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401 曾子曰 小功
에 不爲位也者
는 是委巷之禮也
라 子思之哭嫂也
에 爲位
하야 婦人
이 倡
하야늘 申祥之哭言思也
에도 亦然
하니라
集說
≪集說≫ 委는 曲也니 曲巷은 猶言陋巷이라 細民居於陋巷하야 不見禮儀而鄙朴無節文이라 故譏小功不爲位는 是曲巷中之禮也라
集說
○馬氏曰 凡哭必爲位者
는 所以敍親疏恩紀之差
니 이니
蓋無服者
는 所以遠男女近似之嫌
이요 而爲位者
는 所以篤兄弟
之親
이라
子思哭嫂爲位하고 婦人倡踊은 以婦人有相爲娣姒之義하야 而不敢以己之無服先之也라
라하니 由是言之
컨대 哭妻之昆弟
에 以子爲主
는 異於嫂叔之喪也
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位者는 哭泣之位也니 親有遠近하고 服有輕重하니 不可以無辨이라
迨乎周室之衰하야 典籍多失하고 而一時之禮가 或有小功不爲位者하니 此曾子所以譏之라
子思之哭嫂也에 爲位는 以言無服之喪에도 猶且爲位니 則知小功不爲位尤爲非矣라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소공복小功服에 곡哭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은 누추한 시골의 예禮이다. 자사子思께서 형수를 위하여 곡할 때 곡하는 자리를 만들어 부인이 먼저 뛰어 애통해 하였는데, 신상申祥이 언사言思를 위하여 곡을 함에 있어서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集說
위委는 굽었다는 뜻이니,
곡항曲巷은 누추한 시골 마을이라는 말과 같다. 평민들은 누추한 시골 마을에 거주해서
예의禮儀를 보지 못하여 비루하고 질박해서 절도와 문채가 없기 때문에,
소공小功에서
곡哭하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 것을 누추한 시골 마을의
예禮라고 기롱한 것이다.
小功服
언사言思는 자유子游의 아들이고, 신상申祥의 처남이다.
集說
○마씨馬氏:무릇 곡哭할 때 반드시 위차位次를 만드는 것은 친함과 소원함, 은혜와 기강의 차등을 매기기 위해서이니, 형수와 시아주버니 사이에는 상복이 없으므로 곡하는 자리도 만들지 않는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분상奔喪〉〉에 “상복이 없어도 곡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오직 형수와 시아주버니 간의 경우이다.”라고 한 것이니,
형수와 시아주버니 간에 상복이 없는 것은 남녀가 가까이 하는 혐의를 멀리하기 위한 것이고, 곡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형제의 내상內喪의 친분을 돈독히 하려는 것이다.
자사가 형수를 위해 곡할 때 자리를 만들어 부인이 먼저 뛰어 애통해 하였으니, 부인은 서로 손아래 동서와 손윗 동서가 된 의리가 있어서, 감히 상복이 없는 자신이 〈부인보다〉 먼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상申祥이 언사言思를 위해 곡할 때 이르러서도 또한 자사와 똑같이 하였으니, 아마도 예禮가 아닌 듯싶다.
아내의 형제는 외상外喪인지라 이미 상복이 없으니, 곡하는 자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하下〉에 “아내의 형제 중에 장인의 후계자가 된 자가 죽으면 적실適室에서 곡하되, 아들(생질甥姪)이 상주가 되어서 단문袒免하고 곡하면서 뛰면, 남편이 문 오른쪽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근거로 하여 말한다면 아내의 형제를 위해 곡할 때에 아들을 상주로 삼는 것은 형수와 시아주버니 간의 상喪과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들을 상주로 삼는다면 부인이 먼저 뛰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大全
엄릉방씨嚴陵方氏:위位는 곡哭하고 우는 자리인데 친척 중에는 멀고 가까운 친척이 있고, 상복喪服에도 가볍고 무거운 차이가 있어서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곡하고 울 때에 각각 거기에 맞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주周나라 왕실이 쇠함에 이르러서 전적典籍이 대부분 일실되었고 한때의 예禮가 더러 소공복小功服을 입되 곡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증자曾子께서 기롱하신 까닭이다.
“자사子思께서 형수를 위해 곡할 때 곡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 것은, 상복이 없는 상喪에서도 오히려 곡하는 자리를 만들었음을 말한 것이니, 소공복에서 곡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은 것은 더욱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