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이 又聞於書하니 曰 非知之艱이라 行之唯艱이라하니
竊惟陛下가 所以驚疑於微臣之言者는 但聞之未熟耳라
此乃股肱耳目之任이 仰負於陛下니 誠所謂知之非艱이라
尙未足深累聖德也어니와 今則旣知之矣라 願陛下는 勿復艱於所行하소서 居安思危하시면 億兆가 幸甚이리이다 謹奏라
12-6-7 신이 또 ≪
서경書經≫를 보니,
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폐하께서 이 미천한 신하의 말에 대해 놀라시고 의심하시는 이유는 단지 이를 익숙히 듣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이것은 바로 고굉股肱과 이목耳目의 직임을 맡은 신하들이 폐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오니, 진실로 이른바 ‘아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직 성군의 덕에 깊이 누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지금은 이미 백성의 어려운 상황을 아셨습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다시 행동에 옮기는 데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에게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 육지는 이 상주문에서 녹봉을 받는 신하가 전답과 가택을 겸병하는 문제를 거론하되, 편의상 가택의 겸병은 다루지 않고 전답의 겸병만을 다루었다. 육지는 녹봉을 받는 집은 인민들과 산업을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이것은 ≪예기禮記≫ 〈중용中庸〉에서 “충신忠信으로 대접待接하고 녹祿을 후厚하게 해줌은 사士를 권장하려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던 논리를 대전제로 삼고 있다. ≪중용≫에서는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때 아홉 가지 법이 있다고 하고, 자신을 수양함, 어진 이를 높임, 친척을 친히 함, 대신을 공경함, 신하들의 마음을 체찰體察함,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함, 백공들을 오게 함, 먼 지방의 사람을 회유함, 제후들을 은혜롭게 대함을 거론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친친親親’을 권면하는 방도로 ‘그 지위를 높여 주고 봉록을 많이 줌’을 거론한 것이다. 육지의 논리는 이 ≪중용≫의 설에서 출발하지만, 겸병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어서 친친親親의 문제를 벗어난다. 실은 허균許筠도 〈후녹론厚祿論〉(≪성소복부고惺所覆瓿稿≫ 권11 문부文部8 논論)에서 국가의 복록을 먹는 집은 달리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중용≫의 같은 구절에서 출발하였다. 경전의 언어를 빌렸지만, 육지나 허균이나 현실의 겸병 문제를 분배의 문제와 관련시켜 논하였다. 그런데 허균은 역대의 연혁沿革이 같지는 않으나 상고시대부터 녹을 후하게 주어서 선비들을 권장해왔다고 주장하고, 조선에서는 신라와 고려 때보다 관리들의 녹을 줄인데다가 임진왜란 뒤에는 달마다 주던 요料를 녹祿으로 받도록 설계하여 예전의 절반으로 줄이고 말[두斗]의 수량도 줄였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태에서 관리들의 청렴만을 독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헛되이 들어가는 관비官費를 줄이고 윗사람이 공손하고 검소한 태도로써 통솔한다면 되리라.”고 처방책을 제시하였다. 허균의 주장은 관비官費를 줄일 것을 제안하는 데 있었다. 이에 비하여 육지는 고관들이 탐욕을 부려 겸병에 나서는 자체를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