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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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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右欽漵 奉宣聖旨호되 適得渾瑊奏하니 比日 尙結贊 頻使人으로 計會하여 擬自領兵馬하여 剋期同收京城이러니
緣春來 蕃軍 多有疾疫하여 近得探報하니 尙結贊等 竝抽兵退歸하여 不知遠近이라하니
朕意 緣吐蕃士馬 强盛하고 又以和好之義 自請將兵하여 助國討賊할새 朝夕 望其成功이러니 今忽抽軍退歸하니 甚失準擬
渾瑊李晟等諸軍兵馬 竝不至絶多하니 若無蕃軍應援하면 深慮被賊衝突하노니 卿試料量事勢如何者라하시니


6-1-1 흠서欽漵성지聖旨를 받들어 알리기를 “마침 혼감渾瑊이 아뢴 글을 보니, 최근에 이 자주 사람을 보내어 꾀하기를, 직접 병마를 인솔하여 기일을 정하여 함께 경성京城을 수복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봄에 들어 토번吐蕃의 군사 중에 역질에 걸린 자들이 많다고 하는 것으로 인해 최근에 탐지한 보고를 받으니 상결찬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서 어디쯤 있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짐은 마음속으로 토번의 병마가 강성한데다가, 또 화호和好의 뜻에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우리나라를 도와 역적을 토벌하겠다고 자청하였기 때문에 조만간 성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홀연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갔으니, 기대를 매우 저버리고 말았다.
혼감渾瑊이성李晟제군諸軍병마兵馬는 전혀 많다고 할 수 없으니, 만약 토번의 군사가 응원하지 않는다면 적의 공격을 받을까 매우 우려된다. 은 한번 상황이 어떠한지를 헤아려보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역주
역주1 尙結贊 : 尙結贊은 那囊․尙․傑嶺拉囊(?~796) 또는 尙․傑擦拉囊으로도 쓴다. 吐蕃 사람으로 大貢論의 직을 맡았다. ≪新唐書≫에서는 尙結贊으로 일컬었는데, 藏語 Shang Gyaltsen의 音譯이다. 那囊氏 출신인데, 나낭씨는 赤松德贊 모친의 친족으로, 적송덕찬의 재위 기간 중에 政務大臣을 맡았던 아홉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 琛․尙․傑斯秀亭(尙結息)과 恩蘭․達扎路恭(馬重英)은 唐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했는데, 尙傑嶺拉囊은 당나라와 講和를 주장해서 赤松德贊의 讚賞을 받아 대공론이 되었다. 782년 상걸령랍낭이 吐蕃의 관원을 인솔하여 唐나라 隴右節度使 張鎰 등과 함께 회맹하고 清水縣을 주었다. 이것을 ‘清水之盟’이라고 한다. 다음 해 朱泚가 반란을 하여 長安을 점거하자 상결찬이 당나라 조정을 도와 장안을 수복해주겠다고 제안해서 당나라 德宗의 윤허를 받았다. 崔漢衡이 반란을 진압한 후 伊西와 北庭 등의 땅을 토번에게 할양하겠다고 약속하자, 상결찬은 論莽羅依에게 군사 2만을 인솔하여 渾瑊을 돕도록 해서 武亭川에서 반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승리 후 토번군은 대대적으로 약탈하였고, 주자가 田希鑑을 통해 뇌물을 주었으므로, 토번은 군사를 물렸다.
얼마 후 주자가 피살되고 반란이 평정되자 토번이 사람을 파견해서 이서와 북정의 두 鎮을 요구했다. 덕종은 처음에는 그 땅을 토번에 할양하려 했으나, 신하들이 전략적 요지라고 했으므로 결국 할양하지 않았다. 상결찬은 당나라 조정이 배신했다고 보아, 785년에 기병하여 대대적으로 침입해서 涇州․隴州․邠州․寧州 등지를 공격하고 鹽州․夏州․銀州․麟州 등지를 깨뜨렸으며 장안을 위협하였다. 상결찬은 사신을 보내어 염주와 하주 등을 반환하고 당나라로 하여금 혼감을 보내어 會盟하라고 요구하였다. 787년, 당나라 조정은 正使 혼감, 副使 최한형을 파견하여 회맹하였다. 상결찬은 盟壇 서쪽에 군사 1만을 숨겨두었다가 당나라 관원을 사살하고 포로로 삼았으며, 혼감은 말을 뺏어 타고 돌아왔다. 역사에서는 이를 ‘平涼劫盟’이라 한다. 상결찬은 당나라의 포로 관원을 석방하고 간계를 써서 혼감 등 장수의 병권을 내놓게 만들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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