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803 孔子之喪에 門人이 疑所服하더니 子貢曰昔者에 夫子之喪顔淵에 若喪子而無服하시며 喪子路에 亦然하시니 請喪夫子호대 若喪父而無服이니라
集說
≪集說≫ 以後章二三子絰而出言之컨대 此所謂無服이니 蓋謂弔服加麻也니 疏云 士弔服은 疑衰라하니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方孔子之生也에 以子之喪處門人이어시니 及其沒也에 門人以父之喪處孔子는 報施之理也라
故子貢於三年之外에 又築室於場하야 獨居三年然後歸하니 以恩尤所重故也라
噫라 世衰道微하야 禮敎不明乎天下하니 其執親之喪에 不能三年者가 蓋有之矣어든 而況於師乎아
공자孔子의 상喪에 문인門人들이 상복을 입는 것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옛날에 선생님께서 안연顔淵의 초상初喪을 치르실 때, 마치 아들을 잃은 것과 같이 하였으나 복이 없었고 자로의 상에도 그렇게 하셨으니, 선생님의 상례를 치르되 아버지를 여읜 것과 똑같이 하면서 상복은 없이 치르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集說
뒷장의 “제자들이 수질首絰을 하고 나왔다.”는 것으로 말하건대, 여기에서 이른바 “복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조복弔服에 삼으로 만든 환질環絰을 쓴 것을 말하는 것인 듯싶으니, 소疏에 “사士에 대한 조복은 의최疑衰이다.”라고 하였다.
마麻는 환질을 이른다. 오복五服의 수질과 요질腰絰은 모두 두 가닥으로 만들되 오직 환질만은 한 가닥으로 만든다.
뒷장에 나오는 “이모[
종모從母]의 남편”에 대해
소疏에 이르기를 “모든 조복을
상복喪服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子貢廬墓圖
集說
○방씨方氏:“아버지를 여윈 듯이 하면서 복服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심상心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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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릉방씨嚴陵方氏:바야흐로 공자孔子께서는 살아계실 때 자식의 상례喪禮로써 문인門人들의 상喪을 치르셨으니, 공자가 돌아가심에 미쳐 문인들이 아버지의 상례로써 공자의 상을 치른 것은 은혜에 보답하는 도리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스승은 오복五服의 친족에 해당되지 않지만, 오복의 친족이 스승을 얻지 못하면 화친할 수 없다.”라고 했으니, 스승이 인륜에 있어서 어찌 작은 보탬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공子貢은 삼년상三年喪을 치른 이후에도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지낸 뒤에 떠나갔으니, 은혜가 더욱 중한 바이기 때문이다.
아! 세상이 쇠퇴하고 도道가 미약해짐에 예禮의 교화가 천하天下에 밝아지지 않자 어버이의 상을 치르면서 3년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하물며 스승에 있어서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