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4305 平公曰 寡人亦有過焉하니 酌而飮寡人하라 杜蕢洗而揚觶어늘 公謂侍者曰 如我死라도 則必毋廢斯爵也라하니
至于今 旣畢獻하고 斯揚觶 謂之杜擧라하니라
集說
≪集說≫ 揚觶 擧觶也 盥洗而後擧 致潔敬也 平公自知其過하야 旣命蕢以酌하고 又欲以此爵爲後世戒
故記者云 至今晉國 行燕禮之終 必擧此觶하야 謂之杜擧者라하니 言此觶 乃昔者杜蕢所擧也
春秋傳 作屠蒯하고 文亦不同하다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先王制爲喪臣之禮하야 於服則衰絰하고 於膳則不擧하며 於樂則弛縣으로 以至與斂往弔 莫不盡禮
是以柳莊之卒 衞獻公不釋祭服而往襚하고 叔弓之卒 隱公不與斂하며 仲遂之卒 宣公猶繹而萬入 君子非之
然則悼子之未葬 平公飮酒하고 至於鼓鐘 其可乎 此杜蕢所以升酌而譏之也 非杜蕢 不能改平公之過於群臣不言之際 非平公이면 不能彰杜蕢之善於後世矣리라
蓋杜蕢之所存者忠也 所敢爲者勇也 平公之知悔者智也 不掩人者義也 皆禮之所與也
이나 하고 하니 則所謂智而且義者 蓋亦勉强之而已
三代之季 賢者陸沈多矣라가 及不得已然後 出而見於世하고 하며 하고 하니 則善諫見於宰夫 不爲過矣


평공平公이 말하였다. “과인寡人도 잘못이 있으니 잔에 술을 따라 과인에게도 벌주罰酒를 마시게 하라.” 두괴가 잔을 씻어 술을 따라서 술잔을 올리자, 평공平公시자侍者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약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이 술잔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觶
그 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연례燕禮에 이미 술잔을 다 올리고 나서 술잔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을 두거杜擧라고 이른다.
集說
양치揚觶는 술잔을 드는 것인데, 손을 씻고 술잔을 씻은 뒤에 드는 것은 깨끗하고 공경함을 극진히 한 것이다. 평공平公이 스스로 그 과오를 알고서 이미 두괴에게 술잔에 술을 따르도록 하고 또 이 술잔으로 후세에 경계를 삼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기록한 사람이 “오늘날까지 나라가 연례燕禮를 거행함이 끝남에 반드시 이 술잔을 들어올리면서 그것을 두거杜擧라고 한다.”고 했으니, 이 술잔이 바로 옛날에 두괴가 들어올린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두궤杜蕢’가 ‘도괴屠蒯’로 되어 있고, 문장도 같지 않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선왕先王을 당한 신하를 위한 를 제정해서 상복에 있어서는 최질衰絰을 입고 음식에 있어서는 성찬을 들지 않으며, 음악에 있어서는 연주를 위해 매달아놓은 악기를 풀어놓는 것에서부터 에 참여하고 가서 조문함에 이르기까지 예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유장柳莊이 죽었을 때 나라 헌공獻公제복祭服을 벗지 않고 가서 제복을 벗어서 수의襚衣로 사용하게 하고, 숙궁叔弓이 죽었을 때 은공隱公이 염습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중수仲遂가 죽었을 때 선공宣公이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고 만무萬舞를 가지고 들어간 것을 군자가 그르다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도자知悼子를 장사지내기 전에 평공이 술을 마시고 심지어 종을 친 것이 옳겠는가. 이것이 두괴가 당상에 올라가서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비판한 까닭이니, 두괴가 아니었으면 평공의 잘못을 여러 신하들이 말하지 않을 때에 고치게 하지 못했을 것이요, 평공이 아니었으면 두괴의 훌륭함을 후세에 드러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두괴가 가슴속에 간직했던 것은 충성이고, 과감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용맹이며, 평공이 뉘우칠 줄 안 것은 지혜이고, 남의 훌륭함을 가리지 않았음은 의이니, 모두 예에서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평공이 맹자를 현명하게 여겼으나 끝내 만나보지 못했고, 해당亥唐을 높였으나 끝내 함께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이른바 ‘지혜롭고 의롭다’는 것은 또한 억지로 힘쓴 것이었을 뿐이다.
≪춘추좌씨전≫에서는 도궤屠蕢가 군주가 밝게 듣도록 하지 못했다고 악공樂工을 책망했고, 폐숙嬖叔이 군주가 밝게 보지 못하도록 한 것을 책망했으며, 자신은 맛을 잘 보지 못하게 한 것을 책망했으니, 말은 비록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뜻이다.
아! 삼대三代시대의 말엽에 현자賢者들이 많이들 숨어있다가 부득이함에 미친 뒤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작위를 사양함이 도양屠羊에게서 보이고, 독서를 비난함이 윤편輪扁의 수레바퀴에서 보이며, 관직의 직분을 지킨 일이 우인虞人에게서 보이고, 슬프고 처량한 노래가 소에게 여물을 먹이던 영척寗戚에게서 보이니, 궁중의 수라를 담당하는 재부宰夫에게서 훌륭한 간언이 나온 것이 과장은 아닌 것이다.


역주
역주1 平公賢孟子而終於不可見 : ≪孟子≫ 〈梁惠王 下〉에 “魯나라 平公이 외출하려고 하는데, 임금이 총애하는 臧倉이라는 자가 여쭈었다. ‘전에는 임금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담당관리에게 갈 곳을 하명하셨는데, 지금은 수레가 이미 출발 채비를 마쳤는데도 담당관리가 갈 곳을 알지 못하니, 어디를 가시려는 것인지 감히 여쭙습니다.’ 그러자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고 하오.’ 장창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한 나라의 군주인 임금께서 몸을 낮추시어 匹夫에게 먼저 禮를 베푸시는 까닭은 그가 현명하다고 여겨서입니까? 禮義는 현명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맹자의 어머니 喪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으니, 맹자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만나보지 마십시오.’ 평공이 말하였다. ‘알겠다.’[魯平公將出 嬖人臧倉者請曰 他日 君出 則必命有司所之 今乘輿已駕矣 有司未知所之 敢請 公曰 將見孟子 曰 何哉 君所爲輕身 以先於匹夫者 以爲賢乎 禮義由賢者出 而孟子之後喪 踰前喪 君無見焉 公曰 諾]”라고 하였다.
역주2 尊亥唐而終於不共治 : ≪孟子≫ 〈萬章 下〉에 “晉나라 平公은 현인인 亥唐을 대할 때에……하늘이 준 지위를 그와 함께 소유하지도 않았으며, 하늘이 준 직책을 그와 함께 다스리지도 않았으며, 하늘이 준 녹봉을 그와 함께 먹지도 않았으니, 이는 士의 입장에서 賢者를 높인 것이지, 王公의 입장에서 현자를 높인 것이 아니다.[晉平公之於亥唐也……弗與共天位也 弗與治天職也 弗與食天祿也 士之尊賢者也 非王公之尊賢也]”라고 하였다.
역주3 左傳謂屠蕢責樂工以不聰……責己以不善味 : 〈屠蒯가 樂工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卿佐의 죽음을〉 못 들은 체하고서 음악을 연주하였으니 이는 밝게 듣지 않은 것이다.”고 하고, 또 술을 따라 外嬖 嬖叔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임금의 눈이 되었으니 밝게 보는 일을 맡았다. 服裝으로 吉凶의 禮를 표현하고 예로써 길흉의 일을 행하니, 일에는 〈吉事 凶事 등의〉 類[物]가 있고 類에는 그 일에 합당한 容貌가 있다. 그런데 지금 임금님의 용모가 그 類에 맞지 않은데도 그대는 못 본체하였으니 이는 밝게 보지 않은 것이다.”고 하고, 또 술을 따라 스스로 마시며 말하기를 “口味로써 血氣를 流通시키고 혈기로써 意志를 充實하게 하며, 의지로써 言語를 決定하고 언어로써 命令을 내는 것입니다. 臣은 바로 구미 돋우는 일을 맡은 官吏이니, 두 侍御가 맡은 일을 잃었는데도 임금님께서 命을 내려 處罰하지 않으시는 것은 신의 罪입니다.”라고 했다.[女弗聞而樂 是不聰也 又飮外嬖嬖叔 曰女爲君目 將司明也 服以旌禮 禮以行事 事有其物 物有其容 今君之容 非其物也 而女不見 是不明也 亦自飮也 曰味以行氣 氣以實志 志以定言 言以出令 臣實司味 二御失官 而君弗命 臣之罪也](≪春秋左氏傳≫ 昭公 9년)
역주4 讓爵見於屠羊 : ≪莊子≫ 〈讓王〉에 “왕이 司馬 子綦에게 말했다. ‘屠羊說은 비천한 지위에 머물러 있는데도 道義를 진술함이 매우 높으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그를 三公의 지위로 끌어올리도록 하시오.’ 屠羊說이 말했다. ‘무릇 삼공의 지위가 염소를 도살하는 가게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제가 잘 알고 있으며, 萬鍾의 祿이 염소 도살로 버는 이익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찌 작록을 탐내어서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함부로 상을 베풀었다는 오명을 입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높은 지위를 감히 감당할 수 없으니, 원컨대 다시 제가 일하던 염소 도살하는 가게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고는 끝내 상을 받지 않았다.[王謂司馬子綦曰 屠羊說 居處 卑賤 而陳義甚高 子其爲我 延之以三旌之位 屠羊說曰 夫三旌之位 吾知其貴於屠羊之肆 萬鍾之祿 吾知其富於屠羊之利也 然豈可以貪爵祿 而使吾君有妄施之名乎 說不敢當 願復反吾 屠羊之肆 遂不受也]”라고 하였다.
역주5 非書見於斲輪 : ≪莊子≫ 〈天道〉에 “桓公이 당상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輪扁이 당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몽치와 끌을 내려놓고 위로 환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어떤 말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이 말하였다. ‘성인이 지금 살아 있습니까?’ 환공이 말하였다. ‘이미 죽었다.’ 윤편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로군요.’[桓公讀書於堂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 公之所讀者何言邪 曰聖人之言也 曰聖人在乎 公曰已死矣 曰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라고 하였다.
역주6 守官見於虞人 : ≪孟子≫ 〈滕文公 下〉와 〈萬章 下〉에 “齊나라 景公이 사냥할 때 사냥터를 관리하는 虞人을, 대부를 부를 때 쓰는 旌이라는 깃발로 불렀는데 오지 않자 장차 그를 죽이려 하였다.……공자께서는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사신 것인가? 자신을 올바르게 부르는 방법이 아니면 가지 않은 점을 높이 사신 것이다.[齊景公 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라고 하였다.
역주7 商歌見於飯牛 : ≪呂氏春秋≫ 〈擧難〉에 “甯戚이 齊 桓公을 만나 보려고 하였으나, 곤궁하여 스스로 찾아갈 길이 없었다. 이때 그가 行商이 되어 짐수레를 몰고 제나라로 가서 저녁에 성곽의 문 밖에서 잠을 잤다. 제 환공이 빈객을 맞이하기 위하여 밤에 성문을 열어놓고 짐수레를 한쪽으로 치웠는데, 횃불이 매우 치성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영척이 짐수레 밑에서 소에게 여물을 먹이면서 제 환공을 바라보고 슬퍼하여, 소의 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제 환공이 노래를 듣고서, 그 노복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매우 특이하다. 노래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고, 영척을 수레에 태워서 데리고 갔다.[寗戚欲干齊桓公 窮困無以自進 於是爲商旅 將任車以至齊 暮宿於郭門之外 桓公郊迎客 夜開門 辟任車 爝火甚盛 從者甚衆 寗戚飯牛居車下 望桓公而悲 擊牛角疾歌 桓公聞之 撫其僕之手曰 異哉 之歌者 非常人也 命後車載之]”라고 하였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