에 지름길로 가지 않는 것은 서둘러 속히 하고 싶지 않아서이며, 진흙탕 물을 피하지 않는 것은 땅을 가려서 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내 마음이〉 슬픔에 있어 그러한 것들을 잊은 것이다.
상여줄을 잡고서는 웃지 않는 것은 상례에 참석하여 웃지 않는 것과 같고, 음식을 앞에 놓고는 탄식하지 않는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탄식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남의 상례에 참석해서는 반드시 슬픈 기색이 있어야 하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군사軍士가 범접할 수 없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 것은 얼굴빛은 반드시 그 복장에 어울리고, 마음은 반드시 그 얼굴빛과 어울려서 안과 밖이 조응하는 것이니 이른바 남에게 〈군자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마씨馬氏 : 상례는 그 장사를 돕는 것으로 예를 삼는다.
그러므로 영구를 옮길 때에 지름길로 가지 않고, 진흙탕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즐거워할 곳에서 근심하는 것은 근심이 있으면서도 즐거워하는 것과 같으니, 군자는 즐거워하고 근심하는 것이 각각 마땅한 곳이 있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음악소리를 들으면서는 탄식하지 않는 것이다.
위엄이 은애恩愛보다 강하면 복장은 필시 그 마음에 걸맞고 용모는 필시 복장에 걸맞게 된다.
그러므로 군사의 용모는 과단성 있고 굳세다고 한 것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군사軍士가 범접할 수 없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기禮記》의 〈표기表記〉에 “〈군자가〉 그 옷을 입었으면 군자의 얼굴로 꾸며야 하고, 그 용모를 하고 있을 때에는 군자의 말로 꾸미며, 그 말을 이룬 때에는 군자의 덕德으로 채우는 것이다.” 하였으니,
덕이 용모에 걸맞고 용모가 옷에 걸맞으면 백성들은 그의 용모와 안색을 보면서 그의 덕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경계하고 조심하여 남에게 군자로서의 본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