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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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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尙賴宗社威靈 先皇仁聖하여 攘却醜類하고 再安宸居注+① 十月癸巳, 吐蕃潰, 郭子儀復京師. 十二月甲午, 車駕至自陝州.하여 城邑具全하며 宮廟無霣하니
此又非常之幸 振古所未聞焉이라 足以見天意之於皇家 保祐深矣
故示大儆하여 將弘永圖하시니 陛下 誠宜上副玄心하며 下察時變하사 遠考前代成敗하며 近鑑國朝盛衰하사 垂無疆之休하며 建不拔之業이니이다


1-2-8 그런데 오히려 종묘사직의 위령威靈과 선황제들의 인성仁聖에 힘입어 추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다시 궁성을 편안케 하여注+① 攘却醜類 再安宸居:10월 계사일에 吐蕃이 궤멸하였고 가 京師를 수복했다. 12월 갑오일에 어가가 陝州로부터 이르렀다. 성읍이 온전해지고 궁묘가 무사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던 특별한 행운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의 뜻이 황제의 집안을 보우하심이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게 경계를 보이어 장구한 계책을 넓히고자 한 것이니, 폐하께서는 진실로 마땅히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응하며 아래로는 때의 변화를 살피시어 멀리로는 전대의 성패를 고찰하시고 가까이로는 국조의 성쇠를 살피셔서 무궁한 아름다움을 드리우고 결코 뽑히지 않을 황업皇業을 세우셔야 합니다.


역주
역주1 郭子儀 : 華州 鄭縣(지금의 陝西省 渭南市) 사람이다. 天寶 연간(742~756)에 北邊 수비를 맡아 朔方節度使 휘하에 있었는데, 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河東節度使 李光弼과 함께 中原의 반군을 토벌하였다. 756년에 肅宗이 서북의 靈武에서 즉위한 후에는 황태자 廣平王(뒤의 代宗) 밑에서 副元帥가 되어 관군의 총지휘를 맡았으며, 回紇(위구르)의 도움으로 長安과 洛陽을 수복하였다. 宦官 魚朝恩의 배척으로 한때 실각하였다가 廣德․永泰 연간에 吐蕃이 장안을 치려고 하자 다시 기용되어, 회흘을 회유하고 토번을 물리쳤다. 이 공으로 尙父의 칭호를 받고 汾陽王에 봉해졌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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