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501 工尹商陽이 與陳棄疾追吳師할새 及之러니 陳棄疾謂工尹商陽曰 王事也니 子手弓而可니라
手弓이어늘 子射諸인저 射之하야 斃一人하고 韔弓이어늘
又及謂之한대 又斃二人하니 每斃一人에 揜其目하고 止其御曰 朝不坐하며 燕不與어늘 殺三人하니 亦足以反命矣라하야늘
集說
≪集說≫ 工尹은 楚官名이라 追吳師는 事在魯昭公十二年이라 子手弓而可爲句하니 使之執弓也라
掩目而不忍視하고 止御而不忍驅는 有惻隱之心焉이라
孔子謂其有禮는 以敗北之師本易窮而商陽乃能節制其縱殺之心하니 是仁意與禮節竝行이요 非事君之禮止於是也라
集說
○疏曰 朝與燕
이 皆在寢
하니 若
外
면 則大夫以下皆立
하고 若
在於路寢
이면 則大夫坐於上
이니 如
이 是也
라 升堂則坐矣
니라
燕亦在寢하니 燕禮獻卿大夫之後에 西階上獻士하고 無升堂之文하니 是士立於下也라
鄭註에 射者在左하고 戈盾在右하고 御在中央이라하니 謂兵車參乘之法이니 此謂凡常戰士요
若是元帥면 則在中央鼓下하고 御者在左하고 戈盾亦在右요 若天子諸侯親將이면 亦居鼓下니 若非元帥면 則皆在左하고 御者在中이요 若非兵車면 則尊者在左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從君之大義而忘己之不忍은 君子之所不爲요 行己之不忍而廢君之命은 君子之所不敢이라
楚工尹商陽이 追吳師而射之하야 每斃一人則掩其目은 其所不忍이니 仁也요 不廢君之命은 義也라
大夫於朝則坐하고 於燕則與라 故其責重하고 士於朝則立하고 於燕則不與라 故其責輕이라
然則朝坐燕與爲商陽者면 如之何리오 曰彼必陳善以閉邪하야 引君以當道하야 有所不戰이요 戰之라도 所以止戰이며 有所不殺이요 殺之라도 所以止殺이니 庸有不義之擧哉아
天下皆齊也
에 하시고 天下皆魯也
에 하시니 然則天下皆楚也
로대 商陽不去楚
런들 君子豈以爲非禮哉
아
공윤工尹 상양商陽이 진기질陳棄疾과 함께 오吳나라 군대를 추격할 때 오나라 병사를 따라 잡았는데, 진기질陳棄疾이 공윤工尹 상양商陽에게 일러 말하기를 “왕王의 일이니, 그대의 손으로 활을 잡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였다.
공윤 상양이 그의 말을 따라 손에 활을 잡자, 진기질이 말하기를 “그대는 쏘아 맞추시오!” 하니, 공윤 상양이 쏘아 맞추어 한 사람을 죽이고 활을 활집에 넣었다.
또 오나라 군대를 따라잡아 쏘아 맞추라고 하니, 또 두 사람을 죽였는데, 매번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말 모는 자를 멈추게 하고는 말하기를 “내가 조정에 참여하여 앉지 못하고 연향에 참석하지도 못하는데 지금 세 사람을 죽였으니, 또한 충분히 복명復命할 만하다.”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죽이는 중에도 또한 예의가 있구나.”
集說
공윤工尹은 초楚나라의 관직 이름이다. ‘오吳나라 군대를 추격한 것’은 사실이 노魯나라 소공昭公 12년年에 있다. ‘자수궁이가子手弓而可’가 한 구절이 되니, 그로 하여금 활을 잡도록 했다는 뜻이다.
수궁手弓은 상양商陽의 활이 손에 있는 것이다. 창韔은 활집이다.
눈을 가리고서 차마 보지 못하고 말 모는 자를 멈추게 해서 차마 수레를 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측은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상양商陽이 스스로 “지위가 낮고 예禮가 박薄하니, 이 정도로도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그가 예의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패배한 군대는 본래 궁지에 몰리기 쉬운데 상양은 함부로 죽이는 마음을 절제했기 때문이니, 이는 인仁한 생각과 예禮의 절도를 나란히 행한 것이지, 임금을 섬기는 예禮가 여기에서 그쳐야 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패배한 군대를 추격함에 있어서 잘한 것만 취한 것일 뿐이지, 또한 적과 대적함에 아직 결판도 나지 않았는데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集說
○
소疏:조회와 연향은 모두
에서 하니 만약
노문路門 밖의
정조正朝라면
대부大夫 이하가 모두 서 있고, 만약 노침에 있는
연조燕朝에서 하면 대부가
당堂 위에 앉게 되니, 예컨대 “
공자孔子께서 옷자락을 가다듬고서 당에 오르셨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당으로 올라가게 되면 앉는 것이다.
연향 역시 노침에서 하는데,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술잔을 경대부卿大夫에게 올린 뒤에 서쪽 계단 위에서 사士에게 술잔을 올린다고만 하고, 당에 올라간다는 글은 없으니 이는 사士는 당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정현鄭玄의 주註에 “활을 쏘는 사람은 수레의 왼쪽에 있고, 창과 방패를 잡은 사람은 오른쪽에 있으며, 수레를 모는 사람은 중앙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병거兵車에 임금을 모시고 타는 법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있는 내용은 일반 전투 병사를 말한 것이다.
만약 원수元帥라면 중앙의 북 아래에 있고, 수레를 모는 사람은 왼쪽에 있으며, 창과 방패를 잡은 사람은 또한 오른쪽에 있고, 만약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친히 군대를 거느리면 역시 북 아래에 있으니, 만약 원수元帥가 아니라면 모두 왼쪽에 있고, 수레를 모는 사람이 중앙에 있으며, 만약 병거가 아니라면 높은 사람이 왼쪽에 있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임금의 대의를 따르고 자신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잊는 것은 군자가 하지 않는 바이며, 자신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행하고 임금의 명을 폐기하는 것은 군자가 감히 하지 못하는 바이다.
초楚나라의 공윤工尹 상양商陽이 오吳나라 군대를 추격해서 활을 쏘아 맞추어 매번 한 사람씩 죽일 때마다 자신의 눈을 가린 것은 그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니 이는 인仁이고, 임금의 명을 폐기하지 않은 것은 의義이다.
예禮란 인仁과 의義일 따름이니, 이것이 공자孔子께서 상양을 예가 있다고 평하신 까닭이다.
대부大夫는 조정에 참여해서는 앉고 연향에는 참석하기 때문에 그 책무가 중하고, 사士는 조정에 참여해서는 서 있고 연향에는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그 책무가 가볍다.
상양이 죽인 것이 세 사람에 그친 것은, 일단 이 정도로 예를 이룬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정에 참여해서는 앉고 연향에 참석하는 자가 상양과 같은 입장이 된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선善을 개진하여 사특함을 막아 마땅한 도리로써 임금을 인도해서 전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을 멈추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죽이지 않도록 해야 하고, 죽이더라도 살인을 멈추기 위한 것이어야 하니, 어찌 불의不義한 일이 있겠는가?
상양이 초楚나라를 의롭지 못하다고 여기면서도 떠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군자는 떠나거나 머물 때 도道가 있고, 폐廢하거나 흥興할 때 명命이 있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제齊나라에 뜻을 두고 있을 때 진문자陳文子가 제나라를 떠났지만 공자께서는 인仁하다고 여기지 않으셨고, 천하 사람들이 모두 노魯나라에 뜻을 두고 있을 때 유하혜柳下惠가 노나라를 떠나지 않았지만 맹자孟子께서는 성인聖人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으셨으니, 그렇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에 뜻이 있었지만, 상양이 초나라를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군자가 어찌 예禮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