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03 使人辭於狐突曰 申生有罪하니 不念伯氏之言也하야 以至于死니이다
申生不敢愛其死어니와 雖然吾君老矣며 子少하고 國家多難이어늘 伯氏不出而圖吾君하니 伯氏苟出而圖吾君이면 申生受賜而死라하고
集說
≪集說≫ 狐突은 申生之傅라 辭는 猶將去而告違니 蓋與之永訣也라 申生이 自經而死하야 陷父於不義하니 不得爲孝요 但得諡恭而已니라
集說
○疏曰 註云 伯氏는 狐突이니 別氏者는 狐是總氏라
伯仲은 是兄弟之字니 字伯者謂之伯氏요 字仲者謂之仲氏라
故傳云
아하고 又此下文云
이라하니 是一人之身
이 字則別爲氏也
니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君子之於親에 有言以明己하고 有諫以明事라 諫則以幾爲順하고 以孰爲勤이니
幾而不入則至於孰하고 孰而不入則至於號하며 號而將至於見殺則亦有義以逃之하니 是雖於親有所不從이나 而於義無所不順이요 於親或不我愛나 而於鄕閭無所得罪니 此古之所謂孝子也라
彼不善事親者는 以小愛賊恩하고 姑息賊德하야 於己可以言이로대 而不言하고 於事可以諫이로대 而不諫하야 依違隱忍하고 惟意是從이라가 以至殞身於其親之命하고 而陷親於不義之名하니
是將以安親而反危之요 將以悅親而反辱之하니 此君子之所不取也라
晉獻公將殺其世子申生에 申生於親에 可言而不言이로되 而且懼傷公之心하고 於義에 可逃而不逃로되 而且謂天下豈有無父之國하고 以至忘其躬之不閱이로되 而且卹國家之多難하고 不顧死生之大節이로되 而且謹再拜之末儀하니 是恭而已요 非孝也라
이라한대 蓋書晉侯
는 以明晉侯之無道
요 書申生
은 以明申生之罪也
라
雖然이나 春秋之時에 臣弑其君하고 子弑其父하니 如衛輒拒父而爭國하고 楚商臣弑君而簒位하니 則申生之行은 蓋可哀而恕之也라
〈신생申生이〉 사람을 시켜 호돌狐突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말하였다. “저는 죄가 있으니, 백씨伯氏(호돌狐突)의 말을 유념하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죽는 것은 애석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께서 늙으셨으며 아들(해제奚齊)이 어리고 국가가 어려움이 많은데 백씨께서 출사出仕하여 우리 임금을 위해 도모해주지 않으시니, 백씨께서 만약 출사하여 우리 임금을 위해 도모해주신다면 저는 은혜를 받고 죽겠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마침내 죽으니, 이 때문에 그를 공세자恭世子라고 하였다.
集說
호돌狐突은 신생申生의 사부이다. 사辭는 장차 떠나려 할 때 떠남을 알리는 것과 같으니, 아마도 그와 영원히 작별하는 것인 듯싶다. 신생이 스스로 목매어 죽어 아버지를 불의不義에 빠뜨렸으니 효도가 될 수가 없고, 단지 공恭이라는 시호諡號를 얻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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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疏:정현鄭玄의 주註에 “백씨伯氏는 호돌狐突이니, 씨氏를 별도로 백伯이라고 한 것은 호狐가 호돌狐突 가문을 총괄하는 성씨이기 때문에 〈구별한〉 것이다.
백伯과 중仲은 바로 형제의 자字이니, 자字가 백伯인 사람을 백씨伯氏라 부르고, 자字가 중仲인 자를 중씨仲氏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숙씨叔氏여, 잊었는가?”라고 하였고, 또 이 아래 글에서 이르기를 “숙씨叔氏여, 멋대로 예禮를 남에게 허락하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자字가 별도로 씨氏가 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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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진씨長樂陳氏:군자君子는 어버이에게 말로써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경우가 있고, 간함으로 사리를 밝히는 경우가 있다. 간함은 은미하게 하는 것을 순리로 삼고, 익숙하게 하는 것을 삼감으로 삼는다.
은미하게 간하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익숙하게 간하는 데 이르고, 익숙하게 간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호소하는 데 이르게 되며, 호소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또한 의리義理상 도망을 해야 하니, 이는 비록 어버이에게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지만 의리에 있어서는 순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어버이가 혹 나를 사랑해주시지 않더라도 향려鄕閭에서 죄를 얻음이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옛날의 이른바 효자孝子인 것이다.
저 어버이를 잘 섬기지 못하는 자는 작은 사랑에 끌려 은혜를 해치고, 고식적인 방법을 쓰다가 덕德을 해쳐서, 자기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일에 있어서 간할 수 있는데도 간하지 않아서, 망설이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어버이의 뜻을 따르기만 하다가 어버이의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고 어버이를 의롭지 못하다는 오명에 빠뜨리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이는 장차 어버이를 편안케 하려다가 도리어 위태롭게 하고,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려다가 도리어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군자가 취하지 않는다.
진晉 헌공獻公이 세자世子 신생申生을 죽이려 할 때, 신생은 어버이에게 말할 수 있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서 또 임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하고, 의리상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도망가지 않으면서 또 천하天下에 어찌 아버지 없는 나라가 있겠느냐고 하며, 심지어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잊고서 나라에 환란이 많은 것을 근심하고, 죽고 사는 큰 법칙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또 재배再拜하는 하찮은 의식은 삼갔으니, 이는 공손함일 뿐 효도는 아니다.
≪춘추春秋≫에 “진후晉侯가 그 세자世子 신생申生을 죽였다.”라고 기록하였는데, 대개 진후晉侯라고 기록한 것은 〈작위를 기록함으로써〉 진후의 무도無道함을 밝힌 것이고, 신생申生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신생의 죄를 밝힌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버지를 시해하였는데, 예를 들어 위衛나라의 첩輒은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서 나라를 다투고, 초楚나라 상신商臣은 임금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니, 신생의 행실은 어쩌면 애처롭게 여겨서 용서해줄 수도 있을 듯싶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길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둔다면, 악惡함이 없게 된다.”고 하셨으므로 ≪예기禮記≫에서 신생을 불효不孝라 여기지 않고 그를 공恭이라고 했으니, 마치 ≪시경詩經≫에서 급伋과 수壽를 불효不孝라고 여기지 않고,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춘추≫에서 예의禮義를 기록하는 필법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신생을 효孝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