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이 聞德合天者를 謂之皇이요 德合地者를 謂之帝요 德合人者를 謂之王이요 父天母地하여 以養人理物하여 各得其宜者를 謂之天子니
是皆至尊之殊號하며 極美之大名이라 雖欲變更이라도 無踰於此라
故伏羲神農黃帝堯舜은 自生人已來로 君德之最神聖者라 天下가 尊之美之가 亦已至矣로되 而其指以爲號者가 或曰皇이요 或曰帝라하여 唯目一字하고 且猶不兼하며
禹湯繼興하사 莫匪大聖이로되 尙自菲薄하여 降號爲王이어늘
嬴秦
은 德衰於殷周而名竊於羲皡
하여 兼皇與帝
하여 始摠稱之
注+① 史秦紀 “秦王初倂天下, 自以爲德兼三王, 功過五帝, 乃更號曰皇帝.”러니 流及後代昏僻之君
하여 乃有聖劉天元之號
注+② 前李尋傳 “初, 成帝時, 齊人甘忠可詐造天官曆․包元太平經, 以言漢家當更受命於天, 以敎夏賀良等, 尋亦好之. 乃說哀帝宜急改元易號. 哀帝久疾, 冀其有益, 乃下詔曰 ‘皇天降祐, 漢國再獲受命之符, 其以建平二年爲太初元年, 號曰陳聖劉太平皇帝.’”하니 是知人主輕重
이 不在名稱
이라
3-3-2 신이 듣건대, 덕이 하늘에 합함을 ‘황皇’이라 하고, 덕이 땅에 합함을 ‘제帝’라 하고, 덕이 사람에 합함을 ‘왕王’이라 하고,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아 사람을 기르고 만물을 다스려 각각 그 마땅함을 얻도록 하는 것을 ‘천자天子’라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지극히 존귀한 이의 다른 호칭이며 지극히 아름다운 이의 큰 이름이니, 비록 바꿔보고자 하여도 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한 글자로 하였고 또한 겸하지 않았습니다.
우禹와 탕湯이 이어서 흥기하시어 대성大聖이라 하지 않을 점이 없었건만, 그럼에도 오히려 스스로 변변치 않다 여겨 호칭을 낮추어 왕王이라 하였습니다.
영진嬴秦(
진秦 시황始皇)이 덕은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보다 못한데도
복희伏羲와
에게서 이름을 훔쳐
황皇과
제帝를 겸하여 처음으로 묶어서
황제皇帝라고 일컬었는데,
注+① 嬴秦……始摠稱之:≪史記≫ 〈秦始皇本紀〉에 “秦王이 처음 천하를 병탄하고 스스로 덕은 三王을 겸하였고, 공은 五帝를 넘어섰다고 여겨 이에 존호를 皇帝라 고쳤다.”고 하였다. 그 유폐가 후대의 어리석은 임금에 미치어 급기야
성유聖劉와
의 호칭이 있게 되었으니,
注+② 流及後代昏僻之君 乃有聖劉天元之號:≪漢書≫ 〈李尋傳〉에 “처음 成帝 때 齊 땅 사람 甘忠可가 ≪天官曆≫과 ≪包元太平經≫ 열두 권을 거짓으로 지어 ‘漢나라가 마땅히 다시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다.’고 하여 이로써 등을 가르쳤는데, 李尋 또한 그것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哀帝에게 서둘러 改元하고 尊號를 바꿔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애제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던 터라 보탬이 있기를 바라서 이에 조서를 내리기를 ‘皇天이 복을 내려주시어 漢나라가 다시 하늘의 명을 받는 증표를 얻었으니, 建平 2년(B.C. 5)을 太初 원년으로 할 것이며 존호를 陳聖劉太平皇帝라 하라.’고 하였다.” 하였다. 이는
인주人主의 무게가 호칭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