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右田緒 使節度隨軍劉瞻으로 送書與臣호되 其書意 緣奉進止하여 爲其亡父承嗣하여 撰遺愛碑文일새 故送前件馬絹等하여 以申情貺하니


1. 비문碑文을 지어달라고 부쳐온 말과 비단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는 주장奏狀
10-1-1 전서田緒절도수군節度隨軍 을 보내서 서신을 에게 보내주었는데, 그 서찰에 성지聖旨를 받들어 으로 하여금 그 망부亡父전승사田承嗣를 위해 유애비遺愛碑의 글을 짓도록 하였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말과 비단 등을 보내어 기쁜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역주
역주1 田緖 : 764~796. 唐나라 平州 盧龍(지금의 河北省 盧龍縣) 사람으로 魏博節度使 田承嗣의 일곱째 아들이다. 大曆 4년(778), 전승사가 遺命으로 그 조카 田悅을 절도사로 삼게 하자 전서는 이에 불만을 품었다. 興元 원년(784)에 전열과 그 모친과 처자식을 죽이고 도망하였으나, 邢曹俊과 孟希祐 등이 그를 절도사로 인정하여 그를 불러와서 留後로 삼았다. 당나라 조정은 전서를 銀青光祿大夫, 魏州大都督府長史 兼御史大夫 魏博節度使에 임명하였다. 이 틈을 이용하여 朱滔가 魏州를 공격하고 사신을 보내 항복하도록 하자 전서는 주도에게 銀錢을 바치고 주도와 맹약하였다. 이때 李抱真과 王武俊은 전서를 권하여 조정에 귀순하도록 하였다. 이에 전서가 귀의하자, 조정에서는 그를 魏博節度使를 제수하였다. 이에 三軍이 연합하여 朱滔를 貝州에서 패배시켰다. 貞元 원년(785)에 德宗은 嘉誠公主(당나라 代宗의 열 번째 딸, 덕종의 누이동생)를 전서에게 下嫁시키고 그를 駙馬都尉로 삼았다. 뒤에 다시 同中書門下平章事를 더하였고, 常山郡王에 봉하였다가 뒤에 雁門郡王으로 고쳐서 봉하였다. 貞元 12년(796)에 병으로 죽은 뒤, 조정에서 司空을 추증하였다.
역주2 請還田緒所寄撰碑文馬絹狀 : ≪陸贄集≫(中華書局, 2006)에는 이 아래 “馬一匹并鞍絹二千匹(말 1필과 안장, 비단 2,000필이다.)”이라 하였다.
역주3 劉瞻 : 미상. 咸通 10년(869) 6월에 中书侍郞 同中书门下平章事에 배수되어 张九龄과 姜公辅를 이어 세 번째로 嶺南 출신의 재상이 된 劉瞻(?~874)과는 별개의 인물이다.
역주4 (今)[令] : 저본에는 ‘今’으로 되어 있으나, ≪翰苑集≫과 ≪歷代名臣奏議≫에 의거하여 ‘令’으로 바로잡았다.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