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702 重은 主道也니 殷主는 綴重焉하고 周主는 重徹焉하니라
集說
≪集說≫ 禮註云호대 士重은 木長三尺이라하니 始死에 作重以依神하니 雖非主而有主之道라 故曰主道也라
殷禮는 始殯時에 置重于殯廟之庭이라가 曁成虞主則綴此重하야 而懸於新死者所殯之廟하고 周人은 虞而作主則徹重而埋之也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重設於始死之時하고 主立於旣虞之後니 則重非主也요 有主之道爾라
不敢瀆之者는 所以致其敬而文이라 故로 周人行之니라
始死而未葬엔 則有柩矣어늘 有柩而又設重이니 所以爲重也요 旣有廟矣니 有廟而必立主니 是爲主也니라
중重[가주假主]은 신주神主의 도이니, 은殷나라에서는 신주를 만들고 나면 중重을 묶어서 사당에 매달아놓고, 주周나라에서는 신주를 만들고 나면 중重을 거두어 매장하였다.
集說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의 주註에 이르기를 “사士의 중重은 나무의 길이가 3척尺이다.”라고 하였으니, 막 죽었을 적에 중重을 만들어서 신을 의지하게 하니, 비록 신주神主는 아니지만 신주의 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주의 도[주도主道]’라고 말한 것이다.
은殷나라의 예禮는 처음 빈소를 차릴 때 빈묘殯廟의 뜰에 중重을 놓아두었다가 우제虞祭의 신주를 만들고 나면 이 중重을 묶어서 새로 사망한 사람의 빈소를 차린 사당에 매달아놓고, 주周나라 사람은 우제虞祭를 지내고서 신주를 만들면 중重을 거두어서 그걸 매장하였다.
大全
엄릉방씨嚴陵方氏:중重은 처음 죽었을 때 설치하고, 신주神主는 우제虞祭를 마치고 난 뒤에 세우니, 중重은 신주가 아니라 신주의 도리가 있을 뿐이다.
은殷나라 때에도 비록 신주를 만들더라도 여전히 중重을 묶어서 사당에 매달아 두었으니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周나라 때에는 신주를 만들고 나서 중重을 마침내 거두어 땅에 매장을 하였는데, 감히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랑을 극진히 하면서도 질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은인殷人은 이 방법을 시행한 것이다.
‘감히 더럽히지 못하는 것’은 그 공경을 극진히 하면서도 문채가 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주인周人은 이 방법을 시행한 것이다.
가주와 신주는 모두 신령神靈을 의지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혹은 중重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주主라 하기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막 죽어서 아직 장사지내지 않았으면 영구가 있을 것이니, 영구가 있는데 또 가주를 설치했으니 중복했다는 뜻으로 중重이 된 것이고, 이미 사당이 있으니 사당이 있으면 반드시 주인을 세워야 하니 이래서 주主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