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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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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801 孔子之故人曰原壤이니 其母死어늘 夫子助之沐槨한대 原壤 登木曰 久矣 予之不託於音也여하고 歌曰 貍首之斑然이로소니 執女手之卷然이로다하야늘
夫子爲弗聞也者而過之하신대 從者曰 子未可以已乎잇가 夫子曰 丘聞之호니 親者 毋失其爲親也하며 故者 毋失其爲故也라호라
集說
≪集說≫ 或問朱子호대 原壤登木而歌 夫子爲弗聞而過之하시니 待之自好어니와 하시니 莫太過否 曰 這說却差하니
如壤之歌 乃是大惡이니 若要理會 不可但已 只得且休 至其夷俟之時에는 不可不敎誨 故直責之하시고 復叩其脛하시니 自當如此
若如今說이면 則是不要管他 却非朋友之道矣니라
集說
○胡氏曰 數其母死而歌 則壤當絶이요 叩其夷踞之脛인댄 則壤猶故人耳
盛德中禮 見乎周旋 此亦可見이니라
集說
○馮氏曰 母死而歌하니 惡有大於此者乎 宜絶而不絶 蓋以平生之素 而事有出於一時之不意者如此하니 善乎 朱子之言이여
曰若要理會인댄 不可但已일새 只得且休라하시니 其有以深得聖人之處其所難處者矣로다
集說
○劉氏曰 原壤母卒 夫子助之治槨하신대 登已治之槨木而言久矣我之不託興於詠歌之音也
如貍首之斑 言木文之華也
與拳同하니 如執女手之拳 言沐槨之滑膩也
壤之廢敗禮法 甚矣어늘 夫子佯爲不聞而過去以避之하시니 從者見其無禮하고 疑夫子必當已絶其交
故問曰 子未當已絶之乎 夫子言爲親戚者 雖有非禮 未可遽失其親戚之情也 爲故舊者 雖有非禮 未可遽失其故舊之好也라하시니 聖人隱惡全交之意
大全
≪大全≫ 石林葉氏曰 孔子責原壤 重於夷俟하고 而略於喪歌者 夷俟 禮之踞也 人道不可以不責이라
是以雖痛絶之不爲過 親喪而歌豈止違禮而已哉리오
孔子聞而不問 見不可以敎 問之則人道絶矣리라
故過之若不聞者하니 乃所以全故舊之恩이라 此夫子之道忠恕者也
蓋將以矯世 未必出其誠心然하니
不可施之於孔子之門이니 此夫子所以有時而抑揚與인저


공자孔子의 옛 친구 중에 원양原壤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죽자 공자께서 그를 도와 외곽外槨을 손질하였는데, 원양이 그 외곽 목재木材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오래되었구나, 내가 음악에 흥을 가탁하지 못함이여!”라고 하고 노래를 부르기를 “재목의 무늬는 너구리 머리처럼 아롱다롱하니, 나뭇결은 주먹 쥔 여인의 손을 잡은 것처럼 매끄럽도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못들은 것처럼 하시고서 그 곳을 지나가시자, 수행하는 자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그와 절교絶交할 만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듣자하니, 친척에게는 그 친척이 된 을 잃지 않아야 하며, 친구에게는 그 친구가 된 교분交分을 잃지 않아야 된다고 하더라.”라고 하였다.
集說
어떤 사람이 주자朱子에게 질문하되 “원양原壤외곽外槨 나무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공자孔子께서 못들은 척 하시고서 그 곳을 지나가셨으니 공자께서 그를 대한 것이 스스로 좋거니와, 그가 걸터앉아서 공자를 기다림에 이르러서는 공자께서 지팡이로써 그의 정강이를 치셨으니 너무나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자, 주자가 말하기를 “그 말이 오히려 틀렸다.
杖叩原壤杖叩原壤
예컨대 원양이 노래 부른 것과 같은 것은 바로 큰 잘못이니, 만약 시비를 따지고자 한다면 절교하고 말 수 없는 사안인지라 다만 우선 그만둔 것이고, 그가 걸터앉아서 기다림에 이르러서는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그를 나무라시고 다시 그 정강이를 지팡이로 치셨으니, 본래는 이처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지금 그대의 말대로라면 원양을 간섭하지 않아야 하니, 이는 도리어 벗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集說
호씨胡氏:그 어머니가 죽었을 때 노래 부른 것을 헤아려 본다면 원양原壤과 절교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의 걸터앉은 정강이를 쳤다면 원양은 그래도 친구인 것이다.
공자孔子의 훌륭한 에 맞음이 주선할 때에 나타남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다.
集說
풍씨馮氏: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노래를 불렀으니 악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마땅히 절교해야 되는데 절교하지 않은 것은 대개 평소에 안면이 있는 친구로써 사건이 한 때 뜻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 이와 같으니, 훌륭하구나, 주자朱子의 말이여!
‘만약 시비를 따지고자 한다면 절교만 하고 말 수 없는 사안이므로 다만 우선 그만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주자는 성인聖人난처難處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깊게 터득했던 것이다.
集說
유씨劉氏원양原壤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공자孔子께서 그를 도와 외곽外槨을 손질하였는데, 원양이 그 외곽 목재木材에 올라가서 “오래되었구나, 내가 음악에 흥을 가탁하지 못함이여!”라고 하였다.
‘너구리 머리처럼 아롱다롱하다.’고 한 것은 목재의 무늬가 화려함을 말한 것이다.
과 같으니, 주먹 쥔 여인의 손을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은 다듬은 외곽이 매끄럽고 윤이 난다는 말이다.
원양이 예법禮法을 훼손시킨 것이 매우 심한데도 공자께서 거짓 못들은 척 하시고서 그냥 지나쳐 자리를 피하시기에 수행하던 자가 원양의 무례無禮함을 보고 공자께서 반드시 그와 절교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의심했다.
그러므로 “선생님께서는 마땅히 그와 절교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공자께서 “친척親戚이 된 자는 비록 잘못된 가 있더라도 대번에 그 친척의 정을 잃어서는 안 되고, 오랜 친구가 된 자는 비록 잘못된 예가 있더라도 대번에 오랜 친구의 우호友好관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으니, 이는 성인聖人을 숨겨주고 교분交分을 온전히 하려는 뜻이었던 것이다.
大全
석림섭씨石林葉氏공자孔子께서 원양原壤을 꾸짖을 때에 걸터앉은 것에 대해서는 중하게 하시고, 초상에서 노래 부른 것에 대해서는 꾸짖음을 생략하셨는데, 이는 걸터앉은 것은 에 있어서 거만하기 때문에 사람의 도의상 꾸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렬하게 그와 절교하더라도 과함이 되지 않는 것이고, 어버이가 돌아가셨는데 노래 부르는 것이 어찌 예를 위배한 것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공자께서 들으시고도 문책하지 않으신 것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니, 문책하셨다면 사람의 도의상 절교를 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냥 지나치신 것은 바로 오랜 친구의 은정을 온전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공자의 충서忠恕라는 것이다.
나라 말엽에 아내가 죽었는데도 동이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도에 통달했다고 여기는 자가 있었으니 장주莊周와 같은 자이고, 벗이 죽었는데 시신에 임하여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예라고 여기는 자가 있었으니 자피子皮금장琴張 같은 자들이 그들이었다.
아마도 장차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겠으나, 반드시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공자의 문하에 펼쳐질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공자께서 때에 따라 억제하기도 하고 추켜세우기도 한 까닭인 듯싶다.


역주
역주1 及其夷俟則以杖叩脛 : ≪論語≫ 〈鄕黨〉에 “原壤이 걸터앉아서 孔子를 기다리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고 장성해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 없고 늙어서 죽지 않는 것이 바로 賊이다.’ 하시고,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치셨다.[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라고 하였다.
역주2 妻死……如莊周者 : ≪莊子≫ 〈至樂〉에 “莊子의 아내가 죽어서 惠子가 조문하러 갔더니 장자는 다리를 뻗고 철퍼덕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식까지 키우고 함께 늙도록 年輪을 쌓다가 바로 그 아내가 죽었는데도 곡을 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이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에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마는 그 삶의 처음을 살펴보았더니 본래 삶이 없었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形體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氣조차 없었다. 황홀한 가운데에 섞여서 變化하여 기가 나타나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이루어지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이루어졌다가 지금 또 변화해서 죽음으로 갔으니 이것은 서로 봄‧여름‧가을‧겨울이 되어서 사계절이 運行되는 것과 같다. 저 사람이 천지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람들의 習俗을 따라 울어대는 것은 스스로 天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겼기에 그만두었다.’[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長子老身 死不哭 亦足矣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無槪然 察其始而本無生 非徒無生也 而本無形 非徒無形也 而本無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 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라고 하였다.
역주3 友死……如子皮琴張者 : ≪莊子≫ 〈大宗師〉에 “子桑戶가 죽어서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孔子가 그 소식을 듣고, 子貢으로 하여금 가서 葬事를 도와주게 하였다. 〈자공이 가 보니〉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면서 서로 화답하면서 노래했다. ‘아! 桑戶여. 아! 桑戶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계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아!’ 자공이 종종걸음으로 그들 앞에 나아가 말했다. ‘감히 묻겠습니다. 屍身을 앞에 놓고 노래하는 것이 禮입니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禮의 본 뜻을 알겠는가?’[子桑戶死 未葬 孔子聞之 使子貢往侍事焉 或編曲 或鼓琴 相和而歌 曰 嗟來桑戶乎 嗟來桑戶乎 而已反其眞 而我猶爲人猗 子貢趨而進 曰 敢問 臨尸而歌禮乎 二人相視而笑曰 是惡知禮意]”라고 하였다. 子皮는 춘추 시대 때 사람인 子桑戶(?~?)로, 琴張과 서로 친했는데, 세 사람이 서로 보며 웃어도 마음에 거슬릴 게 없었다. 孔子가 方外에 노니는 사람이라 칭송하면서, 자신은 方內를 노니는 사람이라 말했다. 琴張은 춘추 시대 말기 衛나라 사람인 琴牢(?~?)이다. 張은 그의 자이고, 또다른 자는 子開이다. 孔子의 제자로, ≪孟子≫에서 曾晰, 牧皮 등과 함께 狂者로 일컬어졌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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